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ing

정연학展 / painting   2006_0322 ▶ 2006_0404

정연학_로또_PVC필름, 거울아크릴, 색아크릴_78.8×124cm, 가변설치_2006

초대일시_2006_0322_수요일_05:00pm

성보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14번지 Tel. 02_730_8478

중독 ● 이른 아침 평화로운 공기를 마시며 인사동에 들린 지가 얼마만일까. 빼곡한 건물들 사이로 겨우 찾은 모퉁이의 갤러리로 들어섰다. 익숙함이란 편하고 좋은 것이라는 등식관계를 고수하고 그 익숙함 속에서 얻게 되는 여유를 사랑한다. ● 작가 정연학의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 역시 그러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늘 보던 것에 대한 안도감, 이해감, 그리고 그 속에서 조금은 달라 보이는 것에 대한 신선함이랄까. ● 익숙한 일상, 반복되는 자신의 삶, 그리고 타인의 삶을 편안한 친구와 이야기 하듯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고 싶어 하는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거울이라는 매체를 통해 우리 모두가 깨닫지 못한 채 중독되어 있는 이미지의 실상과 허상에 대한 재미를 일깨워준다.

정연학_다이어트_런닝머신 설치, 투명아크릴, 거울아크릴, 아크릴물감_200×215×5cm_2006
정연학_쇼핑_캔버스, 투명아크릴, 거울아크릴, 아크릴물감_91×65.1×5cm_2006
정연학_중독_캔버스, 거울아크릴, 아크릴물감_80.3×130.3cm_2006

작가에게서 거울은 그저 단순하게 이미지를 반사해 내는 일반적인 오브제가 아니다. 이미 한차례 이미지화된 거울을 다시 여러 조각으로 나눈 후 그 조각 사이에 새로운 면을 삽입시키거나 거울 뒷면의 반짝이는 물질을 일부 제거-이것은 거울의 본래의 성질을 방해하는 작업이다-하고 새로운 색채를 덧바르는 작업을 통해 우리가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 익숙한 이미지들을 하나같이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이처럼 잘 보이지 않는 거울 속에서 관람자는 분열되고 재조합된 새로운 자신의 허상을 발견하게 된다. ● 작가는 한걸음 더 나아가 두 개의 베이스 판을 분리하여 가늘게 나눠진 거울조각들을 번갈아 앞뒤로 붙이는 작업을 한다. 이렇게 설치된 작품은 관람자가 작품과 떨어져 일정한 거리에 도달하였을 때 드디어 하나의 완전한 실상을 만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실상 뒤에 따라오는 그림자를 통해 허상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이렇게 반복되는 이미지의 실상과 허상의 만남을 통해 또다시 새로운 이미지에 중독되어 간다. 그들에게 새로운 중독을 하나 더 늘려준 셈이다. ● 이처럼 작가가 말하는 중독이란 결코 부정적인 의미만은 아니다. 휴대폰 메시지 문자, 쇼핑광을 반기는 50% 할인문구, 로또 당첨을 기다리는 간밤의 돼지 꿈, 아름다움을 꿈꾸게 하는 수많은 성형외과 간판과 이국적인 미인들, 진열장의 상품 마냥 피트니스 센터의 커다란 쇼윈도 속에서 열심히 달리고 있는 날씬이들... 그 속에서 배출되는 기쁨, 희망, 행복, 좌절 등 수많은 감정들이야 말로 넘쳐나는 이미지들에 대한 새로운 중독증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정연학_팬티_캔버스, 거울아크릴, 아크릴물감_45.5×53cm_2006
정연학_휴대폰_PVC필름, 거울아크릴, 아크릴물감_94.5×94.7cm, 가변설치_2006
정연학_선풍기 아줌마_PVC필름, 거울아크릴, 아크릴물감_125.6×125.2cm, 가변설치_2006
정연학_연애인_PVC필름, 거울아크릴, 아크릴물감_95.7×218cm, 가변설치_2006

작가는 이러한 과정 속에 굳이 거울을 택한 이유가 거울의 직선적인 성격 때문이라고 했다. 일상 속에서 너무나 익숙한 이미지, 아이콘, 문자 등을 실상과 허상 만들기 놀이 - 새로운 중독 만들기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직설적이고 쉽게 다가가고자 하는 것이다. 작가는 작품 대해서 관람객들에게 어렵고 많은 설명을 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작품이 관람객을 마주하고 섰을 때 그저 그들의 일상 속에서 익숙한 이미지처럼 그렇게 인식되길 바라고, 나아가 개개인의 추억과 지식 배경에 의해서 또다른 새로운 이미지를 재창출 해내길 바라는 것이다. ● 바쁜 일상에의 복귀를 갈망하고 다시 그 일상을 탈출하고 싶어 하는 현대인 중독증처럼, 조금은 여유를 부려도 될 아침시간을 무엇인가에 쫓기듯 일터로 돌아오면서 남겨둔 인사동 길과 사람들의 삶을 다시금 아쉬워한다. 이 또한 쳇바퀴 돌면서 정신없이 지내는 일상 속의 가끔 누려보는 문화적 사치에 대한 감정이 가져 온 이미지 중독이 아닐까한다. ■ 문정언

Vol.20060403d | 정연학展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