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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419_수요일_06:00pm
동덕아트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51-8번지 동덕빌딩 B1 Tel. 02_732_6458 www.dongdukartgallery.co.kr
의식속에서의 나와 붓.종이의 융합 ● 젖은 종이 위에 먹을 율동 시킨다. 그림에서 먹이 한 점 찍히면서 선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한편으로 보면, 내가 먹을 통해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종이 속에 있는 종이의 성질을 통해 먹이 드러나는 것이다. 먹이 종이를 움직이게 하여, 종이가 스스로 움직인 것이다. ● 종이에 선이 시작되면서 먹과 종이는 함께 움직여간다. ● 종이에 먹이 번져나가면서. 즉 먹과 종이가 함께 호흡하면서 하나의 살아있는 파동이 생겨난다. 나의 작업은 점점 하나의 의식(儀式)처럼 되어간다. 나의 숨결의 장단에 따라 그림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위는 다른 시각으로 보면 나의 근원에 대한 느낌이 사유(思惟)가 변해가는 과정에 따라 붓의 강약(强弱), 빠름과 느림(지속(遲速), 건습(乾濕)의 변화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한 의식 같은 정신상태에서 붓이 그려내는 선의 맛은 나로서는 예측하기 힘들어 어떤 때는 우연적이면서 자연 발생적인 그런 효과가 나를 놀라게 한다. ● 세상과의 운율 - 선 : 나는 선의 색다른 맛들을 찾아나가고 있다. ● 선율에 나의 호흡을 점차적으로 불어 보았다. 음악에 선율이 있듯이, 나의 그림에서는 나만의 선율에 따라 선이 끊임없이 율동한다. 이는 절대 남의 눈에 읽혀지는 것이 아닌 나의 내적심상의 박자에 따라 강약을 띄고 세(勢)에 따라 떠오르거나 가라앉기도 하고 (浮沈), 푹 젖어들기도 하고 때로는 팽팽해지기도(寬緊) 한다. ● 내적 운율이 나만의 선으로 타오르면 결국 그림도 너울거리게 될 것이다. 나의 호흡의 장단에 따른 선의 운율로 세상의 깊은 곳을 읽어내고 싶었다. 세상은 조용한 듯 하지만 끊임없는 움직임으로 하나의 율을 만들어 내고 있다. 나는 이런 운율감을 통해 세상을 그리려한다. 나만의 감수성과 내면으로 좁혀 들어간 형상들은 바로 나의 깨달음이며 읊조림이라 할 수 있다.
경향태(傾向態)의 선 ● 흔히 선은 점으로부터 발생된 것 이라고 한다.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되고, 면은 덩어리(傀)가 된다고 한다. 그런데 선은 양 방향이 다 열려 있다. 따라서 점도 한 방향으로만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부자연스럽다. 점의 전개 역시 규정되고 제어된 상태가 아니라, 그 주위 모든 방향으로 무방향.무제어의 상태로서 생각해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 점은 전개의 완성으로서 자기의 상징적인 면을 갖는다. 그 전개의 형태는 괴체(傀體)가 될 것이다. 긴바라세이고(金原省吾,1888-1958)가 말하듯이, 선의 전개는 자기의 운동태(運動態)로 완성된다. 운동하는 내 선의 운동태적 아름다움은, 퍼지는 성질을 가진 색이 아니라 선이 어울리고 그것도 먹선이 어울린다. 선은 운동태적 속성을 갖고 있어, 우리는 선 속에서 어떤것으로 형성 되어가는 것을 느끼게 되고, 그 형성 속에서 존재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운동감각이 어느 순간 느껴지는 형체가 되고, 그 느낌이 무의식 속에서의 붓과 먹에 의해 결합된다. ● 즉, 선은 자신이 가지는 이 운동성으로 형체를 침전의 상태에서 운동의 상태로 옮겨온다. 그러한 형체는 필연적으로 세(勢)를 띄면서 우현(又玄) 고유섭(高裕燮, 1905-1944)이 말하는 경향태적 형체로 부상하게 된다. 화면 자체에서 보면 하나의 선이 그 호흡 자체였는데, 선의 반복 속에 형체를 대입시켜 보았다. 그리고 후에 대상이 있는 하나의 화면도 시도해 보았다.
과거 현재 미래는 하나 ● 나는 작업의 끝없는 연장선에서 현실을 이야기 한다. 미래와 과거 역시 한 맥락이다. 무규정적이고 무방향적인 시작과 전개는 무한히 풍부한 감성의 표출을 가능하게 하고, 나의 상징적 표현으로서의 선이라는 것이 그 점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동양화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선은 나에게도 가장 중요한 그 무엇이다. 사유는 계속 진행 되면서 깊어지고 변해간다. ● 그림 속의 선은 형과 색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끝없이 이야기를 한다. 그것은 전체이면서 하나이다. 적어도 내안에서는 그 어떤 경계도 제한도 없다. 모든 것이 시작이지만, 시작이 끝이고, 시작도 끝도 결국 다른 것이 아니라는「천부경」의 말처럼 말이다. (一始無始一.......一終無終一) ● 색의 화려함, 아름다움이 주는 매력이 절대 싫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의 화면 안에서 끊임없는 내적 운율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선의 율감에 집중해야만 했다. 동양화에서 이러한 화면이 설득력을 가지기에는 아직 탐구할 길이 멀다. 색이 화면 안에 들어오는 것은 조심스럽다. 지금은 시작이므로 선과 율에 대한 이야기와 그 변주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에 조급한 마음을 잠시 접어보기로 한다. ● 내적 운율로 만들진 그림은 내게 자조적인 반성을 준다. 모노톤의 화면과 계속되는 선율... 무수한 선 중 하나를 바라본다. 선은 일정하지 않다. 모두 다른 방향과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하나 하나의 선들이 모여 운율을 지어내고 있지만 그렇다고 개개의 선들이 무시되어선 안 될 것이다. 그것은 완벽하지는 않으나 존재만으로 충분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마치 세상 속 우리와 같다. 각자의 아름다움으로 우리는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룬다. 결코 혼자서는 살수 없는 세상, 작지만 큰 세상, 태초의 언젠가부터 시작되었고 언제 멈출지 아무도 모르는 그 작은 움직임은 세상이 끝날 때 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내 그림 안에서 추구하는 절대미(絶對美)이다. 이제 내 안에서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 나의 의식이 붓을 통해 화면에서 율동하는 한 이 세상처럼 나의 이야기도 영원할 것이다. ■ 백승은
Vol.20060419d | 백승은展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