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정원

오진선展 / installation   2006_0524 ▶ 2006_0530

오진선_아스팔트 연못_아스팔트에 가변설치_2004_명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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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524_수요일_06:00pm

갤러리 가이아 서울 종로구 관훈동 145번지 Tel. 02_733_3373 www.galerie-gaia.net

비밀의 정원 ● 작가는 자연의 흔적이라곤 오로지 인공적으로 잘 가꾸어진 정원이나 아니면 콘크리트의 갈라진 틈사이로 힘겹게 자라난 잡초가 전부인 도시공간을 우연히 걷다가 맨홀 뚜껑 위로 고여 있는 물웅덩이 하나를 발견한다. 작가의 눈에 물웅덩이하나가 예사롭지 않게 보인 것은 삭막한 도시공간의 특성 때문이다. 자연의 신록이 무성한 시골길이나 산길에서 우리의 모든 감각은 춤을 춘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과 개울물의 흐르는 소리가 몸을 쉴 수 있게 해주고 미래 언젠가는 도달하게 될 상실된 이상향에 대한 동경을 갖게 한다. 대지는 물을 머금고 자라는 많은 종류의 식물들의 생장을 축복한다. 그러나 산업화 근대화의 빠른 성장을 이루어낸 서울의 도시공간은 생활을 건조하고 병들게 한다. 삶에 지친 사람들과 거리를 가득매운 자동차의 물결은 도시공간의 표상이다. 바삭하게 말라 비틀어질 것 같은 콘크리트 공간은 축축한 습기와 빗물이 머물러 있기 무섭게 뜨거운 햇살로 건조시키고 잘 정비된 하수도를 따라 어디론가 방출시켜 버린다.

오진선_아스팔트 연못_아스팔트에 가변설치, 물고기, 수중식물_2005_덕수궁 소방문 앞
오진선_아스팔트 연못_물고기, 수중식물_2005_덕수궁 소방문 앞

이러한 도시공간에서 작가는 맨홀 뚜껑위에 조용히 침묵하는 물웅덩이를 발견하였다. 이 물웅덩이가 물을 안고 침묵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도시에 형성된 홈 패인 공간 덕분이다. 비가 내려 도시 전체에 물줄기들이 아스팔트를 따라 흘러내려갈 계곡을 만들어 내면, 여기 저기 생겨나는 웅덩이들이 매끈한 도시공간의 섬세한 표면을 드러낸다. 작은 웅덩이들은 범람의 시간을 기다리는 욕망의 홈 패인 공간들이다. 이런 홈 패인공간들이 빗물을 머금고 있는 잠깐의 순간은 도시공간도 자연의 일부가 된다. 하나의 작은 호수가 되고 연못이 생겨난다. 고인 물에 배를 접어 띄우거나 첨벙거리며 뛰어 놀 어린이들은 어디로 가버리고 없다. 하지만 웅덩이는 매끈한 도시공간에서 빨리 사라져야 할 비위생적인 공간이다.

오진선_누벨 가든_아스팔트에 가변설치_2005_홍대거리 누벨 미용실 앞
오진선_엘리베이터 가든_엘리베이터 담쟁이 설치_2006_아파트 엘리베이터

작가가 발견한 물웅덩이처럼 어디로도 흘러갈 수 없는 물은 죽음을 기다리는 물이다. 이 물은 조용히 침묵하는 물이며,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죽음의 물이다. "물은 아름다움을 투영하며 죽을 수 있는 물질"이라고 가스통 바슐라르는 말했다. 무의식적으로 스쳐지나가는 사람들과 자동차들이 가끔씩 고인 물의 얼굴을 바꾼다. 죽은 물은 잠자는 물이기 때문에, 부동의 물은 죽은 자들을 환기 시킨다. 이렇듯 도시중앙에 우연히 생겨난 물웅덩이는 시한부적인 연못이다. 작가는 이 연못에 꽃을 띄우고 예쁘게 장식한다. 바닥이 환희 들여다보이는 웅덩이 위를 가볍게 떠있는 꽃잎장식이다. 작가의 이러한 행위는 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 자동차에 의해 사라지게 될 순간의 연못은 아스팔트위의 오아시스처럼 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오진선_황새울 연못_2006_평택 대추리마을
오진선_비밀의 정원 과정mix_에피소드

작가의 이런 행위는 죽은 물과 생태적으로 죽어버린 도시공간을 회생시키기 위한 제례(祭禮)적인 행위로 읽힌다. 작은 찻잔에 띄워진 꽃잎처럼 웅덩이 위에 떠 있는 꽃잎은 향기롭게 주변공간을 물들인다. 정처 없이 길을 걷다가 또 다른 웅덩이를 만난다면, 작가는 그에게도 꽃잎을 떼어 축복해 주겠지. 그는 웅덩이에 동전을 던져 넣는다. 연못에 동전을 던지는 것은 소원을 비는 행위이다.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 다시 그곳에 올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분수에 동전을 던지는 사람들처럼, 작가는 물웅덩이에 동전을 던져 넣는다. 무엇을 기원하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작가의 행위는 앞으로도 다시 생겨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는 순간의 연못에서 벌어진 것이다. 다시 돌아와 만날 수 있는 것이라곤 부재하는 것을 소망하였던 자신을 길 위에 증발시켜 버린 실재의 삶이 아닐까? ●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이나 현상에 대한 나의 의심은 신체라는 물리적 공간을 시작해 삶의 의미와 정신세계까지 조율하는 도시공간에 이른다. 경제원칙 등에 의해 구획되고 대량으로 복제된 도시공간은 계획된 생활방식을 그대로 조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역설적이게도 현실에 골몰하는 삶이 실재하는 삶을 묵인하게 하는 위험성을 갖게 한다." (오진선)백기영

Vol.20060530b | 오진선展 / 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