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하는 병病들

정은영展 / siren eun young jung / 鄭恩瑛 / mixed media   2006_0504 ▶ 2006_0521 / 월요일 휴관

정은영_여기도 거기도 아닌Neither Here Nor There_천에 디지털 프린트_240×260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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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504_목요일_06:00pm

책임기획_안경화

브레인 팩토리 서울 종로구 통의동 1-6번지 Tel. 02_725_9520 www.brainfactory.org

다시, 여기를 꿈꾸며 ● 여성주의의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작업들은, 여성 개개인이 지닌 내밀한 이야기를 드러내며 여성, 타자, 마이너리티 등으로 치환할 수 있는 집단의 보편적인 문제를 이슈화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방식은 쉽게 공감대를 형성하면서도 외면당하기 쉽다. 답답한 현실은 해결책을 구하기보다 무시하는 편이 마음 편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해서 주목해 온 정은영은 당연하게 인식된 사실에 문제를 제기하고, 대면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되풀이한다.

정은영_꽃놀이In Full Blossom_단채널 비디오_00:05:18_2006
정은영_꽃놀이In Full Blossom_단채널 비디오_00:05:18_2006

「엄마가 죽으면」에서의 '엄마'는 보호라는 미명하에 딸들의 욕망을 금하고 죄악시하는 제도를 상징한다. 가부장제도와 이성애주의로 재단된 틀을 벗어나려는 딸들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한다. 그리고 거세될 수 없는 욕망은 구토, 호흡곤란과 같은 히스테리의 증후로 발현된다. 문화학자 크리스티나 폰 브라운(Christina von Braun)은 "수많은 금지와 거절로 채워진 '실체 없는' 정상적인 여성성의 강요에 대한 저항과 위반이 히스테리적인 증후들을 형성"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언어 또는 욕망이 거절되는 순간을 경험한 여성들은 몸으로 말하는 방식을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천식」에서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계속해서 들리는 여성의 기침 소리도 이러한 예이다. 이 여성이 기침을 유발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엄마가 죽으면」의 딸처럼 자각하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다만 빨래 이외의 행위를 하면서도 그녀가 끊임없이 기침을 하리란 추측을 할 뿐이다. ● 살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엄마와의 분리를 희망하는 딸의 곁에, 남편의 폭력과 두통에 시달리다 죽은 여자가 있다. 그녀는 미장원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남편에게 구타당한다. 「엄마가 죽으면」이 욕망의 좌절로 인한 히스테리 증상들을 말한 반면, 「그 여자의 두통약」은 철저한 자기검열로 스스로의 욕망을 은폐할 수밖에 없는 여성에게서 나타나는 동일한 증상을 보여준다. 생계를 책임지고 바쁘게 일해야 하는 여자에게 제도 밖의 무엇을 꿈꾸는 것은 사치에 불과하다. 제도 안의 허락된 세계에서도 그녀의 안락은 끊임없이 거부당한다. 두통약은 여자를 영혼의 안식처로 이끄는 주문呪文이다. 그곳은 작가의 말처럼 "거처를 알릴 수 없는 곳, 쓸모를 찾지 못해 버려진 어느 한 귀퉁이처럼,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 알려지지 않은 영토, 그러나 누군가 분명히 숨쉬고 있을 어느 타자들의 공간"이다.

정은영_천식asthma_단채널 비디오_00:02:15_2006
정은영_천식asthma_단채널 비디오_00:02:15_2006

여성들은 두통약을 먹지 않고도 잠시 동안 그곳을 경험하기도 한다. "꽃들이 천지사방에서 신경질적으로 발광發狂"한 곳으로 여성들은 「꽃놀이」를 간다. 무엇에 홀린 듯한 두근거림에 이끌려 비슷한 모자와 옷차림의 그녀들은 산으로, 길거리로 나선다. 브라운이 인용한, 전통적으로 여성의 육체는 안정적일 수 없는 유랑자이고, 덜 견고한 것이어서 비정상적인 광기들이 침범하기 쉽다는 서구인들의 시각으로 판단한다면, 그녀들은 히스테리의 또 다른 증후인 광기에 사로잡혀 있다고 볼 수 있다. 여자들의 광기 어린 말, 행위들은 기존의 제도가 요구하는 정상적인 여성성을 위협하는 것으로서 가두어지거나 추방되어야 한다고 간주되었다. 그래서 여자들의 말과 욕망은 정착지를 찾지 못한 채 정처 없이 떠돈다. 여성들은 잠시나마 꽃구경을 하면서 광기를 발산한다. 또는 「여기도 거기도 아닌」 어딘가에 있을 공간을 갈망하며 그곳을 찾아 나선다.

정은영_그 여자의 두통약Her Pill_단채널 비디오_00:06:48_2006
정은영_그 여자의 두통약Her Pill_단채널 비디오_00:06:48_2006

여성의 억압되거나 방랑하는 언어는 타인에 대한 집착으로 변질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사랑밖에 난 몰라」의 여성은 타인의 기준을 예측하고 그것에 맞춰가는 즐거움으로 살아간다. 우리는 자신의 욕망을 잃어버린 채 본인이 사랑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가부장제가 고안한 이상적인 여성상을 당연하게 수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는 그것에 의문을 품고 고민하고 저항한다. 그리고 일부의 일부는 다시 고민이전의 자리로 되돌아가고, 나머지는 병을 품고 살거나 떠나간다. 그런데 '여기'서는 거절된 언어를 되찾고 유랑하는 병을 치유할 방법이 없을까. 해답은 자명하다. 여성들이 자신들의 언어를 잊지 않기로 결심하고 기존의 가치에 맞서나가야 한다. 하루아침에 변할 리 없는 제도 앞에서 좌절하기보다 바늘만한 틈이라도 만들어 볼 궁리를 해야 한다. 명료한 해답과 달리 답을 구하는 방법은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프다. 그래도 두통약은 끝까지 거부하고 싶다. ■ 안경화

Vol.20060506b | 정은영展 / siren eun young jung / 鄭恩瑛 / mixed media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