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하는 조각

서윤展 / sculpture   2006_0517 ▶ 2006_0523

서윤_무희_합성수지, 철판_190×130×100cm_2006

초대일시_2006_0517_수요일_06:00pm

KBS대전방송총국 1층 대전시 서구 만년동 300번지 한국방송공사 대전방송총국 Tel. 042_470_7100 daejeon.kbs.co.kr

이야기하는 조각 ● 유행은 돌고 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미술에서도 유행처럼 반복되는 양식이 있다. 물리학의 작용 반작용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있으면 반대로 반발하는 힘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영상 설치미술의 회오리가 거셀 때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은 이제 끝난 것으로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현재 회화와 조각은 건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각의 시대가 도래 할 것이라는 기대가 팽배해 있다. ● 2006년 초 뉴욕 첼시의 갤러리에는 미술의 기본으로 인식되고 있는 드로잉이 맹위를 떨치고 있었으며 알렉산더 칼더와 같은 현대 조각가를 재인식하는 전시가 대대적으로 열리는 등 회화와 조각 작품들이 당당하게 군림하고 있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온통 사진 영상과 설치성 작품들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 미술가들이 조각에 치중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서울의 포스코 앞에 설치된 아마벨의 작가 프랭크 스텔라도 줄무늬 회화를 그리던 화가였으며 평면회화로 명성을 얻은 왕광이나 위에민준 같은 중국 작가들도 자신의 그림에서 차용한 캐릭터를 조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작가들도 조각으로의 쏠림이 두드러지고 있다. ● 이런 현상은 작가의 작품세계를 넓힌다는 의미로 긍정적인 해석을 하는 것이 옳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경제적인 부가가치 창출의 목적도 무시할 수 없다. 일찍이 백남준 선생도 비디오 스컬프처를 만든 이유가 돈을 만들기 위함이라고 고백한바 있다. 어찌되었든 현상적으로 조각의 시대가 도래 한 것은 분명하지만 조각으로 시작하여 조각가의 길을 걷고 있는 정통 조각가들로서는 떨떠름한 기분을 떨치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서윤_비상_합성수지, 구리선, 철파이프_230×180×100cm_2006
서윤_달콤한 인생??_합성수지, 결속선, 아크릴_220×280×100cm_2006
서윤_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의 360˚_합성수지, 모터, 철파이프, 결속선_220×170×150cm_2006

한국의 조각가들은 비조각가들의 조각이 활개를 치는 작금의 현상에 대하여 반성적 통찰을 할 필요가 있다. 기능주의와 재료의 경직성 그리고 지나치게 고답적인 사고는 조각을 좁은 카테고리에 가두어 놓는 위험한 자세다. ● 조각가 서윤은 탄탄한 사실성에 기반을 두고 사회적인 발언과 페미니스트적인 감성을 표출하는 젊은 여성 조각가이다. 서윤의 작업은 보는 즐거움과 조각의 완결성을 동시에 충족시켜 젊은 세태를 반영한다. 사실주의 조각의 기법적인 완성도는 보는 즐거움을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며 조각가로서의 자존을 증명하는 기본 덕목이다. ● 서윤 조각의 사실성은 기법적인 면으로서만이 아닌 현실세계를 반영하는 주제의 현재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서윤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인간사에 관심을 갖는다. 현대사회의 다양한 직업군과 그들의 특징적인 행위를 통해 현대문명과 인간의 관계를 살피려 하며 이들의 희로애락을 형상화를 통해 드러내려 한다. ● 서윤의 조각가적인 관점에 포착된 인물들은 대부분 소시민들이다. 로또를 통해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 또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헛돌고 있는 인간들 그리고 막다른 골목에 몰려 길 위에 누워있는 여자와 같이 팍팍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순간적 포즈를 포착하여 극대화 시킨다. ● 주제를 형상화하는 방법으로 그는 사실조각을 선택했다. 사실적으로 묘사된 인체를 중심으로 인물이 처한 상황을 순간포착으로 담아낸다. 그의 작품은 독립된 하나의 형상으로 존재하기보다는 최소화한 배경무대를 통해 상황을 설명한다. 모종의 상황이 설명되는 무대장치이자 견고한 인스톨레이션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30명의 여인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It's raining women」과 같은 작품은 움직이는 조각이자 설치미술이며 일종의 무인 상황극이다.

서윤_훔쳐보기_합성수지, 슈퍼밀러, 철판_330×155×70cm_2006
서윤_겨루어보기_합성수지, MDF_140×180×80cm_2006

서윤의 현실을 보는 눈에는 날카로운 가운데에서도 따뜻한 시선이 있다. 비록 비극적인 내용일지라도 처참하기보다는 오히려 애처로워 보이게 한다. 보는 이들에게 부담을 주거나 괴롭게 하지 않고 오히려 미소 짓게 한다. 그러나 이 미소는 씁쓸하다. ● 작품 「달콤한 인생??」를 보면 로또라는 허황된 꿈을 잡고 부창부수하는 모습을 과장된 표정으로 만들었는데 '이것이 과연 달콤한 인생일까?' 라는 질문으로 관객의 자괴감을 자극하고 있다. 다른 작품 「이태백의 360˚」에서는 곤두박질 친 한 젊은이의 모습을 통해 청년실업의 문제를 보여준다. 이태백은 '이십대 태반이 백수'의 준말로 사회에 포함되지 못한 젊은 초상을 의미한다. 내동댕이쳐진 젊은 청춘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며 안쓰러움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런 모습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서윤의 작품이 호소력 있는 것은 이렇게 역설적인 웃음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 서윤 작업의 가장 특징적인 경향은 페미니즘이다. 작품을 통해 여성을 성의 도구화 또는 상품화하는 현대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환기하고자 한다. 작품 「왜곡」은 여인의 신체 일부분을 왜곡해서 보는 음란한 시선을 꼬집은 작품이다. ● 이와 같이 서윤의 작품에서는 여성성의 왜곡에 대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비판이 가해진다. 여성의 신체를 응접세트 테이블의 받침으로 사용한 「친절한...아가씨」과 같은 작품이 도구화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이라면 「훔쳐보기」는 관람객들의 참여를 유도하여 인간의 관음증을 실증적으로 증명하려 한다. 관람객은 그가 유도하는 대로 의자에 앉아 관음의 현장을 체험한다.

서윤_It's rainning women_합성수지, 스텐봉, 천, 구리선_70×30×30cm_2006×30
서윤_It's rainning women_합성수지, 스텐봉, 천, 구리선_70×30×30cm_2006_부분

그의 다른 작품 「겨루어보기」도 관객이 직접 작품에 올라타서 자신의 그림자와 대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만지지마시오' 와 같은 관객과의 거리두기가 관행인 미술전시의 상식을 파괴하는 일이다. ●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작업은 적극적인 교감을 원하는 그의 의도를 읽게 한다. 소통과 교감을 위한 장치를 통해 현대미술의 또는 현대사회의 소통부재와 단절에 도전하는 것이다. 현대미술이 커뮤니케이션의 실패로 인해 대중으로부터 격리되어 그들만의 방언으로 남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적극적인 몸짓이라 하겠다. ● 내용 없고 상투적인 장식적 조형물들이 시야를 어지럽히고 있는 지금, 젊은 조각가들의 열정이 살아있는 조각 작품이 더욱 아쉬운 때다. 그런 만큼 조형적 기반이 튼튼하고 사실묘사의 완성도가 높은 서윤과 같은 젊은 조각가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볼거리 풍부하고 자신의 목소리가 분명한 서윤의 첫 전시에 큰 격려를 보낸다. ■ 임재광

Vol.20060517a | 서윤展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