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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300여 주요 작품들 수록 ● 최근 우리나라의 젊은 미술가들이 국제적인 비엔날레에 초청되어 호평을 받거나, 해외의 유명 아트페어에 참가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면서 국내외 미술계의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성과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나아가 세계 미술계로 진출시키기 위해서는 이들의 작품을 제대로 분석하여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역량 있는 비평가들과 큐레이터들이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에도, 아직 그러한 인식과 여건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작품을 분석하고 정리하여 기록으로 남기는 일보다는, 일시적인 유행이나 흐름만 쫓다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잊어버리고, 또 사라져가도록 내버려두는 우리 미술계의 잘못된 관행과 전문적인 시스템 탓일 것이다. ● 이 책은 동시대 젊은 미술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하여 이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 살펴보고 나아가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가능성과 한계를 가늠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쓰여졌다. 아울러 이들의 작품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비평이나 큐레이팅을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할 목적으로 쓰인 것이라 할 수 있다.
45명의 작가들 ● 강은수_권오상_권정준_김나영_김상우_김성남_김유선_김지현_노재운_레이몬드한_문경원_박경주_박미나_박용석_박윤영_박주연_박혜성_박화영_사사_써니킴_양아치_유승호_이동기_이동욱_이용백_이윤진_이윰_이한수_이형구_전준호_정수진_정연두_정정주_조습_조지은_천성명_최소연_최우람_한기창_함경아_함양아_함연주_홍수연_홍영인_황혜선
책 속으로 Artwork : 나의 대표작품과 선정 이유_ 이 작품들을 통해 나는 '알 수 없는 영역'에 대해 직접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alien'이라는 부제를 가진 첫 번째 개인전에서 나는 '알 수 없는 영역'에 있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을 드러내보였다. 두 번째 개인전에서는 이라크 전쟁에서 희생되는 사람들을 아라비안나이트의 한 이야기로 은유하고, 그것들을 영상들로 제작함으로써 관객에게 '알 수 없는 영역'으로의 여행을 제안했었다. '알 수 없는 영역'은 인터넷에서 특정한 곳에 도착하기 전에 지나가는 모든 경계의 이름이다. 또한 완벽한 소통을 꿈꿔온 인류가 다른 사람의 영역을 침범할 때의 영역이며, 혹은 그것이 자신의 공간에 부딪혀 중화되길 바라는 각자의 영역이다. 더불어 그것은 이미 경계위반자로서 도주한 여성의 정체성이 불안감과 함께 머무르는 영역이며, 내 안의 타자들, 즉 내 안에서 분열되어 주체를 위협하는 것들이 살아 숨쉴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모든 경계는 지워지고 흐려지며 영역들은 서로 침범하며 중화되고 있다. 중심과 주변의 구분이 사라져가고, 차이는 더 이상 차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도주하고 벗어나는 자들이 발을 딛는 곳이므로 특정한 어느 곳이라고도 할 수 없다. 끊임없이 탈영토화되는 영역이 바로 그곳이다. 「작가 강은수 : p10」 Exhibition: 나의 대표 전시와 선정 이유_ 개인전 : "박용석 개인전", 인사미술공간, 2004 ● 개인전에서 보여준 작업은 크게 세 가지로 이루어졌는데, 첫 번째는 '라이터' 수집이다. 업소 홍보용 라이터는 내가 사람들을 만나면서 무심결에 섞이고 남겨지는 물건이다. 누가 주인인지를 가늠하기 어려운 물건이다. 도시 속을 떠돌아다니는 주인 없는 물건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이렇듯 업소용 라이터는 끊임없이 도시를 떠돈다. 이것은 도시 생활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물건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도시 안의 도시' 시리즈로 도시 속에 사용되는 간판에 관한 것이다. '뉴욕 조명', '런던 단란주점', '시드니 모텔' 등을 모아 관광엽서로 만들었는데,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이란 도시의 정체가 무엇일까를 역으로 추적하였다. 세 번째는 비디오 작업으로 사소한 소재를 포착하여 사람들의 기억 속에 의미들을 인터뷰하는 것이다. 개인전에서 다룬 소재는 '비둘기'였다. 각자 기억하는 비둘기 이야기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도시 속에 살고 있는 자신의 아련한 기억을 고백하게 된다. 이런 이유는 비둘기가 도시의 쓰레기를 먹으며 살고 있는 새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 박용석 : p88-89」 Originality & Identity: 다루고자 하는 주제와 표현형식으로서의 예술성 정체성 등의 문제와 관련하여 다른 작가와의 차별성은?_ 내 작품은 독창적이지 않다. 오리지널리티가 없는 것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이것은 내가 팝아트로부터 배운 것인데, 팝아트 작품들 중에는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 익명성을 띤 작품들, 기계적으로 제작된 작품들이 많았다.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켐벨 수프 작품이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대량생산의 산업 시스템을 풍자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그 작품이 단순한 사회풍자가 아니라 훨씬 복잡한 요소들과 연관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작품의 의미가 변화한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은 것이 작품의 생명력이라고 생각한다. ● 나는 현대미술이 개념화되어 가는 것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서구에서 개념적인 미술은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매우 제도화되어 있다. 앞으로의 미술은 그와 같이 '개념'으로 환원되기 보다는 훨씬 복합적이고 다양한 형태를 띠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독일 작가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는 미국 미술의 강력한 영향을 받았지만, 그 배경에는 독일의 회화적 전통이 스며들어 있었다. 또한 리히터는 미국의 즉물적인 팝아트에 독일의 관념론적 철학을 결합시킨 작가라고도 할 수 있다. 리히터의 예는 나에게 항상 많은 참고가 되곤 한다. ● 나는 개념으로 환원되지 않는 작업, 지나치게 형식 실험적이지 않은 그 어떤 작업을 하고 싶다. 「작가 이동기 : p143-144」 Style & Continuity: 나의 작업은 크게 신세대 대표작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벌인 1995-1999년까지의 초기 작업의 시기, 2000-2004년 재충전과 휴지기의 시기, 2005년부터 다시 재개된 새로운 전환기와 성숙기의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995-1999년까지의 시기는 나에게 맞는 예술언어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찾으며 다양한 소통의 실험을 했던, 작가로서의 트레이닝 시기였다고 생각된다. ● 나의 첫 번째 개인전은 "빨간 블라우스"전(갤러리 보다, 1995년)이었는데, 내 자신이 살아있는 조각이 되는 총체적 퍼포먼스를 통해 관객들에게 다가가고자 하였다. 또한 '빨간 블라우스'라는 미술 대본과 같은 소설을 쓰고, 그 스토리 속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미술관에서의 라이브한 상연을 염두에 둔 영상, 설치, 사운드 작업을 하였다. 그 이후 자연스럽게 '인간의 신체'를 통한 표현에 역점을 두게 되었고, 이윰이라는 나 자신을 '아티스트 퍼스널 브랜드'로서 어필하게 되었다. 따라서 "살아있는 조각(ium's living sculpture)"(두번째 개인전)은 패션, 예술, TV 미디어의 만남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되었다. 다음으로 CF 프로덕션 제작진들과 함께 제작한「하이웨이」(세 번째 개인전)에서는 이전 세대와는 차별화된 영상 세대의 퍼포먼스 작업을 추구하였다. 이후에는 음악, 무용 등 크로스오버 장르, 즉 확장된 표현과 소통을 모색하며 '이미지 씨어터'라는 그룹을 결성하여, 무대와 관련된 작업을 발표하였다.(문예회관대극장, 1998년) 네 번째 개인전 "매란국죽"을 제작하던 무렵부터 나는 정신적인 것을 넘어서, 치유의 힘과 영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동양적 의미의 캐릭터를 생각하며 샤먼적 캐릭터를 만들어 퍼포먼스하였다. ● 그러나 2000년 이후 내게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 나의 작업을 스스로 성찰해보며, 내 작업이 사람들에게 표면적으로 강렬한 시각적 임팩트를 줄 수는 있겠지만, 그 사람의 내면까지는 스며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한 사실로부터 오직 나의 자아로만 가득 찬 나의 작업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는 놀라운 일들이 발생했던 것이다. 나는 언제나 그것을 추구하며 달려왔지만, 그런 작업들은 결국 물질처럼 소모되어지며 결국 내가 원하는 '정화의 예술'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한계 속에서 나는 예술가로서 발산할 수 있는 진정한 목소리를 얻기 위해 휴지기를 보냈다. 그리고 나 자신으로부터의 엑소더스를 경험하던 시기를 지나, 2005년 제7회 개인전 "감각의 정화"를 통해, 영적 예술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며 예술가로서의 활동을 재개하게 되었다.「작가 이윰 : p167-168」 Keyword: 자신의 작품을 지칭하는 대표적 용어가 있다면, 그 이유?_ "hyper-boiled" 소설과 영화에는 'hard-boiled'라는 장르가 있다. 감상적인 것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표현하며 도덕적 비판을 가하지 않는, 냉혹하면서도 비정한 장르이다. 흔히 한국에서는 'hard-boiled'라고 하면 비인간적이라고 욕을 먹기 쉽다. 특히 잔인한 쪽으로 연결되기 쉬운데, 실제 작품을 보면 오히려 (다소 불합리한 조합 같지만) 명쾌하면서도 시적(clear & poetic)이다. 그러나 특정한 '내용'의 측면보다는 이 언어가 주는 어떤 '태도'의 차원이 더 맘에 든다. 기존의 이 언어를 살짝 비틀어 내 작업에는 'hyper-boiled'라는 말을 만들어서 활용하고 있다. 「작가 노재운 : p60」 Influence: 영향 받은 작가(좋아하는 작가)와 이유는?_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와 음악가 아르보 파르트(Arvo Part)를 좋아한다. 이들은 가시적인 것 너머의 깊이를 보는 사람들이다. 나는 관습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고 사유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보르헤스는 단편적, 직선적이지 않고 순환적인 논리를 가졌으며, 작은 세계를 통해 넓은 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사람이다. 예술가 중에는 존 케이지(John Cage)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의 글들을 학생시절 반복해 읽곤 했다. 「작가 홍영인 : p271」 ■ 다빈치기프트
엮은이 ● 김종호(Kim, Jong Ho, 1966년생)_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하였다. 1995년부터 갤러리서미, 카이스 갤러리 기획실장(큐레이터)을 거쳐 코팩아트 컨설팅(서미콜렉션) 기획실장을 지냈다. 이후 2001년부터 2002년까지 아트센터 나비 학예연구팀장(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하였으며, 2004년에 갤러리현대 기획실장(디렉터)을 역임하였다. 2005년부터 현재까지 덕원갤러리 디렉터로 재직중이다. ● 류한승(Ryu, Han Seung, 1972년생)_홍익대학교 예술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2002년 9월부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학예연구사로 재직중이다.
Vol.20060330c | 한국의 젊은 미술가들: 45명과의 인터뷰 / 엮은이_김종호_류한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