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

나무 깎던 노동자 목수 최병수가 화가 최병수에게,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 "목수보다는 화가라고 말하는 게 더 그럴듯하고 기분 좋은 거 아니냐고? 그런 건 없었어. 나도 세상 물 먹은 사람인데 그런 게 별거 아니라는 건 알지. 그래서 둘이서 30분을 버티고 앉아 있었어. 그 형사도 이상한 고집을 피우데. 나를 화가로 적지 못하면 자기도 못나가고 나도 못나간다는 거지. 그렇게 서로 버티다가 우스운 생각이 들었어. 저쪽에서 친구들이 담배를 피우며 기다리고 있기도 했고. 그래서 어차피 별것 아니니까 "그럼 마음대로 하시오." 그랬더니 형사가 조서에 '화가' 이렇게 찍었지. 그래서 사람들이 농담을 섞어서 나보고 관제화가라고들 했지. 나를 화가로 만든 건 경찰이야. 난 정부가 인증한 공식화가라고." - 본문 67쪽에서 그의 이름보다도 작품이 더 많이 알려진 작가, 최병수! ● 사람들은 '최병수'라는 이름은 몰라도 그가 만든 걸개그림「한열이를 살려내라!」나「노동해방도」,「장산곶매」는 거개가 알고 있다. 그가 만든 작품들은 한 시대를 대변하는 언어이자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열망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80년대를 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의 걸개그림들을 이야기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90년대 들어서서 그의 활동은 주로 로이터, AP, AFP 등 외신을 통해 국내 언론에 알려졌다. 「쓰레기들」「펭귄이 녹고 있다」「우리는 당신들을 떠난다」와 같은 작품으로 전 세계를 제집 드나들듯이 활동했으며, 그런 그의 활동은『Times』등에도 소개되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도 그의 작품과 이름이 나온다.

평택 대추리의 미군부대 앞 논에 세워진「지옥의 묵시록」_2003

'국졸' 출신의 목수에서 국제적인 환경미술가가 되기까지 ● 최병수는 무학(無學)이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들어간 전수학교 2학년 때 자퇴한 이후, 그는 신문배달부을 비롯해서, 중국집 배달부, 전기공, 웨이터, 보일러공, 공사장 잡역부, 선반공 등 온갖 직종을 전전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화가'가 되었다. 미술대학에 다니던 친구의 집 담장에 벽화를 그리기 위한 발판 만드는 일을 거들어주다가 그는 졸지에 경찰서에 구치되었다. 경찰서에서 그의 구속 요건을 고민하던 형사는 그의 직업을 목수가 아닌 '화가'로 등재시켰다. 80년대적 상황의 한복판에서 그는 그렇게 억지로 '화가'가 되었고, 그 이후 그는 '진짜 화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우리 사회가 만든 미술가였던 것이다. ● 90년대 들어서도 민주화의 현장이나 노동, 반전, 반핵, 환경, 여성, 장애 등 우리 사회의 긴급한 현안과 관련된 곳에서는 그는 어김없이「장산곶매」「쓰레기」 등과 같은 그의 걸개그림과 함께 있었다. 그중에서도 그는 90년대 초부터 지구환경 문제에 본격적으로 개입한다. 그리고 활동 영역도 국내만이 아닌 국제사회의 한 가운데로 뛰어든다.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로, 뉴욕의 유엔본부, 터키의 이스탄불, 일본의 히로시마와 교토,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네덜란드의 헤이그,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 베트남, 이라크 등 세계 각지에서「펭귄이 녹고 있다」「지구반지」「우리는 당신들을 떠난다」와 같은 걸개그림, 설치작품, 퍼포먼스를 요구했다. 그는 미술계의 단순한 미술가가 아니라 세계가 주목하는 '사회면 미술가', 행동주의자였다.

걸개그림「노동해방도」를 제작하는 장면_1987

위암과 교통사고 끝에 얻은 20년만의 휴가, 그리고 책 ● 2000년 그는 새만금을 살리기 위해 새만금의 해창갯벌에 70여개의 솟대와 장승을 세웠다(지금 이곳은 '새만금 장승벌'이라고도 불린다.) 새만금 갯벌살리기 운동을 하는 도중에 그는 다시 북한산 사패산으로 달려갔다. 사패봉 입구에 'NO TUNNEL'이라는 망루를 설치하고 그곳에서 북한산 관통도로를 저지하기 위한 운동을 벌였다. 2003년, 다시 그는 이라크 공습 직전에 인간방패가 되기 위해 이라크를 향해 나섰다. 가는 도중 요르단 암만의 한 호텔에서 갑자기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병원 의사진의 만류를 뿌리치고 끝내 이라크 바그다드로 들어갔고, 거기서 그는 걸개그림을 걸어놓고 퍼포먼스를 하면서 반전행사를 벌였다. 돌아와서 그는 다시 한 번 피를 쏟았다. 병원 진찰 결과 위암 3기였다. 위의 2/3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세상은 병실에 있는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퇴원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매향리로, 또 평택의 대추리로 달려가 미군기지 확장반대투쟁을 벌였다. ● 그리고 지난해 그는 교통사고마저 당했다. 비로소 그는 자신이 환자임을 깨달았다. 이후 그는 되도록 대외활동을 자제한 채 따뜻한 남쪽나라 여수에 거처를 정하고 백야도라는 섬에서 '20년만의 휴가'를 보내고 있다. 『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라는 이 책은 그렇게 해서 가능했다. 지난 20년의 활동을 뒤돌아보면서 최병수가 하고 싶었던 말 ● 지난해 최병수가 먼저 출판사로 전화를 해와 책을 만들고 싶다는 제안을 했다. 이미 출판사에서는 지난 95년에 최병수의 책을 내고자 김진송과 최병수가 여행을 하면서 그의 삶과 예술, 그리고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녹취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작업은 당시 책으로 나오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당시 전국을 휩쓸던 피라미드에 가입했다가 그는 심신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0년이 훌쩍 지난 뒤, 그리고 위암수술을 받고 난 뒤의 그의 출판 제안은 적잖이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 그는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다. 결국 김진송이 산파역을 맡으면서 그의 하고 싶은 말을 끌어내도록 했다. 김진송과 출판진은 강화도로, 대추리로, 마석으로, 여수로, 근 1년을 그가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 다니면서 그의 말을 기록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세상에 대해, 사회운동에 대해, 지구환경에 대해, 미술에 대해, 그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 그는 지적으로 세련되게 말하거나 논리를 다루는 데 능숙하지 않다. 그럼에도 그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솔직하게 토해 내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누구든 그에게 빨려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진정성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걸개그림「장산곶매」를 제작하는 장면_1991

2002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리우+10 세계정상회의' 행사장 앞에 설치된 얼음 펭귄조각. 펭귄조각의 목걸이에 '남극의 대표'라는 말이 쓰여 있다.

"이 책이 출간되어 나오면 비로소 졸업장을 받은 기분이 들 것 같다!" ●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최병수에 관한 책이다. 그가 나고 자라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세상에 대해 눈을 뜨고, 그러다가 졸지에 '화가'가 된 이야기, 그리고 그 이후에 사회운동, 미술운동, 지구환경운동을 하면서 겪고 느낀 것을 최병수 특유의 솔직한 언어로 말하고 있다. ● 책을 준비하면서 최병수는 이 책에 거는 기대를 이렇게 말했다. "비로소 졸업장을 받은 기분이 들 것 같다."고. 그는 노동자에서 화가로 변신했던 86년부터 20년 동안 그야말로 숨가쁘게 앞만 보며 달려왔다. 어떤 이들은 중도에 좌절과 침묵의 시간을 보낼 때도, 또 모두들 과거의 후광 속에서 현재를 만끽하고 있을 때도 그는 줄곧 한 길만을 달려왔다. ● 그는 자신이 책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많은 것을 정리하고 있다. 처음으로 지난 20년간의 자신을 성찰적인 태도로 뒤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라는 책의 제목은 바로 그런 뜻을 담고 있다. 노동자였던 목수 최병수가 화가 최병수에게, 그리고 그 반대로 화가 최병수가 목수 최병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형식으로 자신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특이한 경력의 화가, 특별한 그의 예술 ● 최병수가 특이한 방식으로 화가가 되었던 만큼이나 그의 예술은 매우 특별하다. 최병수 역시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한다. 하지만 작품의 내용과 방법에서 그는 상투적인 화가의 조건에서 벗어나 있다. 그가 미대를 나오지 않았다는 것, 게다가 국졸 출신이라는 것, 화가가 되기 전의 마지막 직업이 목수였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작품은 미술관이나 화랑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가 사방 10m 가까이 되는 걸개그림을 메고 등장하는 순간, 그는 노동자이자 운동가이며 예술가로 변신한다. 때로는 로프를 둘러메고 건물과 가로수를 오르며, 때로는 엔진톱을 들고 얼음과 나무를 깎아대고, 때로는 가면을 뒤집어쓰고 거리를 나서며, 때로는 포크레인을 타고 하늘에 매달린다. ● 최병수는「한열이를 살려내라!」를 시작으로 거침없이 시대의 들판을 달려왔다. 때로 노동해방을 꿈꾸기도 했고(「노동해방도」),「장산곶매」가 되어 역사의 산맥을 넘나들기도 했다. 반전반핵을 외치고(「반전반핵도」),「성장한 야만」에 조소를 보냈다. 전쟁을 막기 위한 인간방패가 되어「야만의 둥지」속으로 서슴없이 들어가기도 했다. 그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현장에서 요구되는 예술이었다. 그런 만큼 그의 작품들은 현장에서나 볼 수가 있었다. ● 『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에서는 될 수 있는 한 많은 작품들을 보여 주고자 했다. 현장에서만 볼 수 있었던 최병수의 예술을 한 자리에 모아보고 그것을 독자들에게 선보이고자 하는 의도에서였다.

걸개그림「우리는 당신을 떠난다」_2000

20년 가까이 지켜봐 온 목수 김씨 김진송이 화가 최병수를 보는 눈 ● 한때 미술인으로서 전시기획과 미술평론을 했던 김진송은 최병수와는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버젓한 대학을 나오고 대기업에 취직했다가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후 미술인으로 활동하다가 그는 돌연 목수로 전업, 지금까지 목수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최병수를 만난 것은 미술잡지의 기자로 있을 때였다. 그러니까 그는 15년 넘게 최병수를 지켜봐 왔다. 최병수를 볼 때마다 그는 한편으로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최병수가 조금도 주저함 없는 실천적 삶을 살고 있을 때, 김진송은 회의와 갈등, 불안, 주저함을 보일 수밖에 없는 먹물 지식인이었기 때문이다. ●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김진송은 최병수를 보면서 인간적인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지금껏 어떤 일도 최병수가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해 온 것이 없는 것도 그러하며, 세상이 그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는 것도 그런 것이다. 김진송은 최병수가 이 시대의 진정한 작가임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 중에서 인류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행동주의 미술가이자 실천적인 화가의 한 사람이 바로 최병수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김진송의 착잡한 시선과 애증이 최병수의 이야기 중간중간에 섞여 있으며, 최병수와는 다른 방식으로 최병수를 정리해보고 있다. 물론 그는 최병수로 하여금 하고 싶은 이야기를 최대한 할 수 있도록 자신의 목소리를 낮추었다.

'꿩 먹고 알 먹으면 멸종이다' 여름 어린이 환경캠프에 참가한 어린이와 부모들이 「나침판이 녹고 있다」위에서 행한 퍼포먼스 장면_1999

차례 ● 첫째 날_나 어렸을 때 / 돈벌이에 나서다 / 지워진 벽화 / 화가가 되다 둘째 날_판화를 새기다 / 한열이를 살려내라! / 그는 혼자다 / 죽음의 행렬 셋째 날_피라미드에 무너지다 / 리우의 쓰레기들 / 펭귄이 녹고 있다 / 지구반지, 주인을 찾습니다 넷째 날_새만금, 해창 갯벌의 망둥어 / 초심불심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 / 사패산 망루에서 / 요하네스버그의 칵테일파티 / 구름에 실어 보낸 평화의 솟대 다섯째 날_이라크, 너의 넋이 꽃이 되어 / 병 그리고 그 후 뒷 이야기_목수화가 최병수 연대기

지은이 ● 최병수 1960년에 태어나 서울 상도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 전수학교를 2년 다니다 그만두고 중국집 배달부에서 공사장 잡역부, 보일러공, 전기공, 목수 등의 직업을 전전하다. 1986년 '정릉벽화사건'으로 화가의 길에 들어서 걸개그림「한열이를 살려내라!」와 「노동해방도」,「장산곶매」등을 그려 알려지기 시작하다. 이후 반전반핵운동, 노동운동의 현장에서 수많은 그림을 그리다. 새만금 갯벌살리기, 사패산터널반대운동에 참여하면서 미술을 통한 환경과 생명운동을 벌이다. 브라질, 네덜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환경관련 국제회의에 참가하여「펭귄이 녹고 있다」,「떠도는 대륙」등 여러 작품으로 주목을 받다. 2003년 이라크반전평화팀으로 참가하여,「야만의 둥지」를 설치하고 퍼포먼스를 벌이면서 반전활동을 벌이다. 제5회 교보생명환경문화상 예술부문 대상, 2004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민족예술상 개인상을 받았다.

지은이 ● 김진송 1959년 서울 생. 국문학과 미술사를 공부하다. 근현대미술과 문화연구에 관심을 두면서『현대성의-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장미와 씨날코』,『기억을 일어버린 도시』,『이쾌대』등을 쓰다. 나무작업을 하면서 다섯 차례의『목수김씨전』을 열고『목수일기』,『나무로 깎은 책벌레 이야기』를 펴내다.

Vol.20060415d | 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 / 지은이_최병수, 김진송 / 현문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