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공간의 소리

우명하展 / painting   2006_0531 ▶ 2006_0611

우명하_큰 공간의 소리 05-03_캔버스에 유채_194×130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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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531_수요일_05:00pm

갤러리 도올 서울 종로구 팔판동 27-6번지 Tel. 02_739_1406 www.gallerydoll.com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인간의 의식을 통하여 인식이 되거나 아니거나에 관계없이 그 자체로 존재한다. 그것들을 언어로 명명하고 그 정체를 과학이나 철학의 언어와 체계로 개념화하는 것은 실존과 유리된 인간의 문화일 뿐이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존재하는 것들의 이름과 정보를 많이 소유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이 소유하는 것은 존재하는 것에 대한 개념일 뿐, 그 실체와는 본의 아니게 점점 멀어져 가는 모순 속에 빠져 들어가게 됨을 나는 생각한다. 문화적 홍수 속에 빠져, 숨쉬고 만져지고 눈으로 볼 수 있으며 실존하는 모든 것에 대한 실제적 관심은 점차로 사라져 가고, 그 자리를 점차로 언어나 기호로 정보화 된 개념이 대신하곤 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거 어느 시대보다 많은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존재에 대한, 언어화될 수 없는 실재적인 지식과 경험을 점차로 상실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명하_큰 공간의 소리 05-0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96.5×130cm_2005
우명하_큰 공간의 소리 06-01_캔버스에 유채_52×52cm_2006

어떤 대상의 이미지를 그림으로 재현해 내는 일은 그 대상을 인식하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눈으로 더듬고, 손으로 만지고, 생각으로 그 존재를 추상해 내는 능력에서 시작한다. 따라서 그림 그리는 일은 사물에 대한 직접적인 감각을 회복하는 좋은 수단이 된다.

우명하_큰 공간의 소리 06-02_캔버스에 유채_100×100cm_2006
우명하_큰 공간의 소리 06-03_캔버스에 유채_110×194cm_2006

익숙하게 보아 오고 접해 오던 대상이 어느 순간 대단히 낯선 존재로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마치 그것을 생전 처음 보기라도 한 것처럼..... 이러한 경험은 문화적 인식이 실존적 인식으로 전환되는 경험이며, 언어로 명명되기 이전의 사물에 대한 직접적인 감각을 회복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이 순간의 잔잔한 충격을 경험한 이후에 붓에 물감을 묻혀 그 외관에서 시작하여 하나 하나 더듬듯이 사물의 이미지를 재현해 나가다 보면, 그 세부의 기기묘묘한 형상과 색의 변화는 더욱 더 새로운 경험으로 인식된다. 결국 나는 인상깊은 대상의 이미지를 그림으로 재현하는 과정을 통해 그 대상의 존재에 대해 더 자세히 인식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상을 그림으로 그려내는 과정은 전적으로 인식의 경험이라고 만은 할 수 없다. 그것은 대상의 선택에서부터 그림으로 그려내는 매 순간 순간마다 일어나는 선택의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선택하는 주체의 관념이나 의식, 혹은 관심사의 표현이다. 어쩌면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가장 원초적인 자신의 표현이 아닐까 한다. 그림 그리는 과정은 끊임없는 선택의 과정이다. 무엇을 그리게 될 지에서 시작하여 재료와 도구의 선택, 색과 농도, 생략과 강조 등, 수도 없는 선택의 과정을 통하여 그림은 만들어 질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 인식하는 정신과 표현하는 정신이 갈등을 일으킨다. 이러한 갈등의 과정에서 나의 그림은 완성되는데 그 완성의 정도는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 한다. 그 지점까지의 과정을 통해 나는 대상을 더듬어 인식하는데 더 큰 의미를 두고자 하기 때문이다.

우명하_큰 공간의 소리 06-04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06
우명하_큰 공간의 소리 06-05_캔버스에 유채_150×220cm_2006

모든 실존하는 것들은 우연히 존재하지 않으며 그 존재의 필연적인 근원을 가지고 있다. 아무 의미 없이 나열되어 존재하는 것 같은 모든 사물들과 사건들은 인식의 눈으로 관찰하여 추상해 나가면 그 현상의 이면에 있는 근원에 접근해 갈 연결고리가 된다. 결국 나를 포함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존재의 근원을 단편적이나마 설명하는 증거가 되는 것이며 나는 그림 그리는 작업을 통하여 그 본질과 만나는 동시에 시인하는 것이다. ■ 우명하

Vol.20060531d | 우명하展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