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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622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가인갤러리 서울 종로구 평창동 512-2번지 Tel. 02_394_3631
이 전시는 각기 다른 재료와 조형어법을 사용하지만, 반복적 행위를 통한 물질의 확장이라는 공통된 조형적 특징을 보여주는 젊은 조각가 4인의 전시다. 이 전시의 작가들은 가볍고 평면적인 재료를 선택해 그것을 무한히 반복적으로 접합함으로써 하나의 입체 형태를 구축해내는 동일한 방법론을 사용하고 있다. 종이, 비닐, 우드락, 벨크로 등 '평면' 의 단위원소들을 접합하여 '입체'의 결과물을 완성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작업은 2차원과 3차원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평면의 기본단위들과 입체의 결과물 사이에는 작가의 반복적인 행위가 개입되는 셈이다. ● 따라서 이들의 작업은 3차원 공간 속에 구체적인 물질로 입체 작품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크게 조각의 범주 안에 있으나, 흙과 같은 가소성 있는 재료를 붙여 나가거나 돌과 같은 단단한 재료를 깍아 나감으로써 양감(voulume)을 가진 하나의 덩어리로 존재하는 종래의 전통적인 의미의 조각과는 거리가 있다. 뿐만 아니라 여러 개의 입체들을 불규칙적으로 모아서 하나의 입체를 완성하는 조각에서의 아상블라주(assemblage)와도 구분되는 것으로, 단위원소로 사용된 평면성을 띈 물질들은 마치 회화의 물감이나 전통적 조각의 흙과 같이 그 자체 최종적인 입체 작품의 재료로 쓰여 어떠한 규칙을 가지고 증식, 확장된다. 전시의 면면을 살펴 보면, 먼저 이번 전시의 최연소 작가인 이규연은 종이를 일정한 모양과 크기로 접어 그것들을 계속하여 서로 끼워나감으로써 마침내 하나의 입체를 완성한다. 그녀가 종이공작의 기본 접기방법 중 하나인 삼각형 모양으로 접은 수 만개의 종이를 규칙적으로 끼워나가는 행위는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진행되며 엄청난 노동을 필요로 한다. 이번 전시에서 그녀는 잡지의 종이를 재료로 선택했다. 다양한 이미지와 수많은 텍스트가 담긴 여러 가지 색깔의 잡지 종이들은 마치 팔레트의 물감처럼 각기 다른 색조를 가진 재료가 되어 여성지 20~30권 분량을 담은 길이 2m 가량의 대형 나뭇잎 모양의 입체를 완성한다. 이렇게 완성된 두 개의 나뭇잎 외에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조명을 삽입하여 벽에 거는, 같은 방식으로 된 원형 조각들을 선보인다.
김수진에게 입체를 이루는 기본단위는 벨크로가 된다. 꽤 오랜 시간 일명 '찍찍이'로 불리는 벨크로를 사용해 온 작가는 평면성 외에 재료가 가진 유연성과 암수끼리 자체적으로 결합하려는 속성을 이용해 다양한 크기로 벨크로를 잘라 붙이기를 반복한다. 작가는 벨크로가 그 자체 다양한 색을 가진 일정한 두께의 기성제품이라는 특징을 살려 그것들을 자신의 의도에 따라 자유자재로 때로는 평면에 위에, 때로는 특정한 형태의 입체 위에 겹겹이 쌓아나간다. 이번 전시에서 김수진은 각기 다른 색깔과 형태로 벨크로를 감은 50여 개의 와인병을 전시장 한켠에 쌓아 설치하고, 사각형과 원형의 아크릴 기둥에 사선으로 벨크로를 감은 수 십개의 막대를 전시장 벽에 부착하여 3점의 입체-평면 작품을 선보인다. 이러한 김수진의 작업은 벨크로가 하나의 와인병과 막대를 완성하는 단위원소가 되고, 그 와인병과 막대들이 하나의 입체작품을 이루는 또 다른 단위원소가 되는 2단계의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셈이다. ● 이규연과 김수진의 작업이 형태에 비해 화려한 색의 배합이 강조된다면, 신치현의 작업은 평면단위들과 그것이 이루는 형태가 좀 더 부각된다. 그는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구체적인 형상을 점토 모형으로 만들어 석고로 본을 뜨고 그것을 3D 스캔을 받아 도면을 출력한 후, 우드락이나 아클릴판과 같은 평면성을 가진 기성재료를 사용해 개별 픽셀 단위들을 일정한 두께로 자르고 그것들을 접합하여 하나의 입체를 완성한다. 전자매체의 이미지들이 무수한 픽셀로 이루어져 있음을 작업에 응용한 신치현의 조각은 작업 과정에서 컴퓨터의 힘을 빌리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세계의 모든 사물이 작은 원자(monad)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에 대한 해석이며, 작업의 시작 단계에서 전통적인 소조 기법을 거침은 물론 무수히 많은 픽셀 단위들을 잘라서 손으로 일일이 붙여나가는 엄청난 양의 노동을 가한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은 디지털과 아날로그 양쪽에 나란히 한 발씩을 딛고 있다고 하겠다. 아크릴 소품 넉 점과 비너스 상 외에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대형 인간 두상은 특정한 여성의 표정을 포착하여 4가지 다른 두께의 우드락 픽셀들을 잘라 같은 높이로 수직적으로 붙인 것으로 내용과 형식 면에서 종전과 다른 변화를 시도했다.
끝으로 김윤수의 작업은 반복적 행위를 통한 평면의 집합체로서의 입체라는 다른 작가들과의 공통적인 특징 외에 보다 다양한 현대미술의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오랜 기간 골판지, 종이, 고무줄, 압박붕대 등 부드러운 재료들을 계속해서 감거나 특정한 내용을 인쇄한 아크릴판을 쌓아올리는 등의 반복행위를 통한 작업을 지속해 왔다. 지난 개인전에 이어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비닐쌓기 작업은 이러한 작업들과의 연장선상에 있되 그 정점에 위치한다고 하겠다. 작가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 54명으로부터 발도장을 받아 그것을 비닐에 대고 오린 후, 이 발 모양의 비닐을 다시 비닐에 대고 오리고 그것을 다시 또 대고 오리는 식의 똑 같은 과정을 80여 차례 반복한다. 그럼으로써 크기가 조금씩 점점 커지면서 그 형태가 사라지는 80여 장의 다른 크기의 비닐이 나오고, 그것들을 차례로 엇비슷하게 쌓아 올려 하나의 입체를 완성한 것이다. 1mm 남짓의 얇고 부드러운 투명 비닐은 수 십겹 겹쳐짐으로써 심연한 푸른 빛으로 점점 깊어지고 또 단단해진다. ● 작가는 이렇게 완성한 수 십개의 발 형상들을 완전히 하얗고 이음새가 없는 밝은 방을 만들어 그곳에 부유하듯 놓음으로써 「바람의 砂原 」이라는 작품 제목대로, 마치 사람들이 발을 딛고 서 있는 모래 언덕들이 바람에 쓸려가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생성된 54개의 모래 언덕은 작가를 포함한 인간들의 고립되고도 연결된 인간관계를 떠올리게 하는 공간 드로잉이 된다. 한편, 이 공간 드로잉은 설치에서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 그 사이를 거니는 관람객의 발걸음까지 더 해져 하나의 커다란 인간군상을 형성함으로써 완결된다. 그녀의 이 설치작업은 공간특정적(site-specific)인 성격을 가진 것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공간의 크기에 맞춰 40여 점만 설치되었다. 또한 이러한 공간 드로잉의 기록이자 평면적 해석으로서 석 점의 사진작업도 함께 전시에 선보이게 된다. 이러한 그녀의 일련의 작업에서 우리는 작가의 물질에 대한 이해와 손끝의 정교함은 물론, 공간에 관한 해석과 세계에 대한 깊은 성찰까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 종이를 접어 끼우고, '찍찍이'의 암수를 무한히 붙여 나가며, 우드락의 수많은 픽셀들을 이어붙이고, 비닐을 켜켜이 쌓아 만든 이들의 작업은 작가들 각자의 물질에 대한 이해와 교감을 바탕으로, 각자의 예술의 표현 도구로서 선택한 저마다의 재료와 방식에 의한 것이다. 이 전시는 이러한 작가들의 개별성 이전에 이들에게 2차원의 단위원소들의 확장으로 이루어진 3차원의 결과물이라는 공통된 특징이 존재함에 주목하여 기획되었다. '반복적 행위를 통한 평면들의 집합체로서의 조각'이라는 이들 일군의 작가들의 시도가 오늘날 매체와 장르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현대미술의 담론 가운데 회화와 조각, 즉 2차원과 3차원 예술작품 사이의 경계 흐리기에 관한 하나의 해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에 앞서 예술에 있어서 인간의 노동에 의한 전통적인 생산방식을 고수하는 이들의 고집스런 예술에의 태도가 개념 위주의 현대미술에서 잊혀져 가기 쉬운 예술가의 손맛과 작업에의 수고를 상기시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신혜영
Vol.20060702d | Practisculpture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