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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06_0419_수요일_06:00pm
노암갤러리 서울 종로구 인사동 133번지 Tel. +82.(0)2.720.2235 www.noamgallery.com
COME INTO FLOWER ● 하나의 자연현상으로써 꽃이 피고 짐은 일종의 사건으로써 기록된다. 그 기록의 주체가 시간이라면 우주의 톱니바퀴 하나가 영원을 향해 진척하는 경우이겠고 공간이라면 거대한 풍경의 파노라마에서 작은 픽셀 하나가 더해지고 혹은 덜해지고의 경우에 해당한다. 그것은 때때로 하나의 작은 소우주로서의 어느 특정한 예술가적 인간에게는 삶의 희열과 낙망을 안겨주며 그 삶의 궤도를 뒤틀어 버리는 거대한 기제로 작용할 수도 있다. 우리는 겨울이 지나면 꽃이 핀다는 것을 안다. 계절은 삶에 있어서의 습관과도 같이 오고 간다. 계절의 순환은 아직 한 번도 그 타성을 버리지 않고 무던히도 작동한다. 적어도 우리의 삶에 있어서는 자연의 각 현상과 섭리가 감각과 인식의 순환 고리의 확고한 배경이다. 이 인과율이 선명한 경우를 두고 사건이라는 용어를 적용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왜냐하면 사건은 일어남이 예정되어 있지 않은 어떤 일, 나아가 예정되어 있지 않은 일이 불시에 일어나는, 현상학적으로 체계적이지 않은 어떤 일에 대한 용어이기 때문이다. ● 따라서 보편적인 인간이 꽃의 피고 짐을 사건이라고 느끼기 위해서는 일체의 기성화된 사유코드를 버려야 가능하다는 결론이 된다. 사유/사고는 예정되어 있거나 이미 감각화/인식화된 어떤 일들을 규명하고 그 의미에 대해 되짚어 보는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건은 외부의 타동의지가 탈각된 상태 혹은 그 의지 자체가 없는 경우에만 비로소 성립된다. 꽃이 피고 짐이 사건이 되느냐 아니냐는 예술가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문제다. 일례로 시인 최승자는 더 이상 사건이 일어나지 않음을 예견하고 다음과 같이 절망한다. "무슨 꽃을 보여 주랴? / 마술 상자 속의 꽃이 다 떨어졌으니" 사건이 생기지 않을 가능성은 피폐하고 메마른 정서와 연결되고 이런 상황은 예술가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인 위기가 된다. 이런 상태는 현대 철학의 중요한 명제인 존재의 무의식적 불안을 야기하기도 한다.
작가의 감성은 꽃의 낙화지점에 갇혀 있다. 이미 꽃은 다 져 버리고 그 흔적조차 없어진 여름 한낮에 작가는 물병 속에 넣어 냉장보관 해 둔 꽃의 시체를 꺼내 안타까워한다. 따라서 그 죽은 꽃의 물관에 수액을 주입하고 희미해져가는 꽃의 생명을 되살리기 위한 일체의 행위는 제의적인 일이다. 제의에서 비롯되는 주술적인 일들은 몰입에 기반한다. 또한 몰입은 가장 기초적인 상상력을 자극한다. 죽은 꽃잎을 앞에 두고 가정될 수 있는 상상력은 죽은 꽃잎을 되살리는 일에 대한 것일 뿐이다. 따라서 상상력은 빠르게 재현의 문제를 일으키고 나아가 더욱 더 빠르게 상상과 실존의 충돌을 야기한다. 일종의 도그마dogma가 되며 작가로서는 창작의 감옥에 갇히게 되는 셈이다.
작가는 사건의 주체이자 명백한 증거물로써의 꽃잎이 계절의 순환을 따라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따라서 재현될 수 없는 것의 재현(칸트)에 몰두하는 셈이다. 꽃잎에 대한 단상들은 무수한 드로잉과 갖가지 방법을 동원한 기록물로써 채집된다. 이 작업들은 일련의 방향성을 가지고 진행된다. 일차적으로 이미지의 재현에 대한 문제, 그리고 구체적인 형태가 더 해지는 단계, 그리고 이미지를 표명하는 꽃잎의 표면성을 버리고 꽃잎의 형태 자체를 하나의 독립된 구조물로써 제시하는 단계에 다다른다. 이 경우 꽃잎은 꽃잎이 아니며 차가운 인공물로써의 즉물성만 남는다. 즉 작가의 작업과정은 비록 단선적인 궤도를 따르지만 매 작업 단계마다 꽃잎의 본질에 대한 입장은 확장되고 증폭된다. 최종적인 작업의 결과는 지극히 냉정하고 객관적이다. 들끓던 내면의 갈등과 불안이 일정기간을 거치면서, 탁류 하던 물줄기가 새로운 지평을 만나 잠잠해지듯 수직적 관점에서 수평적인 관점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작가는 그간 꽃잎위에 남겨진 색채와 드로잉의 흔적들을 일거에 우레탄 도장으로 덮어버린다. 지극히 공업적이고 기계적인 도장과정에 더해 열처리를 통한 단단하고 광택 나는 표면성을 도출시키는 것이다. 이때 취해진 색도 어떤 상징이나 은유체계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단지 편의상 무작위적으로 선택되어진 것뿐인 것이다. 이때의 상태는 감성의 전복 혹은 이탈과 연관된다. 즉 하나의 사건으로써의 꽃잎의 피고 짐은 왜곡과 변형과정을 거쳐 박제라는 형식으로 종결된다. 리비도적 환영과 충동이 역설적인 작업 장치를 통해 소멸/은폐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정황들은 새로운 단계의 예술적 숙고를 예비한다. 피상적일 수 있던 사건이 삶의 일부가 되고 그 일부가 작가적 신체의 전부가 되는 것은 매우 평이한 예술의 이행과정이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삶 둘레에는 보여지기 위해 능동적으로 나타나는 것과 자폐적으로 숨어드는 것들이 있다. 표면적이든 본질적이든 이런 현상은 음양의 규칙을 제시하며 하나의 구조가 된다. 열정을 담보한 예술가적 상상력은 이러한 구조의 틈새에서 그 통찰력이 드러나야 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사건으로써의 꽃이 피고 짐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은 정당성이 있다. 새가 울고, 꽃이 지고, 지평선이 기울고, 바다가 일어나고, 숲 속으로 바람이 달리는 것은 우리의 삶 주변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부를 지탱하는 에너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 홍순환
Vol.20060419b | 김초희展 / KIMCHOHUI / 金初喜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