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6_0614_수요일_05:00pm
전시관람 / 10:00am~06:30pm / 일,공휴일_10:30am~06:00pm
인사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29-23번지 Tel. 02_735_2655
인형 : 또 다른 사람의 모습 작가 박소연의 2005년-2006년 작품에 관한 서술 ● 1. 인형의 선택 ● 인형이란 무엇일까. 사전을 찾아보면 인형은 '사람의 형상을 본떠 만든 장난감'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렇다면 사람은 자신의 모습과 똑 같은 인형을 왜 만드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인간이 스스로의 모습을 축소, 재현, 이상화하여 인형을 통하여 자신을 반추하거나 동일시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 박소연이 작년부터 그린 작품에서는 어김없이 인형을 볼 수 있다. 그녀의 그림 속의 인형은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유년시절의 회상이며, 꿈과 환상의 욕망을 지닌, 그리고 무한한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의 또 다른 모습이다. 작가는 본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형을 피터팬 증후군의 한 현상으로 간주하기도 하지만 그의 인형은 일상생활에 힘을 실어주고, 내면의 형상을 시각화하게 하는 근원이다.
2. 공간 속의 인형 ● 박소연의 2005년도 작품을 보면 분할된 공간에 인형이 놓여 있다. 「오래된 그 집으로의 초대」시리즈를 보면, 다층집의 단면도 같기도 하고 투시된 책장 속 같기도 한 공간에서 각기 다른 이야기가 진행된다. 수직과 수평의 선을 이용하여 구획된 공간 중심에는 언제나 인형이 있으며 그 인형은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소형화된 가구들과 함께 배치되어 있다. 작가는 각 장면을 다 채색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단면으로 칠하기도 하고 먹으로 처리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평면화 된 공간에서 활동하는 주인공들은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이렇듯 분리된 공간의 사실적인 인형들은 실내와 분리된 듯 혹은 그 안에 녹아 있는 듯 정지하고 있다.
3. 유아기에 대한 동경 ● 박소연의 2006년도 작품을 보면 2005년도의 그것과 매우 달라졌음이 목격된다. 우선 화면 속 인형의 크기가 커졌다. 인형들이 동작을 취하기 시작하였다.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인형도 더욱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공간분할도 사라졌고, 소도구의 사용도 줄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형들 사이에 형성된 시선의 교류이다. 인형과 인형이 서로 대화를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쿠마리'라는 작품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쿠마리는 5세부터 8세까지의 어린 소녀를 대상으로 한 네팔의 여신이다. 힌두교의 소녀 여신인 라즈 쿠마리는 명문가의 어린 소녀 중에서 신비한 선택과정을 거쳐 선정되는데, 1년에 7번 있는 종교의식 때에는 사원 밖으로 나가서 살게 되며, 특히 매년 9월의 인드라 축제 때는 국왕도 그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러나 라즈 쿠마리가 첫 생리를 하면 저주를 받은 것으로 보고 다음 라즈 쿠마리에게 자리를 물려주게 되는데, 이후에는 대개 불행한 운명의 길을 걷게 된다고 한다. 박소연의 「쿠마리」에서는 네팔의 전통 복장을 화려하게 차려입은 세 명의 소녀가 등장한다. 그녀들은 생리를 상징하는 붉은 색 옷을 입었고, 여신임을 암시하듯 화려한 장신구를 걸쳤으며 머리에는 관모를 썼다. 화면에서 주위경관을 알려주는 공간 분할은 사라졌고 오히려 배경은 생략되었다. '쿠마리'라는 소재는 작가가 동경해온 어린시절에 대한 환상이다. 작가는 초경을 하면 저주를 받는, 즉 어린시절의 즐거움이 사라지는 쿠마리를 인형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자신의 어린시절을 동경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림 속의 쿠마리들은 인형이라기보다는 살아 있는 어린 소녀의 모습처럼 보인다. 화면 속 세 명의 소녀는 인형이 아닌 사람다움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인물상의 크기가 커졌고, 서로 마주보면서 따듯한 시선을 보내고 있으며 심지어 대화까지 나누는 듯 하다. 그래서 그림 속 인형은 살아있는 '쿠마리'로 보인다.
4. 사람의 또 다른 형상, 인형 ● 박소연은 왜 인형을 그리기 시작하였을까. 그녀는 실제 인간관계에서 얻고자 하는 신의와 사랑을 인형에서 찾고자 하였다. 인형은 그것을 유희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에게 언제나 한결같은 미소를 보내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 직면하게 되는 두려움, 거부감, 알 수 없는 모호한 속내를 인형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자신의 그림 속 인형을 통하여 인간관계에서 겪는 어려움을 스스로 위로받고 이 과정에서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받고자 하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작가는 인형을 매개체로 하여 점점 인간과의 소통을 시작하고 있다. 공간을 제한하는 수직, 수평선을 생략하고 대신 다양한 상상력을 유발할 수 있는 모빌을 배치하면서 화면의 무한한 확장을 암시하였다. 그리고 표정, 시선, 미소가 담긴 인형을 통하여, 인형이 아닌 아름다운 사람들을 재현하였다. 작가는 인형이라는 소재를 당분간 고집할 듯하다. 그리고 한국 전통의 인형을 그려서 한국인의 서정을 표현하려고 한다. 이러한 '인형그리기'를 통하여 인간의 다른 면모를 발견하고 자신을 되돌아 볼 것이다. 이제 작가 박소연의 인형은 인형이 아닌지 모른다. 오히려 그녀가 다가가고 싶은 따뜻한 주위사람들이자 동시에 인간에 대한 선입견과 소외에서 벗어나고 싶은 작가 자신의 투영이다. 작가 박소연의 '한국 전통 인형 그리기'를 기대해 본다. ■ 송희경
Vol.20060614b | 박소연展 / PARKSOYEON / 朴昭姸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