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6_0322_수요일_05:00pm
성보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14번지 Tel. 02_730_8478
중독 ● 이른 아침 평화로운 공기를 마시며 인사동에 들린 지가 얼마만일까. 빼곡한 건물들 사이로 겨우 찾은 모퉁이의 갤러리로 들어섰다. 익숙함이란 편하고 좋은 것이라는 등식관계를 고수하고 그 익숙함 속에서 얻게 되는 여유를 사랑한다. ● 작가 정연학의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 역시 그러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늘 보던 것에 대한 안도감, 이해감, 그리고 그 속에서 조금은 달라 보이는 것에 대한 신선함이랄까. ● 익숙한 일상, 반복되는 자신의 삶, 그리고 타인의 삶을 편안한 친구와 이야기 하듯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고 싶어 하는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거울이라는 매체를 통해 우리 모두가 깨닫지 못한 채 중독되어 있는 이미지의 실상과 허상에 대한 재미를 일깨워준다.
작가에게서 거울은 그저 단순하게 이미지를 반사해 내는 일반적인 오브제가 아니다. 이미 한차례 이미지화된 거울을 다시 여러 조각으로 나눈 후 그 조각 사이에 새로운 면을 삽입시키거나 거울 뒷면의 반짝이는 물질을 일부 제거-이것은 거울의 본래의 성질을 방해하는 작업이다-하고 새로운 색채를 덧바르는 작업을 통해 우리가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 익숙한 이미지들을 하나같이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이처럼 잘 보이지 않는 거울 속에서 관람자는 분열되고 재조합된 새로운 자신의 허상을 발견하게 된다. ● 작가는 한걸음 더 나아가 두 개의 베이스 판을 분리하여 가늘게 나눠진 거울조각들을 번갈아 앞뒤로 붙이는 작업을 한다. 이렇게 설치된 작품은 관람자가 작품과 떨어져 일정한 거리에 도달하였을 때 드디어 하나의 완전한 실상을 만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실상 뒤에 따라오는 그림자를 통해 허상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이렇게 반복되는 이미지의 실상과 허상의 만남을 통해 또다시 새로운 이미지에 중독되어 간다. 그들에게 새로운 중독을 하나 더 늘려준 셈이다. ● 이처럼 작가가 말하는 중독이란 결코 부정적인 의미만은 아니다. 휴대폰 메시지 문자, 쇼핑광을 반기는 50% 할인문구, 로또 당첨을 기다리는 간밤의 돼지 꿈, 아름다움을 꿈꾸게 하는 수많은 성형외과 간판과 이국적인 미인들, 진열장의 상품 마냥 피트니스 센터의 커다란 쇼윈도 속에서 열심히 달리고 있는 날씬이들... 그 속에서 배출되는 기쁨, 희망, 행복, 좌절 등 수많은 감정들이야 말로 넘쳐나는 이미지들에 대한 새로운 중독증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과정 속에 굳이 거울을 택한 이유가 거울의 직선적인 성격 때문이라고 했다. 일상 속에서 너무나 익숙한 이미지, 아이콘, 문자 등을 실상과 허상 만들기 놀이 - 새로운 중독 만들기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직설적이고 쉽게 다가가고자 하는 것이다. 작가는 작품 대해서 관람객들에게 어렵고 많은 설명을 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작품이 관람객을 마주하고 섰을 때 그저 그들의 일상 속에서 익숙한 이미지처럼 그렇게 인식되길 바라고, 나아가 개개인의 추억과 지식 배경에 의해서 또다른 새로운 이미지를 재창출 해내길 바라는 것이다. ● 바쁜 일상에의 복귀를 갈망하고 다시 그 일상을 탈출하고 싶어 하는 현대인 중독증처럼, 조금은 여유를 부려도 될 아침시간을 무엇인가에 쫓기듯 일터로 돌아오면서 남겨둔 인사동 길과 사람들의 삶을 다시금 아쉬워한다. 이 또한 쳇바퀴 돌면서 정신없이 지내는 일상 속의 가끔 누려보는 문화적 사치에 대한 감정이 가져 온 이미지 중독이 아닐까한다. ■ 문정언
Vol.20060403d | 정연학展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