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6_0512_금요일_05:00pm
갤러리 눈 초대展
관람시간 / 11:00am~10:00pm
갤러리 눈 서울 종로구 인사동 147번지 미림미술재료백화점 2층 Tel. 02_747_7277
키친아트 ● 나의 키친아트는 말 그대로 부엌에서 작업을 한 것이다. 그리 넓지도 않지만 그래도 일상적인 물건이 많기 때문에 그곳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설거지만 제때 하면 매우 평온한 장소이다. ● 여러 가지 형태의 물건들을 붙이고 변형할 때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기 마련이다. 일상생활에서 그냥 스쳐 지나가는 물건들이 작업할 때 많은 도움을 준다. ● 우리는 완벽한 물건에 익숙해진지 오래다. 모든 사물에서 어떤 표준형을 인식하고 그 사이에서 우열을 가리거나 자신의 취향을 찾는다. 식상한 물건에 나만의 의견을 부여하는 것은 어떨까? ● 물건들을 붙이고 변형하고 다듬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결과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작업 중 반짝하는 아이디어가 작업의 집중도를 높이고 재미를 준다. 그래서 작품의 주제는 대부분 작업이 끝날 무렵에 결정되거나 또는 타인의 관심어린 의견에 의해 그 주제가 결정되기도 한다.
3차원 오브제는 만들수록 재밌다. 그 이유는 같은 재질과 색상이 각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평면적인 작업을 하면서도 항상 입체에 대한 생각을 놓을 수가 없다. 평면에서 적절한 명암법과 원근법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평면 그 자체에 대한 과감한 변화야말로 즐거움 그 자체이다. 사람들은 이런 이유로 오브제가 아닌 나의 작은 캔버스 그림조차도 오브제가 아니냐하고 묻기도 한다. 변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붙이고, 오리고, 자르고, 휘고, 깨고, 깎고, 녹이고, 태우고, 갈고, 때우고, 후비고, 쑤시고, 감싸고 등등. 이 모든 것을 사용할 수 있고, 사용해도 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입체작업의 특성이 아닌가 싶다. ● 오브제는 스스로를 구속하지 않는다, 때로는 중후하고 때로는 외향적인 이유로 환경을 새롭게 환기시키는 것은 물론 주어진 공간과 타협이 가능하다. 즉 한마디로 호환성이 좋은 다국적 언어와 같다. 작품을 디스플레이 할 때도 역시 즐겁고 유용하다는 이유로 오브제에 대한 관심은 클 수밖에 없다. 거대한 공간에 디스플레이 된 작품들의 조화는 또 하나의 거대한 공간 작품이 된다는 것이다. 오브제에 대한 감각은 공간의 새로운 느낌을 부여하고 또는 공간에 대한 감각이 입체작품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심어준다. ● 부엌은 인간생활의 가장 기초적인 장소임에 불구하고 별로 관심을 가져주지 않지만 그곳은 만물이 변하는 장소임에 틀림없다. ■ 임국
미술에도 온도가 있다면, '서늘한-요즘 잘 쓰는 말로 '쿨'(cool)한-작품이란 어떤 것 일까? 각고의 노력이나 정렬, 집중력, 심지어 책임의식이나 사명감까지 느껴지는 작품이 '덥다'면 '쿨'한 작품은 목적이나 책임감 같은 거창한 것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으며 '무심한, 태도를 유지한다. '쿨'한 작품은 계획적인 구상보다는 "그냥한번 이래 봤어"식의, 어께에 힘을 뺀 외양을 보여주며 오래 생각한 것 같지 않은 분위기를 풍긴다. 감상에 있어서도 내공의 힘을 다해 어렵게 보이 것 보다는 순간을 스쳐지나가면서 감흥을 얻는 방식이 어울린다. 하지만 '쿨'한다는 것은 가볍다는 말과는 다르다. 가벼운것은 화려하고 자극적인 것이 많지만 '쿨'한 것은 대체로 그다지 화려하지 않다. 가벼운 것은 빠른 속도와 즐거움을 추구하지만 '쿨'한 것은 속도에 관심이 없다. 또 '쿨'한 작품의 유머는 전혀 의도 하지 않은, 썰렁한 유머일 경우가 많다. '가볍지'않고 '쿨'할 수 있는 더운 작품이 평가를 받았던 70.80년대는 갔지만, 90년대가 반드시 '쿨'한 작품의 시기였던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보다 '가벼운'작품의 시대였던 것이 아닐까? '쿨'한 감수성이 사실 우리 문화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다. 성장에 대한 강박관념이 지배했던 지난 시절 이데올로기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어서인지, 90년대 이후에도 우리 문화는 어께에 힘주고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경우가 많다.'쿨'한 감수성이 절대적으로 긍정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여유롭고 개인적이며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쿨'한 감수성은 그 자체로 가치 있게 평가되어야 한다. 임국은 바로 이런 감수성을 갖고 있는 흔치 않은 작가다.
흔히 전시장에 줄맞추어 주욱 늘어놓는 작은 작품들(말하자면 '멀티플한'연작들)은 '쿨'하기는커녕 징글맞다는 느낌을 줄때가 종종 있다. 이 경우 작은 작품들은 큰 전체를 완성하기 위해 이용되었을 뿐이고 작다는 약점(?)을 '집단'의 힘으로 극복해 보겠다는 인상마저 주기 때문에 그리 유쾌하지 않다. 그러나 임국의 작품은 작다는 데 하등 콤플렉스를 갖고 있지 않다. 그의 작은 작품들은 눈에 띠는데 별로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작품들은 정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무질서 하게 전시장 구석구석 여기저기에 '붙어 있다'. 걸려있다는 표현보다 붙어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 그의 작품들은 하나하나 따로 보는 것보다 전시장에 디스플레이된 상태로 보아야 더 좋은데, 그 이유는 상당 부분 그가 작품을 설치하는 독특한 방식 때문이다. 그는 회화도 하고 입체도 하지만, 입체의 경우에도 벽에 붙일 수 있도록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는 전시장의 벽면과 기둥이 또 하나의 커다란 캔버스인 양 전시 공간 여기저기에 작품을 붙인다. 일정한 패턴도 없고 상하좌우도 없는 것처럼, 어떤 것은 천장 가까이에, 어떤 것은 기둥 구석에, 아무렇게나 한번 붙여본 것처럼 흩어 놓는다. ● 물론 이 '아무렇게나'라는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작품의 배치는 분명 일정한 리듬을 가지며 멀리서 전체적으로 보면 경쾌한 또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결과적으로 '아무렇게나' 붙인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바로 이 무심한 듯 보이는 외양으로 인해 하나하나의 작품들은 전체의 일부이면서도 전체에 짓눌리지 않고 자기만의 공간을 갖는다. 전체와 부분, 평면과 입체의 자유로운 경계 넘기, 전체와 부분의 이 자연스러운 넘나듦 못지않게 흥미로운 것은 그가 회화와 입체라고 하는 두 영역을 어떻게 유연하게 뒤섞는가 하는 점이다. 매체를 넘나드는 것에 대해 상당히 긴장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더운'작품과는 달리 그는 너무나 쉽게(?) 캔버스 천이나 종이를 오리고 접고 구부리고 풀칠해서 입체적으로 만드는 것을 즐긴다. 종이박스에 그림을 그리고 천 조각을 꼬리처럼 달아서 벽에다 붙인다. 그림을 그릴 때는 틀을 떼어내고 불규칙하게 자른 캔버스 천을 이용한다. 이들은 일부러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길에서 주은 천 조각처럼 보인다. 이 천은 접기만 하면 바로 입체가 된다. 입체에서 평면으로, 평면엣 입체로 자유롭게 변하는 그의 작업은 어떤 개념적 접근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작업은 틀의 벗어남과 변형에 대한, 거의 직관적인 이해력과 타고난 친화성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말 그대로 '감수성'이며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그의 작업은 어떤 사회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개인적'이라는 말은 흔히 부정적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진정으로 개인적인 작품이 갖는 가치를 발견해내는 것은 사회성의 흔한 구호를 부르짖는 것보다 사실 더 어렵다. '쿨'한 작품이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 진정으로 개인적인 감수성의 가치이기도 하다. ■ 조선령
Vol.20060516d | 임국展 / IMGOOK / 任國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