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무니 없는 이야기 Unreasonable Story

민정수展 / MINJUNGSOO / 閔貞守 / sculpture   2006_0412 ▶ 2006_0418

민정수_터무니없는 이야기_혼합재료_6×6×7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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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412_수요일_05:00pm

큐브스페이스 서울 종로구 관훈동 37번지 수도약국 2층 Tel. 02_720_7910

내 서랍장 안의 보물, 진실한 이야기 ● 인간은 존재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강요된 선택의 자유를 가질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가 우리의 사유를 규정한다. 작가들에게 존재는 자신이 처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작가들 중 몇몇은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이 작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척박할 때에도 그 열정으로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그 작가의 존재와 사유를 표현했다. 예를 들면 이중섭의 은지화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며 강익중의 3인치짜리 작품도 그렇다. 그리고 민정수의 『터무니없는 이야기』시리즈도 그렇게 태어났다. 민정수는 조각가를 꿈꾸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결혼한 여성작가들이 그렇듯이 그녀에게 그 꿈은 항상 과거의 것이거나 미래의 것이었다. 특히 조각이 가지는 매체적 특성은 그녀에게 한계로 다가왔고 현재를 좋은 엄마, 좋은 아내로만 한정짓게 했다. 현실적으로 작가의 꿈이 멀어질수록 그녀는 더욱 욕망하고 창작에 대한 욕망은 욕구로까지 내달았다.

민정수_터무니없는 이야기_혼합재료_43×29×31cm_2006
민정수_터무니없는 이야기_혼합재료_39×58×72cm_2006

2. 운명적 만남은 우연과 필연이 만나 열리는 바로 그 틈새에 있을 것이다. 갑자기 마주치게 된 우연이 필연으로 작용하는 것 말이다. 작가의 꿈이 점점 사라지던 그때, 민정수는 섬광처럼 다가오는 그런 날카로운 만남을 가졌다. 어느 날 남편을 마중 나갔다가 아파트 단지 화단 옆에 버려진 작은 상자와의 우연한 만남. 예전에는 소중한 것이 담겨져 있었을 작은 상자, 하지만 지금은 그 상자를 감쌌을 헝겊도 벗겨지고 녹슬어 버려진 작은 상자, 더 이상 이 세상에서 효용가치를 다한 것 같은 그 상자. 그녀에게 이 상자는 자신의 꿈에 존재하지 않았던 현재라는 시점을 만들어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마법 상자처럼 보였다. 녹슬고 낡은 상자는 작가에게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틈을 열어주었다. ● 주어온 상자에는 그 상자의 용도를 알려주는 어떤 표식도 없었다. 다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작가는 이 상자에게 소중한 약속 또는 축복을 담았을 반지 케이스라는 과거를 주었다. 집에 있던 반지 케이스의 속을 상자에 입히고 그곳에 소중한 꿈을 아기천사 반지에 담아 넣었다. 그렇게 작가는 작은 상자에 자신을 투사했다. 이제 상자는 그녀의 꿈을 담는 세계이며 그 안에 담긴 보석반지는 그녀 자신의 욕망이다. 그리고 이 작은 상자는 작가로서 한정된 조건을 뛰어넘을 수 있게 했다.

민정수_터무니없는 이야기_혼합재료_48×48×30cm_2006
민정수_터무니없는 이야기_혼합재료_48×48×30cm_2006

3. 아이들은 책상서랍에 자신의 보물들을 소중하게 보관한다. 남자아이들은 구슬, 딱지, 로봇, 비행기, 총, 과자에 딸려오는 장난감 등을 서랍 안에 모은다면, 여자아이들은 인형, 예쁜 포장지, 리본, 머리핀, 반지, 악세사리, 소꿉장난 용품 같은 것들을 예쁜 상자에 담아 서랍 안에 보관한다. 이런 아이들의 보물은 어른들의 눈에는 하찮은 잡동사니, 쓸모없는 쓰레기로만 보인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이것들은 현실에서 획득한 전리품이고 꿈이다. 그래서 이것은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 유년을 떠올릴 수 있게 하는 기록이 될 것이다. 이번 민정수의 전시,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마치 아이의 보물이 담긴 서랍장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 우리는 『터무니없는 이야기』의 초기 작품들에서 작가의 유년의 기억, 현실의 삶과 마주하게 된다. 특히 「터무니없는 이야기 2」에서 그녀는 자신의 삶을 상자 안에 고스란히 재현한다. 어릴 적의 소중한 꿈과 기억들, 성장하면서 겪었던 사랑과 슬픔, 좌절, 행복을 반지 하나하나에 담아냈다. 그녀에게서 이 반지들은 과거의 기억이며 현재의 기록들이다. 그녀는 마치 일기처럼 개인적인 이야기, 자신 주변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에서 이 작업을 시작해서 이야기의 주제를 사회에 대한 관심, 자연에 대한 관심으로 점점 시야를 넓혀갔다. 특히 작가는 존재로서 몸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이 신체는 개인적인 것에서 사회적인 몸으로, 자연으로 확장되었다. 꽃처럼 벌레들을 화분에 꽂아 놓은「터무니없는 이야기 12」는 자연과 생태에 대한 관심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아름다운 작은 벌레에 대한 동화같은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여기에는 문명에 대한 비판, 생명에 대한 애정이 예리하게 숨어있다. ● 이처럼 민정수는 개인적인 이야기 뿐 아니라 사회적인 주제를 다룰 때에도 거창한 이야기가 아닌 놓치기 쉬운 작은 것에서 이야기한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가 터무니없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하지만 결코 이것은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무의식이라는 진실은 말실수나 농담같은 아주 사소한 것을 통해 드러난다. 그래서 무의식의 진실은 허튼 소리처럼 이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거대한 현실을 지탱하게 하는 것은 완벽할 정도로 잘 돌아가는 시스템이 아니라 그것을 오작동 시키는 작은 나사못과 같은 것이다. 그림 속에서 이 나사못, 실재는 작은 얼룩 같은 것이다. 민정수의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진실을 이야기하는 무의식이며, 삐딱하게 봐야 제대로 볼 수 있는 왜상처럼 작용한다. 그런 점에서 그녀의 반지는 상상과 상징과 실재를 연결하는 보로매우스의 매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정수_터무니없는 이야기_혼합재료_90×70×6cm×4_2006
민정수_터무니없는 이야기_혼합재료_2006
민정수_터무니없는 이야기_혼합재료_2006

4. 이제 반지들을 줌인 해보자. 반지 위에는 올려진 보물들은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신체, 사물, 동물, 곤충 등으로 나타나는데 이것들은 상상계적인 특성, 전외디푸스적인 성향을 보여준다. 이 세계는 지극히 여성적이고 그녀는 이것들을 통해 여성적 향유를 드러낸다. 특히 그가 다루는 몸은 유기체로서 신체라기보다는 그야말로 사물, Thing이다. 그래서 보석처럼 올려진 신체에서 온전한 신체를 찾을 수 없다. 잘려진 신체, 부분으로만 존재하는 몸은 그저 사물이며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절단하는 행위는 그자체로 충동적이다. 또한「터무니없는 이야기5」의 절단된 손에서 볼 수 있듯이 절단된 손을 칭칭 동여맨 체인, 못 박힌 손 등 매우 공격적이다. 이것은 절단된 발에서도 그렇고 음식그릇 안에 아무렇지 않게 들어가 있는 얼굴이며, 눈에서도 상상계적 공격성이 드러난다. 마치 유아기의 아이들이 공격적 성향을 가지듯이 그녀의 작품들은 그런 상상계적 질서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상징계적 질서를 위협할 수 있는 위험한 실재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 반지의 구조는 무의식의 위상학과 닮아 있다. 반지란 손가락이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있는 동그라미이다. 「터무니없는 이야기」의 반지들은 상징계처럼 닫힌 구조가 되고자 한다. 하지만 상징계를 뚫고 나오는 실재처럼 반지 위에 놓인 사물들이 반지의 진짜 주인이다. 이것이 반지를 반지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민정수_터무니없는 이야기_혼합재료_56×31×8.5cm×5_2006
민정수_터무니없는 이야기_혼합재료_28×29×80cm / 32×20×80cm_2006
민정수_터무니없는 이야기_혼합재료_18×7×8cm_2006

5. 기억은 근본적으로 산만하고 상상적인 특성을 지닌다. 과거의 기억은 무의식적인 욕망에 따라 계속적으로 재형성되고 그만큼 증상이 생긴다. 민정수의「터무니없는 이야기」는 기억을, 무의식적인 욕망을 계속해서 반지로 만들어낸다. 900여개의 반지는 무의식이며 증상이다. 이 증상들은 가정된 '객관적 사실들'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환상에 의해서이다. 환상이란 주체가 자신의 욕망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며 소멸해 가는 욕망의 수준에서 주체가 자신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환상에 의해서이다. 그런 점에서 그녀의 반지는 그녀를 주체로 유지해주고 그녀의 무의식적 욕망을 드러내는 환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반지의 구멍은 상징적 세계, 그리고 그 닫힌 세계를 뚫고 나온 소중한 꿈들은 실재이다. ● 환상은 무의식적 욕망이 상연되는 무대이지만 또한 실재와 만나는 곳이자 위험한 실재를 방어한다. 그런 점에서 예술은 환상을 보여줌으로써 이 사회를 지탱하게 해준다. 실재는 잔인하기도 하고 터무니없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이 있기에 상징계는 존재한다. 이것이 실재가 가진 윤리이며 이데올로기이다. 그리고 민정수의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실재의 윤리를 들려주는 진실한 이야기이다. ■ 박수진

Vol.20060415c | 민정수展 / MINJUNGSOO / 閔貞守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