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의 어두운 방

김재남展 / KIMJAENAM / 金在南 / mixed media   2006_0331 ▶ 2006_0409

김재남_drift heroes_디지털 프린트_40×26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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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331_금요일_05:00pm

금호미술관 서울 종로구 사간동 78번지 Tel. 02_720_5114 www.kumhomuseum.com

프라모델을 태운 뗏목의 여정 ● 바다를 고향으로 둔 자들은 언제나 그 바다를 원형상으로 지닌다. 삶과 의식은 언제나 그 곳을 목표로 회향하며 시선 역시 그 언저리를 추억한다. 사실 바다는 헤아릴 수 없다는데 그 매력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실측과 시측의 경계에서 훌쩍 벗어나 있다. 시작과 끝을 한눈에 보여주지 않기에 인간은 다만 그 한 자락을 단서로 무한함을 체득한다. 근원을 알 수 없는 곤혹감을 던져주는 바다 풍경은 일종의 원풍경이자 가장 본능적이고 본질적인 장면을 선사한다. 순간 창세기가 예시하는 세계창조에 대한 원초적 상상력의 근원으로서의 바다를, 그리고 거대한 모성의 상징으로서의 물을 떠올려본다. "바다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 가장 크고, 항구적인 모성적 상징 중의 하나이다."(바슐라르) 사람들이 바다를 바라보고 이를 그림과 사진으로 담아두는 본질적인 이유는 아마도 자신을 돌아보게 되기에 그럴 것이다. 바다에는 사실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이 무를 바라본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내면으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다에 도착한다. 세속의 끝자리에, 삶의 마지막 경계에 바다는 처연하게 드러누워 있다. 떠나온 자들은 다시 바다에 와서 직립한다. 어디에선가 떠나온 자신의 절대적 존재를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기에 그럴 것이다.

김재남_drift heroes_디지털 프린트_각 60×120cm_2006
김재남_drift heroes_디지털 프린트_각 60×100cm_2006
김재남_현장 실연, 촬영_2006
김재남_video-drift heroes_00:05:00_2006

김재남은 여수 앞바다에 작은 뗏목(마룻바닥을 닮은 납작한 사각형의 공간)을 띄웠다. 그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며 작은 뗏목을 타고 놀았던 체험을 재생했다. 그러니까 그에게 이 바다는 유년의 기억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장소이다. 또한 늘상 바다를 보며 떠올렸던 희망과 부풀렸던 몽상이 다시 환생하는 곳이다. 부표에 의존한 뗏목은 여수 향일암 앞 바다너머를 고대했던 유년기의 눈을 추억한다. 여기서 뗏목은 추억의 담지체이자 어린 시절을 표상하는 오브제가 된다. 아울러 그 뗏목 위에 아주 작고 귀여운 프라모델들을 부착했다. 장난감 혹은 값싼 조립식을 가지고 놀던 어린 시절의 즐거운 추억이 배어 있는 오브제들이다. 초라하고 사소한 것이고 보잘 것 없는 장난감들이었지만 그것들을 통해 유년의 추억이 되살아나는 한편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었던 여러 가지 사소한 경험들과 생활의 언저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다시 만나는 경험을 제공해주는 것들이다. 마징가제트, 아톰, 베트맨, 스파이더맨 또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여러 캐릭터들 및 여러 애니메이션 속 등장인물들, 나아가 히틀러, 노무현대통령, 부시미국대통령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프라모델(영웅) 들이 가득 동승했다. 화려한 원색의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진 이 인형들을 태우고 뗏목은 뭍에서 바다 저편으로 천천히 나아간다. 한때 갖고 놀았던 장난감들이자 유년의 꿈과 영웅들의 형상이며 동시대 대중문화를 통해 형성된 모든 이들의 우상이기도 한 것들이 바다 위 뗏목에 설치되는 순간 이 우상과 영웅들은 거대하고 막막한 바다 속에서 한없이 위태롭고 작은 존재로 부감된다. 그것은 자연 앞에선 우리네 인생의 무상함과 모든 권력과 우상화의 부질없음에 대한 은유적 수사 같기도 하다. 현대사회에서 영웅시 되거나 자극이 되는 캐릭터들이 순간 표류하는 영웅이 되는 것이다.

김재남_painting-be lost landscape series_캔버스에 목탄_200×400×9cm_2006
김재남_be lost landscape series-TV캔버스_캔버스에 목탄_200×100×9cm_2004~6
김재남_be lost landscape series_캔버스에 목탄_각 100×100×9cm_2005

칼라일에 따르면 전근대의 영웅은 성실성과 통찰력이라는 미덕을 반드시 가져야 했으며 이 같은 미덕과 함께 그들을 숭배하는 개인이나 집단의 '과장'을 통하여 전근대의 영웅은 탄생하고 그 생명을 이어나갔다고 한다. 반면 근대에 들어 전통적인 영웅은 사라지고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는 대중적 의미로 영웅 숭배의 방식이 확장되고 변질되어 갔다. 그러니까 근대에 들어서면서 좀 더 폭넓은 대중적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영웅 숭배가 강조되고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산업화를 통하여 발전하기 시작한 대중 매체의 확산은 이러한 대중영웅의 출현을 더욱 효과적으로 만들었다. 아울러 대중 독재사회에서 영웅은 기존의 모든 영웅 형식을 종합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다양한 종류의 영웅들이 등장하는 이 대중독재 체제하에서 대중영웅들이 갖는 공통점은 영웅으로서의 생명력이 무척 짧다는 것이다. 대중독재의 영웅 숭배는 스펙터클을 갈망하는 대중의 심리를 주술로 불러내는 '흘림'의 정치학이라고 한다. 여기서 주술을 통해 대중의 욕구는 기만당하고 도구화된다. 대중문화가 거대한 산업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대중영웅을 만들어냈던 방식들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매시기 사람들은 영웅을 요구한다. 영웅은 현실적 필요에 의해서 동시대 사람들에 의해 호출되어 나온 과거의 존재들이다. 현대에는 매순간 모든 곳에서, 모든 것들이 영웅으로 부상되다 이내 사라져버리기를 반복한다. 대중매체를 통해 영웅은 급조되고 조작되기도 한다. 여전히 만화와 영화, 텔레비전을 통해서 사람들은 다양한 영웅을 갈망한다. 작가 역시 어린 시절 우리는 만화와 영화를 통해서도 무수한 영웅들을 만났다. 아톰, 타이거마스크, 요괴인간, 마린보이, 독수리오형제, 스파이더맨, 홍길동, 마징가제트, 육백만불의 사나이, 원더우먼, 가제트형사, 맥가이버나 이소룡, 성룡 등도 그와 한축을 이룬다. 그 영웅들은 초인간적인 힘을 발휘해 악을 물리치고 정의를 실현한다. 그 영웅들에 대한 기억의 그늘에 어린 시절의 추억과 희망, 꿈이 묻어있다. 작가는 어린 시절의 우상이고 영웅이었던 프라모델들과 오늘날 새롭게 영웅시 되는 다양한 캐릭터들을 오브제로 활용해 이를 뗏목에 싣고 그것들과 함께 바다 위를 부유하는 퍼포먼스를 실연했다. 아울러 전시장 안 벽면에 목탄으로 그려진 거대한 바다 풍경, 바다의 출렁임과 여울만을 전면적으로 목탄으로 그린 드로잉을 부착해 놓고 그 앞에 뗏목을 설치하고 그 위에 똑같이 프라모델들을 얹혀놓았다. 아울러 전시장에는 한쪽에서는 여수 앞바다를 떠돌던 뗏목의 여정을 촬영한 영상을 보여준다. 현실과 가상, 실재와 환영이 동시에 교차하면서 모종의 판타지를 연출하고 있다.

김재남展_금호미술관_2006
김재남展_금호미술관_2006
김재남展_2005

마룻바닥을 닮은 뗏목의 표면은 일상적인 삶의 공간에 대한 은유 같다. 우리들 삶은 그렇게 늘상 출렁이고 흔들리고 또는 바닥에 저당 잡혀 있거나 세속의 온갖 일에 매여 있으면서도 저 먼, 광막한 바다(꿈과 희망)를 마냥 그리워한다. 뗏목 위의 여러 캐릭터, 프라모델들도 그 바다(그림)를 바라본다. 그 작업들은 마치 유근택의 '어쩔 수 없는 난제'라는 그림에서 엿보듯 거실 마룻바닥에 잔뜩 어지럽혀진 작은 장난감과 온갖 사물이 있는 풍경에서처럼 마루라는 현실세계가 갑자기 걸리버 여행기의 소인국처럼 등장하게 하는 그런 시선과 닮았다. 동시에 미물 같은 기이한 인형들을 전시 장소 곳곳에 서식시키는 함진의 독특한 공상의 세계, 비현실적이면서도 지극히 정교한 사실감이 깃든 지독히 작은 인형을 제작해서 모두가 한번 쯤 꿈꾸는 판타지를 생경한 언어로 표현하는 이동욱의 인간 군상, 그리고 그림 속 산수를 입체화 시키고 그 사이에 프라모델들을 개입시키는 임택의 '옮겨진 산수' 등에서 엿보는 낯선 시선, 그러니까 사물과 현실에 육박하는 매우 낮은 수평(바닥)의 시선. 만화와 영화, 장난감, 호러와 엽기, 컬트 등에 대한 기호와 감수성 등과 복합적으로 얽힌 젊은 작가들의 감각의 투영이기도 하고 사소하고 작은 것들에 대한 의미부여, 동시대대중문화와의 친연적인 기호 등과 같은 공유성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다. ■ 박영택

Vol.20060401b | 김재남展 / KIMJAENAM / 金在南 / mixed media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