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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331_금요일_05:00pm
후원_박건희 문화재단_㈜포토섬
대안공간 건희 서울 종로구 종로6가 43-3번지 Tel. 02_3444_5691
과장의 힘 ● 오랫동안 주변 일상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온 이진혁이 근작을 선보이는 자리를 마련했다. 휴일에 산책 삼아 다니는 자신의 거주지 일산 호수공원에서부터 시작하여 여행길에 들렀던 제주도와 일본 등지의 모습을 풍경사진을 찍어내듯 가벼운 구경꾼의 시각으로 잡아낸 사진이 그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 내용이 일상을 주제로 한 것임을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다. 그가 자신의 작업이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하는 까닭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특정 장소나 특정 대상을 찾아 다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반경 내에서 만나는 대상을 그저 수동적으로 기록하는 까닭에 작가 자신의 일상이라 할 수 있겠다. 게다가 그에게 사진 찍는 일은 생활처럼 따라다니는 행위여서 스스로 거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작가에게는 일상인 그 모습이 정작 관객에게는 범상치 않게 다가온다. 뭔가 수상쩍은 모습이 거기에는 담겨있어 관객의 시선은 긴장하게 되고 작가의 말에도 의심을 품게 된다. ● 일상이란 그저 평범하고 무의미하여 보고 지나치거나, 봐도 볼 것이 없거나, 주목을 끌지 않는 하찮은 모습이어야 한다. 나무와 풀, 호수와 바다, 건물과 사람들이 어우러진 풍경에 익숙한 우리의 시선은 거기에서 특별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 풍경을 기억에 붙잡아 두지 않는다. 그것이 스쳐가는 일상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 하찮은 일상에 오래도록 시선을 고정시켜둔다. 일상이란 반복적이어서 그 일상을 되풀이하는 작가의 시선에는 습관이 밴다. 그리하여 그가 보는 일상의 모습은 정형화되며, 요컨대 정형화된 일상만을 본다. 그것이 작가의 작업에 일관성을 부여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그의 일상은 일상이기를 그치고 정형화된 풍속도를 찾아 다니는 사진가의 고된 노동이 시작된다. ● 평범하고 하찮은 현실에 힘을 부여하고 거기에 의미를 덧붙이는 그의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사진 곳곳에 스며있는 과장의 효과이다.
「사진1」에서 작가는 화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초록의 나무와 풀 중앙에 몇 명의 사람들을 조그맣게 배치하고 있다. 시선을 잡아끄는 화면 중앙이 지니는 비중에 비해 사람들의 왜소함은 불균형적이기까지 하다. 이 때 발생하는 과장이란 화면 중앙에서 무언가를 보려하는 관객의 기대와 가장 중요한 피사체가 보여주는 현실이란 결국 하찮고 평범한 무의미에 지나지 않음을 확인하는 실망감 사이에서 발생한다. 작가는 하찮은 현실을 화면 중앙에 조그맣게 들어앉힘으로써 평범함을 과장하여 뭔가 중요한 현실처럼 변화시키는 셈이다. 과장의 효과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극대화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과장은 이미 하찮은 현실을 기록하는 행위 속에 내재되어 있다. 휴식을 취하면서, 다시 말해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앞만 보고 있는 사람들을 뒤쪽에서 카메라로 잡아내는 일련의 사진들「사진2,3,4」은 그들의 시선에 중요한 사건들이 포획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그들의 보이지 않는 시선에 과장의 효과를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그들의 시선을 관객들은 쫓아가려 하지만 그것은 사진 속에서 잘 잡히지 않는다. 시선이란 선택적이어서 자신에게 의미 있는 대상을 쫓기 마련이지만 사진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그리 중요한 대상을 보는 것 같지 않다. 작가는 일정한 방향을 향해 있는 시선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보는 대상에 잠재적 의미를 덮어 씌워놓지만 결국 그 대상이란 대수롭지 않은 현실의 일부일 뿐이다.
「사진5」에서는 이러한 과장의 시선이 한층 심화되고 있다. 어두운 뒷모습의 두 소녀는 마치 같은 대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정작 창밖의 모습이란 도시인의 눈에 익숙한 빼곡히 들어찬 건물과 탁한 대기뿐이다. 게다가 주의 깊게 살펴보면 두 소녀의 시선은 미세하게 어긋나 있고 서로 다른 풍경을 바라보고 있어 그들의 시선이 머무는 바깥 풍경이 별로 대수롭지 않은 현실임을 짐작할 수 있다.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 관찰할 대상이 없는 지점에서 어딘가를 향하고 있는 그들의 시선은 그래서 관객의 시선을 교란시킨다. 형체만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어두운 두 소녀와 밝은 창밖의 명암대비 때문에 과장의 효과는 강화되지만 결국은 그것이 맥없는 시선임을 알 수 있다.
과장의 효과를 만드는 작가의 솜씨는 전혀 이질적인 두 현실을 하나의 화면 속에 엉뚱하게 병치하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사진6」의 오른편에 있는 두 사람과 화면 중앙에 모인 사람들은 동일한 공간 속에 위치해 있지만 실상은 서로 관계없는 별개의 현실을 구성하고 있다. 한가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이 사람들에게 이 공통의 공간은 각기 다른 현실에 속하지만 두 현실을 하나의 화면에 배치함으로써 하나의 어색한 현실이 싹튼다. ●「사진7」에서도 이러한 효과는 잘 나타난다. 왼편의 두 남녀와 중앙의 인물들은 각기 다른 공간에 속해 있다. 얼핏 보면 그들의 시선이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어 호수 위의 새들을 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정작 중앙의 인물들은 화면에 가려 보이지 않는 사람의 카메라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어 이들의 시선이 서로 어긋나 있음을 알 수 있다. 평범하다 못해 권태롭기까지 한 풍경이 갑작스럽게 어색하고 기이한 현실로 변모하는 이러한 과정 덕분에 작가가 포획하는 일상의 모습은 예기치 않았던 뜻밖의 효과를 낳는다. 그 효과 덕분에 평범하고 무의미하여 알려지지 않았거나 망각된 현실이었던 일상이 현실이라는 본래의 지위를 회복하게 된다.
현실이란 본래 그 자체로서는 무의미하지만 언어라는 우회로를 거쳐 알려지는 순간 세상의 경이가 된다. 평범하고 시시하여 망각의 우물 속에 갇혀있던 현실로부터 의미의 물을 길어내는 작가들의 노동은 그래서 세계의 무의미와 맞서는 험난한 투쟁이다. 사진가들이 포착해내는 현실 대상이 하찮고 평범할수록 그 싸움은 힘겹다. 그래서 대개의 사진가들은 반짝이는 보석을 찾듯 대상의 힘에 편승하여 사건 사냥꾼이 되거나, 미의 규칙을 따라 대상을 시각적으로 가꾸는 데에 골몰하거나, 타인의 지성에 업혀서 의식과잉의 현란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에만 관심을 쏟게 마련이다. ● 이진혁의 사진에는 이처럼 중요한 사건도, 우리 시대의 문화적 스테레오타입도, 잘 가꾸어진 세련된 형식도, 치밀한 논리도 없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 시야의 변방으로 쫓겨난 현실을 섬세하게 복원시켜내고 있다. 그가 공들여 가꾸어 왔음에 분명한 현실 포획의 방법은 과장의 힘에 의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과장은 없는 대상을 만들어 내거나 작은 일을 크게 부풀리는 왜곡이 아니라 나태한 시선이 지나쳐버린 현실을 우리에게 되돌려주는 환기로서의 과장이다.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배제하고 현실을 간결하게 담아내는 작가의 표현 형식은 무의미한 일상을 의미 있는 현실로 복원해내기 위한 최소한의 도구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과장의 언어는 현란하거나 관능적이지 않고 무덤덤할 정도로 간결하고 절제 있다. 현실이 스스로 이미 충분히 의미 있거나 중요하다면 그 현실을 말하는 언어가 거창한 형식을 취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소박한 형식을 통해 건져낸 작가의 일상은 어떤 거창한 다른 현실보다 그것이 충분히 값진 현실임을 말하는 묵묵한 항변이라 하겠다. ■ 박평종
Vol.20060331b | 이진혁展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