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갤러리 스케이프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6_0511_목요일_06:00pm
갤러리 스케이프 서울 마포구 서교동 400-10번지 MJ빌딩 3층 Tel. 02_3143_4675 www.skape.co.kr
고산금의 작품은 텍스트를 순백의 오묘한 진주로 대치시켜 텅빈 모습으로 우리 앞에 보여준다. 균일한 진주알로 가지런히 놓여진 텍스트는 이제 그 의미를 모두 내려 놓은 채 우유빛 판넬 위에 겸허하게 빛나는 것이다. 초연해 진 텍스트는 비어 있으나 질서정연하게 빛난다. 고산금은 작품을 통해 아그네스 마틴이 노래한 대로 '비어' 있어 '무한히 밝고 오묘한' '평평한 길'을 구현한다. ● 10년이 넘는 뉴욕 체류를 끝내고 2004년 서울로 돌아온 고산금이 내놓은 작업은 그동안 계속된 재료 탐구, 일상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가졌던 표면 연구의 연장이다. 1995년경부터 집중적으로 나타난 표면 (또는 스크린)에 대한 애착은 판화와 회화를 공부한 그에게 예정된 일이었다. 과거의 작업에는 못, 실, 천, 왁스, 실리콘 접착제 등 표면과 바탕의 긴장관계를 높이는 물건들이 종종 나타나다가 점차 진주로 단일화되었다.
텍스트는 1996년부터 고산금의 작업에 등장했다. 자연적 모티프를 사용한 추상, 얼굴 등의 형상을 담던 그가 느닷없이 '수수께끼'라는 단어를 쓰기도 하고 왁스를 칠한 정사각형 캔버스 표면에 오일 스틱으로 손으로 직접 기존의 텍스트를 인용해서 쓰기도 했다: "...사계절의 경치를 그림으로 그려낸다는 것은 계절마다 그 맛과 분위기가 같지 않고 그 흐린 것과 맑은 기상이 각기 특색이 있어 다르다. 그러므로 그림을 그릴 때는 즉 계절이라는 조건을 살피고 그 때의 전후를 헤아려 그릴 줄 알아야 한다...이것은 마음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다." (1996) 이 작업은 마치 읽고 난 후의 감동을 그대로 캔버스에 담고 싶었던 듯 손의 흔적을 강조하면서도 노골적으로 개념적인 회화였다. ● 작은 원형의 형상이 모여 유기체적 군락을 이루는 것은 고산금의 초기 작업, 커다란 물방울 문양을 사용한 작업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어진 공업용 실리콘 풀을 녹여서 천에 점을 그린 작업도 같은 맥락이다. 천 위에 녹은 접착제를 한 점씩 반복적으로 붙여서 때로는 촘촘하게, 때로는 성기게 배열한다. 아직 텍스트는 사용되지 않았지만 물질성에 탐닉하는 그의 강박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진주는 처음에 왁스 입체와 연결된 선으로 사용되다가 (「진주의 본질」, 1996), 곧 액자 틀, 야구방망이 등 일상적 물건을 뒤덮는 표면작업으로 이어진다. 1997년, 그는 시를 모조진주로 기호화하는 작업을 시작하면서 진주가 가진 질감과 기표로서의 가능성에 눈을 뜬다. 흰색 벨벳에 모조진주를 풀로 붙여서 만든「세 개의 시의 변형」(1997)은 이번에 전시하는 시 작업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수년이 지난 후 그의 텍스트 충동은 진주라는 매개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 뉴욕타임즈에 장문으로 실린 남북관계에 대한 기사, 이창래의 소설『제스춰 인생』, 수잔 랭거의『형식의 느낌』, 할 포스터의『반미학』과 같은 현대미술이론 책 등에서 발췌한 텍스트를 '자역'하는 그의 진주작업들은 미니멀리즘적 외관과 개념주의적 과정을 엮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진주 외에도 뜨개질을 하면서 시와 노래를 짜고 있다. 찬찬히 메꿈과 비우기를 적절하게 사용하면서 바늘과 실로 텍스트를 담고 있다. 진주의 우아한 섬세함 대신에 단색의 우유빛 또는 베이지 색의 실로 "평평한 길을 짜고 있다."● 이러한 고산금의 표면실험, 텍스트 충동은 주로 사각형 틀을 통해 나타난다. 때로 원형틀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일관적으로 1990년대 초부터 그가 선호한 것은 직사각형, 정사각형 바탕 또는 액자틀이다. 사각형 나무틀에 일상적인 물건을 담고 그 위에 왁스를 붓기도 했고, 천에 실리콘 풀을 붙여도 정사각형으로 자른 천을 이용했으며, 텍스트/진주 시리즈에 사용된 나무 패널은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뜨개질 시리즈도 여전히 느슨한 때로는 틀을 짠 사각형을 사용한다. 액자틀을 진주로 뒤덮은 작업도 이런 사각형 충동의 일환으로 보여진다. 모더니즘의 기본 틀이었던 사각형 또는 격자문이 기본 틀이라는 점은, 마틴과 유사하게 아련한, 미니멀한 표면 아래에 숨은 고전주의적인 단아함, 부드러운 질서와 균형을 좋아하는 고산금을 드러낸다. 문자와 시각적 기호의 긴장관계를 이완시키는 진주, 뜨개질과 같은 여성적 영역의 것 이면에 담긴 조용한 고전주의자 고산금이 보인다. ■ 양은희
텍스트는 겸손하지 못하다. 그것은 오보에 대한 투명한 혹은 불투명한 함의를 가지면서, 어떤 사소한 형태라 하더라도 그것이 언어이기에 옳고 그름에 대한 논쟁을 내포하고 있다. 텍스트는 그 자체로 꽉 차 있는 것이다. 본 작업은 내용과 진실, 텍스트가 갖는 진실과 오보에 대한 함의, 언어가 갖고 있는 동시적 투명성과 불투명성의 관계, 그리고 의미에 대한 폭로와 숨김이라고 하는 양면성을 나타내고자 한다. 역사적으로 체계화된 신문의 편집형식, 즉 신문기사가 가지고 있는 문단, 활자의 통일성, 기사의 명료성 속에 상징성을 내포한 흰 백색의 사물인 순수한(신문기사와 어떤 연결도 없는) 진주알이란 오브제(한알의 진주를 알파벳 대신 패널에 접착 또는 다른 형식을 이용)가 개입되면서, 침묵의 언어가 진주속에 투영된다. ■ 고산금
Vol.20060511c | 고산금展 / KOHSANKEUM / 高山金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