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포토그램의 눈

이상희展 / LEESANGHEE / photography   2006_0523 ▶ 2006_0530

이상희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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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523_화요일_05:00pm

창동미술스튜디오 전시실 서울 도봉구 창동 601-107번지 Tel. 02_995_0995 www.artstudio.or.kr

디지털 포토그램의 눈을 통한 사물의 재인식검 프린트(Gum Print)와 포토그램(Photogram) ○ 작가 이상희가 '검 프린트'라는 비은염 사진 인화방식을 통해 19C 클래식 사진 프로세스를 실천해 오거나 '포토그램'을 통해 카메라 메카니즘을 사용하지 않는 사진 작업을 일관되게 선보여 온 주된 이유는 사진의 재현기능이 담보하는 사실적 객관주의에 제동을 걸고 창조적인 예술의 유형으로 사진의 위상을 전환, 변모, 발현시키고자 하는 욕구기제 탓이었다. 달리 말해서 검 프린트나 포토그램의 '회화 같은 사진', '사진 같지 않은 사진'은 이상희에게 있어 사진의 예술적 가능태를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자신의 예술의지가 올곧이 발현되어 온 지점이었다. ● 생각해보자. 이상희가 오랫동안 작업해 온 검 프린트는 '중크롬산 고무 인화'(印畵)를 사용한 인화지 위에 필름을 올려놓고 빛을 오랫동안 비추는 방식을 지향함으로써, 은염류를 사용한 인화지 위에 이미지를 암실에서 속성으로 고정시켜내는 오늘날의 사진 인화 방식과 다르다. 검 프린트는 일조량의 차이나 작가의 창작 프로세스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 과정에 따른 흔적을 그대로 결과로 나타낸다. 검 프린트가 1880년대 유럽에서 '사진의 회화주의'를 주창하면서 유행했다는 점을 상기할 때 서양화를 전공한 작가 이상희가 이를 통해 사진의 회화적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은 의미심장하기조차 하다. ● 그가 창출한 낡고 퇴락한 듯이 보이는 이미지의 표면 위에 그리고 흐릿하게 겹을 이루며 경계 지어진 사진 가장자리의 진폭 위에는 시간의 지층이 느리게 움직인다. 풍부한 회화적 감흥이 매체와 어우러지는 순간이다. 이상희는 자신이 포획한 적막하고 고요한 이미지의 심층에 더딘 시간을 투여하는 검 프린트라는 옛 방식의 사진 언어를 통해 사진의 회화적이고 예술적인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희_도루묵_디지털 포토그램(Scanning)_150×362cm_2006
이상희_목각인형_디지털 포토그램(Scanning)_82×60cm×8_2006

한편, 이상희의 검 프린트가 필름의 인화방식이라는 화학적 속성에 대한 탐구였다고 한다면, 그의 또 다른 작업, 포토그램은 촬영방식이라는 광학적 속성에 대한 심층적 모색으로부터 기인한다. 그가 구사하는 포토그램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거창한 표현일 수 있지만 '객관적 이미지 너머의 실재의 현현'이라 할 것이다. 작가는 포토그램을 통해 우리의 눈이 경험하는 일상적이고 익숙한 사물의 이미지의 표피를 걷어내고 빛이 만들어내는 실물의 현존감을 극대화시켜 보여주려 한다. ● 사물을 감광지 위에 직접 올려놓고 빛을 투과시켜 사물의 그림자로 드러내는 포토그램의 이미지는 우리의 눈이나 카메라로 포착하는 사물의 표피적 이미지와는 대별된다. 포토그램은 감광지 위에 올려진 사물들의 투명도와 반사도에 따라 그림자를 만들어내는데, 예를 들어 평면적이고도 불투명한 나이프의 경우 빛을 차단시켜 하얀 색의 물체로 명징하게 드러나지만 완만한 입체의 투명한 전구는 풍부하고도 미묘한 흑백의 톤을 그려낸다. 따라서 포토그램에서는 '사물에 대한 시각적 재현에의 인식', 즉 모방의 차원은 결여되지만 '실루엣을 통한 추상적이거나 감각적인 회화의 차원'을 담보하게 되는 것이다. ● 그러나 우리가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포토그램이 극대화시키는 실물의 현존감이라 할 것이다. 빛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고 해서 레이요그램(Rayogram), 레이요그래프(Rayograph)로 불리거나 그림자가 고착시킨 이미지로 드러난다고 해서 섀도그래프(Shadowgraph)로 불리기도 하는 포토그램을 이상희가 '실물밀착 프린트'라 명명하길 선호하는 까닭은 사물의 표피적 이미지 너머의 실재(實在)적 현존감을 작품의 주제의식으로 전면에 드러내려는 전략에 기인한다.

이상희_Untitled_디지털 포토그램(Scanning)_89.8×53cm×8_2006

디지털 포토그램 -망각된 사물의 재인식 ● 검 프린트, 포토그램의 지속적인 탐색 과정 속에서 이상희는 이번 전시에 소개할 새로운 작업을 만나게 된다. 사물의 이미지를 스캐너(scanner)로 직접 포착하고 이를 다시 프린트 해 낸 결과물이 바로 그것이다. 이른바 '디지털 포토그램'이라 칭해 봄직한 이것은 포토그램의 이미지 포착 방식이나 검 프린트의 인화 방식이 제기하고 있는 '재현 이미지와 표현적 회화 이미지', '이미지의 재생산과 재창출', '실물의 현존' '이미지와 사물', '이미지와 실재'와 같은 미학적 인식을 여전히 공유하면서도 '이미지가 망각시킨 사물에 대한 미시적 관점'을 새로이 부각시킴으로써 일상사물과 우리들의 시지각적 인식 사이의 놀랍고도 낯선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 스캐너는 포토그램이 실현하는 빛을 통한 이미지의 포착 방식을 유사하게 실행한다. 다르다면 스캐너는 포토그램이 결여하고 있는 카메라와 유사한 CCD가 이동(scan)하는 광학블록을 통해 이미지를 포착한다는 것이다. 또한 포토그램이 이미지의 포착과 인화를 한 순간에 하는 방식이라고 한다면 스캐너는 인화를 하기 위한 포착의 과정만을 수행하지만 무수한 인화 결과물을 생성시키기 위한 변화가능성을 내포한 디지털 정보로 이미지를 저장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가진다. 실행태의 이미지 포착과 잠재태의 인화 가능성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포토그램이 포착할 대상체인 사물을 인화지 위에 순식간에 묶어두면서 완성되지만 이른 바 스캐닝 작업을 전제한 '디지털 포토그램'은 순차적인 프린팅 과정을 통해 미래에 완성되는 것이다. ● 이상희의 최근작에서 주요한 것은, '실물 밀착 프린트'의 방식에 의해 실물의 등배적 이미지 생산에 한정될 수밖에 없는 포토그램과 달리 스캐너를 통한 디지털 포토그램 방식은 가변적 크기의 '인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자잘한 크기의 사물들이 800-1600dpi의 높은 해상도로 스캐닝된 이후 커다란 크기로 프린트되었을 때 그 이미지와 급작스레 만나게 되는 우리들의 당혹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사물의 등배크기의 외면적 이미지에 익숙한 우리의 시지각을 일순간 혼란케 하기 때문이다.

이상희_작업중 사진_2006
이상희_홍보물_2006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목각인형의 확대된 각 부분의 스캔 이미지를 조합하여 거대한 규모의 목각인형을 재생산해낸다. 작품을 먼 거리에서 바라볼 때는 전체적인 목각인형의 이미지가 드러나지만 가까이서 작품을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목각인형의 이미지를 잃어버리게 된다. 우리들 시지각에 익숙지 않거나 미경험인 상태의 미시적 세계를 당혹스럽게 만나는 탓이다. 손바닥에 올라서는 작은 물고기를 엄청난 크기로 확대한 이미지의 디테일을 확인하면서 혹은 나뭇잎, 배추 등 식물 이미지가 형성하는 섬유질의 계곡 사이에서 숨어있는 숲과 같은 자연의 미시계(微視界)를 발견해내면서 우리는 화들짝 놀라게 된다. 스캐너가 진보한 형태의 색도 분해기라 할 때 이전의 포토그램이나 검 프린트의 흑백 작업에서 간과된 색의 미시적 차원 역시 이러한 당혹스러운 만남을 부추긴다. 미시적 세계에 관한 한, 언제나 '상상할 수 있지만 정확하게 가늠하기 불가능하다'는 우리의 인식을 통렬히 재확인시켜주는 '고해상의 확대된 실물 이미지' 탓이다. ● 이상희의 최근작의 의미는 크기의 변주나 고해상을 통한 디테일 이미지를 통해 우리가 늘 접하는 익숙한 사물 속에 숨겨진 낯설음을 의미를 드러내고 그 낯설음 역시 사물의 실재임을 극명하게 제시하는데 존재한다. 이미지가 우리로 하여금 망각케 한 사물에 관한 실존적 인식을 작가가 일깨우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흥미로운 점은 그의 최근작이나 이전의 포토그램, 검 프린트 모두가 그 형식과 세부 지향점은 다르지만, 일관되게 우리들 시지각 인식에 관성처럼 맺혀 있던 '사물의 표피적 이미지'를 걷어내고 '실물의 현존감', '사물의 실재감'에 관한 숨겨진 의미를 드러내고자 하는데 전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으나 우리들에 이제는 잊혀진 '망각의 진실'을 일깨우는 작업인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이와 같은 주제의식은 포토그램이든, 검 프린트이든 혹은 사진적 미술이든 미술적 사진이든 간에 작가 이상희가 천착하고 있는 '이미지와 사물 사이의 존재 인식에 대한 끝없는 질문'으로부터 기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 김성호

Vol.20060528c | 이상희展 / LEESANGHEE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