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6_0413_목요일_06:00pm_무등 갤러리
무등갤러리 / 2006_0413 ▶ 2006_0419 광주 동구 궁동 51-25번지 예술의 거리 Tel. 062_236_2520
큐브스페이스 / 2006_0705 ▶ 2006_0711 서울 종로구 관훈동 37번지 수도약국 2층 Tel. 02_236_2520
삶과 역사의 표상으로서 옷의 형상성 ● 옷은 사람의 사회적 외피이다. 기본적으로는 자연상태의 알몸을 가리거나 보호하기 위한 인위적 수단이지만 그 필요성 자체가 사회적 의미와 문화를 이루게 된다. 개인에게 옷은 날개가 되기도 하고, 사람을 달리 보이게 한다. 서로간의 관계와 체제로 사회적 삶과 문화를 만들어내는 다중의 집단 속에서 옷은 여러 문화유형으로 다양해지면서 단지 피복이라는 일차적 기능 외에 개인과 사회의 표정으로 읽혀지게 된다. 또한, 옷은 사회적 삶의 흔적이다. 누구에게 또는 어떤 무리들에게, 어느 시대에, 어떤 신분의 표식으로 입혀졌는가에 따라 옷 한 벌은 꽤 많은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한 벌의 옷은 그 옷을 대하는 관계와 이유에 따라 한 개인의 삶의 체취와 존재를 환기시켜주기도 하고, 그가 살고 있거나 살았던 시대와 역사를 풀어내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사실 도시의 일상에서도 무수히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의 인생살이와 현재 삶을 짐작케 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박상권이 벌써 수 년째 다루고 있는 연작 소재가 '옷'이다. 그의 주된 관심은 정통 조각작품으로서 '구체적 형상성'보다는 옷에 담긴 사회적 의미들을 '관념적 형상성'으로 풀어내는데 있다. 표현방법 또한 "사물이나 사건의 이미지를 찾아내는 데 필요한 방법적 요건으로서 미완결된 형식을 취하며, 극도의 단순화된 형태 속에 최대한의 의미를 담고자 한다". '장구한 시간의 퇴적이자 응고물인 바위'를 깎고 털어내 옷의 형태를 새겨 내지만 그 둔탁한 옷의 형체들에는 특별히 조형적 꾸밈이나 설명적인 요소가 올려져 있지는 않다. 옷의 주체들은 사라진 채 텅 빈 껍데기로 서 있거나, 웅크리거나, 허수아비처럼 두 팔을 벌린 형상들인 박상권의 돌로 빚어진 옷들은 그 자체가 어떤 개인이면서 동시에 보편적 인간의 모습이기도 하다. 지극히 단순해 보이는 옷들은 그가 담아내고자 하는 절제되고 함축된 '관념적 조형성'으로서 소통언어들이다. 물론, 기본 형태는 한복 저고리나 두루마기 모습들이고, 그 속에 내재된 정신이나 혼을 드러내고 싶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박상권이 전통적 조각이나 한국적인 것을 조형화시켜내는데 지나치게 얽매이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의 둔중한 옷의 형상들은 하나같이 무수한 파편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의 유년시절 기억이나 문화적 체험, 고단한 어머니의 삶, 아니면 굴곡진 한국 역사에 대한 잠재의식들이 크고 작은 파편들로 조각나고 다시 일정한 한복의 형상으로 공들여 접합되기도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에게 옷이라는 소재는 인간의 삶과 역사를 대변하는 사회적 표상이고, 그 무수히 갈라진 틈새들은 그 삶과 역사를 이루는 무수히 얽힌 결들이며, 동시에 외부 환경과 내면 사이에 끊임없이 연결되는 영향관계의 통로들인 셈이다. 그러면서도 실루엣처럼 단순화된 그의 '옷'들은 세월의 앙금과 풍상들로 응결된 거친 겉면들과 달리 오히려 안쪽은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다. 수없이 외적인 것들과 부딪히고 부대껴야만 하는 인간 삶이 고달프고 그 고통이 클수록 더 내적으로 삭혀질 수밖에 없는 삶의 실체에 대한 작가 의식의 표현일 것이다. 어쩌면 옷이라는 형태를 가진 물리적 덩어리를 새겨내면서도 그 속은 비우고, 더구나 거친 외형과 달리 안쪽은 곱게 다듬어내는 작업 방식은 그가 말하는 물질과 정신, 채움과 비움, 밖과 안을 달리 보는 이원론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박상권은 전통문화의 토양이 유독 인간 생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는 진도출신이다. 어려서부터 화가를 꿈꾸었던 그는 조각을 전공하던 수업기에 여러 차례 퍼포머로서 굿판을 벌리기도 했는데, 그 퍼포먼스 대부분 역시 인간 삶을 둘러싼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와 환경 문제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작가의 내면을 군중 속에 외화된 몸짓으로 펼쳐내던 그 퍼포먼스들과, 이후 공공성이 우선되는 조형물들을 작업하면서도 정작 그의 예술적 창작세계는 최대한 절제된 '관념적 형상성'을 추구하고 있다. 언어의 군더더기가 많을수록 오히려 본질의 소통에 담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역사-한국인'을 주제로 한 박상권의 이번 첫 발표전은 "한복의 선을 빌어 한국인의 정신성과 삶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었던" 몇 년간의 작업들을 한 자리에 모아 보는 자리이다. 소통수단으로서 조형언어의 보편성은 갖추되 모색기의 숙고와 천착 과정들에 한 매듭을 지어 조형적 독자성을 세워나가고자 하는 의지의 실행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를 통해 문화적 뿌리로서 자기 정체성과 '국제적 현대감각으로 통하는 미의 원칙' 사이의 모색과 혼돈에서 창작세계의 갈피를 잡고, 그가 펼쳐내고자 하는 조형언어로서 형상화 작업에 새 장을 열어가기를 바란다. ■ 조인호
나는 수천, 수만 년이란 장구한 시간의 퇴적물일 뿐만 아니라 시간에 의해 마모되는 과정에 찰나적으로 개입한다. 이제 바위는 지면 깊숙이 자기존재를 은폐하고 있던 시간의 응고물이 아니라 자기존재를 드러내는 전시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상당수의 젊은 작가들이 나침반 없이 길을 떠나는 사람처럼 맹목적으로 작업에 임했다가 막다른 골목에 봉착하게 되면 미련 없이 방향전환을 하는 태도와는 사뭇 다르게 나는 사물과 자연의 법칙에 대해 숙고하고 나의 나름의 해석을 토대로 꾸준히 작업으로 연결시켜 나아왔다. 예술은 가장 정신적인 인간의 행위이며, 역사의 전통이라는 토양 속에서만 훌륭한 예술작품이 생산 될 수 있다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조상들이 물려준 한국미의 독특한 창조적 원동력을 찾아내,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현대적 조형언어의 조각으로 구현하는 작업으로 일하고 있다. 물론 그것은 선조들을 모방하거나 재현하려는 방식은 아니다. 나는 조상들의 정신을 조각 작품에 적극적으로 도입할 것이다. 지나치게 목적의식적으로 우리의 전통적인 조각, 한국적인 취향이 물씬거리는 조각을 강변하려는 의도적, 작위적 제스쳐의 호흡보다는, 나의 느낌과 감각에 의해 해석된 만큼을 재미있고 자연스럽게 연출해내는 솔직함이 보다 내려와 않아 있다는 생각이 우선하고 있다. 그것은 나의 유년시절의 자연스러운 문화적 체험이고 전통적, 풍토적, 인습적 사고의 중심에서 길어 올려진 그래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유하고 있는 그런 것들의 드러냄이고 연출이고 제작의 얘기다. "뒤늦은 깨달음의 부끄러움을 털어버리기 위해서라도 무엇이 한국적인 것이고 어떻게 해야 한국적인 현대조각의 창작이 가능한 것인지를 찾고자"하는 의도에서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한복이었다. 그것이 지닌 조형적인 가치와 국제적 감각으로 통하는 미의 원칙에서 전통 조형의 현대화. 이른바 부랑쿠지의 각(角)진 질량의 표현이며, 모든 현대조각이 쏠리고 있는 극도의 단순화, 그러면서도 최대의 내용을 지니고 있는 그러한 의미성을 갖게 하였다. 흔히들 현대예술이란 전통에의 저항 에서 이룩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전통의 재생은 곧 창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나의 작품은 정통물의 '구체적' 형상성을 '관념적' 형상성으로 바꾼 것이다. 나아가 관념적 형상성이란 사물이나 사건의 이미지를 찾아내는 데 필요한 방법적 요건으로 생각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의미에서 완결된 형식(구체적 형상)보다는 미완결 된 형식(관념적 형상)을 취한다. 나의 작업세계를 관류하는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이원론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정신과 물질이란 두 개의 실체를 인정한 데카르트 처럼 세계가 서로 독립된 근본원리와 요소로 이루어졌다고 파악하는 것이 이원론의 대표적인 경우인데, 주자(朱子)에게서도 발견되는 세계관이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형태를 조각 후 쪼개어 다듬어진 형태를 조립함으로써 내, 외부에 공간을 이분법의 형식을 통해, 꽉 참과 비워냄, 음과 양을 구축적으로 제시한다. 나의 작품은 세계가 양으로만 이루어지거나 혹 음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닌, 양자의 존립 위에 존재할 수 있다는 철학적인 원리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작품은 지각적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개념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각이라는 조형매체(구조물)의 기초에 심고 그 위에 내가 생생히 기억하는 한국사의 굴곡(역사성의 문맥)을 은유적으로 표현 하고자 했으며, 그 안에 내재된 정신, 혼과 같은 것들을 어떻게 가시화할 것인가 등에 대해 고민하며 작업했다.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의 형식을 오늘의 상황에서 어떻게 되살려내느냐 하는 문제는 적어도 현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이라면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컴퓨터를 비롯한 첨단의 테크놀러지가 일상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이러한 태도는 더욱 요구된다 하겠다. 이는 요즈음 흔히 거론되는 문화적 정체성의 확보라는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날로 가벼워져가기만 하는 문화의 컨텐츠에 대한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오히려 더욱 강조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 박상권
Vol.20060413c | 박상권展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