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가구

건축가 승효상의 설계로 지어진 서울 종로구 동숭동의 쇳대 박물관에서는 오는 3월, 올해의 첫 특별전인 '건축가의 가구'전을 선보인다. 이 전시는 국내외 건축계에 널리 이름이 알려진 열 두명의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테이블, 의자, 소파, 조명 등 약 스물 다섯 점의 소품과 가구들로 구성된다. 각각의 작품들은 쇳대 박물관의 모태가 되었으며 국내 철물업계의 선두로 자리매김 해 온 논현동 최가 철물점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으며, 금속을 주재료로 패브릭, 목재, 아크릴 등 다양한 소재가 결합된 재미있고 독특한 조형을 보여준다.

김인철_Folium_알루미늄, 아크릴_48×45.5×128cm_2006

김영준_a Composite Bo×_스틸_17.5×17.5×17.5cm _2006

서혜림_Folding Screen 2006_스테인리스 스틸_330×124cm_2006

처음으로 시도되는 국내 건축가의 가구 전시는 주로 해외 유명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통해서 만족을 얻던 안목 높은 디자인 마니아들의 눈을 즐겁게 해줄 뿐 아니라, 국내 가구 디자인 업계에도 신선한 충격을 던져줄 것으로 기대된다. ● 바야흐로 건축가가 커피잔까지 디자인하는 시대이다. 건축가란 단지 건물의 외관이나 구조를 설계하는 사람이라 생각해 온 많은 이들에게는 다소 낯선 사건일 수도 있겠지만, 이탈리아나 프랑스, 미국, 네덜란드, 스웨덴 등 서구의 건축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오랜 전통이다. 수입 가구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속속 국내에 소개되고 있는 필립 스탁, 찰스 이임스, 알렉산드로 멘디니 등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이 많은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들이 본디 건축을 공부한 건축가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디자인에 관해서라면 선진국 중의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이탈리아에서는 디자이너와 건축가를 따로 분리하는 것이 무의미할 만큼 건축이 모든 디자인을 주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승효상_가로등과 긴 의자_가로등-120×50×43cm, 긴 의자-15×20×210cm_2006

최문규_ha_스틸에 도장_150×75×74cm_2006

권문성_The Flower Bed_스테인리스 스틸_120×55×40cm_2006

한편,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 건축가의 본업이라면 그 공간에 어울리고 필요한 것들을 직접 디자인하는 일 또한 건축가의 몫이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이는 서구의 예처럼 기업으로부터 전폭적인 재정적, 기술적 지원을 받지 못했던 한국 건축가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국내 건축가들이 어딘가 자신이 설계한 건물과 어울리지 않는 기성제품을 사용하기 보다는 직접 디자인한 가구와 소품들을 제작해 왔다. 하지만 그러한 가구나 소품들이 건물의 위용을 제치고 제대로 조명 받은 적은 거의 없었으며, 단지 건축가 개인의 취미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다.

김영섭_½_브론즈, 아크릴_12×12×120cm_2006

김종규_8 Flatiness_스틸_240×120×70cm_2006

민현식_Chair+_스틸, 가죽방석_41×51×105cm_2006

본 전시는 건축가 특유의 공간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와 감수성에 주목하여 새로운 가구, 생활 소품 디자인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안함과 실용성만이 가구가 가져야 할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왔던 인식을 깨고, 늘 있는 듯 없는 듯 여겨왔던 생활 속의 가구들이 어떻게 우리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는지를 관객들이 느낄 수 있길 바란다. 평소 무겁고 차가운 이미지로 얼핏 가구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금속이라는 물성이 가구 디자인 속에서 어떻게 변모되어 그 매력을 발휘하는지 확인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 이번 전시 중에는 전시장 투어 프로그램이 포함된 '건축가와의 대화'란 자유롭고 편안한 형식의 특별 강연이 준비되어 있어 디자인이나 건축을 전공하는 학생 또는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일반인들에게 견문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장윤규_Spring Table_스틸_170×80×35cm_2006

최두남_LC-V (Light Screen-Vertical)_스테인리스 스틸_150×240×50cm_2006

우리나라의 옛 자물쇠와 세계 각국의 독특한 자물쇠 3000여 점을 소장품으로 전통 공예 분야의 수준 높은 전시 문화를 이끌어온 쇳대 박물관(관장 최홍규)은 소장품을 이용한 전통적인 주제의 기획전과 더불어 이번 '건축가의 가구'전과 같은 현대적 감각의 다양한 디자인, 공예 전시들을 앞으로도 계속 선보일 예정이다. ■ 쇳대 박물관

■ 건축가와의 대화 '건축가의 가구'전 특별강연_건축가와 함께하는 전시장 투어에 이어 '건축과 디자인'에 관한 자유로운 주제의 강의가 이어집니다.

3.25(토) 오후 3:00 황두진 3.29(수) 오후 4:00 민현식 4. 7(금) 오후 4:00 김영준 4.11(화) 오후 3:00 장윤규 4.12(수) 오후 4:00 권문성 4.15(토) 오후 4:00 승효상 4.20(목) 오후 4:00 김인철 4.26(수) 오후 4:00 김영섭

■ 참가를 원하시는 분은 전화나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신청해 주시길 바라며 위의 일정은 건축가의 사정에 의해 변경될 수 있습니다.

Vol.20060327b | 건축가의 가구-12인의 건축가가 만든 금속 가구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