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조윤선展 / CHORYUNSUN / 趙倫旋 / painting   2006_0322 ▶ 2006_0329

조윤선_rainbow_캔버스에 혼합재료_130.3×387.8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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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322_수요일_06:00pm

동덕아트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51-8번지 동덕빌딩 B1 Tel. 02_732_6458 www.dongdukartgallery.co.kr

조윤선의 홀로서기 : 색의 보편성과 주관성의 갈래에서 ● 조윤선은 홀로서기를 분주히 준비중이다. 색의 보편성과 주관성을 품어 안으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서고자 한다. 그녀의 작품은 다분히 양면성을 띄고 있다. 원색적이자 추상적이고, 선적이자 회화적이고, 분할적이자 총체적이고, 폐쇄적이자 개방적이며, 응집력이 있으면서도 확산적이고, 동적이자 정적이고, 경쾌하면서도 충격적이고, 겹치면서도 흐르는 색 등 대척점으로 향하는 많은 요소들을 아우르면서 회화세계에 접근한다. 반면에 은유와 상징, 기억과 상실, 희망과 고통, 환희와 절망, 일상과 자아,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 차가움과 따뜻함으로 자아의 이야기를 화면 속에 함축한다. 이러한 양가적인 특성은 미술의 역사(History of Art)에서도 논의되고 있는 바, 그녀의 홀로서기는 그다지 외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 색으로 회화매체의 유일성을 강조하고, 볼 수 있는 내용으로 그리는 행위의 정당성을 부여한 선례는 많다. 색의 시각적인 효과가 내용적인 비주얼과 어떠한 방식으로 접목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추상화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상을 점. 선. 면으로 번역하여 색의 형태를 추구한 칸딘스키(Kandinsky) 그리고 해석 불가능한 기호와 칠하고 번지는 즐거움으로 추상개념을 재해석한 균터 페륵(Gunter Foerg)의 작품은 색과 내용이 하나가 되는 추상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또한 이야기와 매체가 하나의 화면에 집합하여 주관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관찰하게 만든다. 더불어서 물질과 순수회화매체가 어떠한 방식으로 결합하는지에 대한 미술사적 논의는 이 젊은 작가에게 든든한 벗이 될 것이다. 아방가르드와 네오아방가르드의 화두에는 선과 색면이 결합하여 탄생한 비정형이라는 수식어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동반자와 함께 길을 걷는 그녀의 노정과 마주하게 될 관람자에게는 이와 같은 사려가 필요할 것이다.

조윤선_rainbow_캔버스에 혼합재료_193.9×390.9cm_2006
조윤선_flash_캔버스에 혼합재료_193.9×130.3cm_2006
조윤선_lunar rainbow_캔버스에 혼합재료_91×116.8cm_2006

조윤선의 작가노정에는 선행되어야 할 조건이 있다. 그녀의 화면은 새로운 작품의 존재방식도, 새로운 추상회화도, 그렇다고 그리는 방법이 작품해석의 조건이라고 지시하지도 않는다. 또한 작품의 내용은 가느다란 실선과 번지고 흐르는 색과 색의 경계선에서 읽혀지지 않는다. 그녀 작품의 특성은 색(色)에 있다. 어두운 면에서 밝은 면이 꿈틀거리고 선명하게 흐르는 비정형의 이미지들은 유유하게 방향을 찾아 나선다. 만났다가 흩어지고 뭉쳤다가 흩어지는 색의 유희가 화면에서 가시화 된다. 화면의 군더더기는 제외되어서 결국 회화의 보편성은 색이 되는 셈이다. 그러면 주관성은 어떠한가. 단순한 화면구조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왜냐하면 그녀가 추구하는 것은 일상과 꿈 그리고 기억과 회상 혹은 희망 등으로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주관성은 밝고 어두운 면의 분배와 유유히 흐르는 색의 강줄기, 그리고 비정형의 색 이미지에서 혼재되어 있다. 차갑고 따듯한 색의 형태가 어두운 추억과 밝은 미래를 대변한다면, 무거운 화면과 선명한 색 이미지는 과거의 슬픔과 미래의 희망을 대체한다. 이렇듯 그녀는 색 자체가 형태와 이미지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주관적인 이야기로 풀어간다. 증명된 이야기의 이미지가 종이에 스며들었고 우리는 여기서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추억=과거는 파편으로 남기 마련이지만 미래는 희망적이다. 희망의 형태는 좁아졌다가 넓어지고, 길다가 두꺼울 수도 있다. 이렇듯 그녀의 화면은 과거와 미래를 색으로 펼쳐놓는다. 대변자인 색은 과거로의 회귀도 미래로의 진일보도 아닌 양면적인 현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듯 그녀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 한다. 한손으로는 색의 주관성, 다른 한손으로는 자아의 이야기. 이는 색의 무한한 가능성과 화면의 팽창이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에 대한 그녀의 의구심에서 가능한 결과가 아닌가 한다. 이렇듯 색의 형태와 이미지가 주관성을 가시화하고 단순한 화면에서는 보편성이 구조화된다. 단지, 자아와 보편성이 어떠한 방법과 문맥에서 가시화 되고 경험되어야 하는지가 문제로 남아있다.

조윤선_lunar rainbow_캔버스에 혼합재료_80.3×100cm_2006
조윤선_flash_캔버스에 혼합재료_100×80.3cm_2006
조윤선_lunar rainbow_캔버스에 혼합재료_53×45.5cm_2006

그녀는 홀로선 작가의 노정에서 숙지해야 할 과제를 알고 있다. 그녀는 청년작가에게 주어진 특권인 과감한 시도를 누릴 수 있는 권리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색으로 자아의 이야기를 화면에 가시화 한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회화는 문학과는 다르게 내용을 색과 물질로 전달하게 되어 있다. 전달 방식이 작품 제작 방법에서 구체화 된다는 것은 어려운 과제이기는 하지만 칸딘스키는 제작방식을 이론으로 설명하여 해석의 조건을 언어로 제시하였고 균터 푀륵은 구체적인 기호로 회화의 구체성을 해결하였다. 이렇듯 그들은 망설임보다는 과감한 도전으로 혼자만의 유희공간을 일반화하였다. 또한 그녀는 성숙된 모습이 부드럽고 깔끔한 화면뿐만이 아니라 거칠고 번잡한 구조로도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비가내리고 난 후에 무지개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멜랑콜리의 세계가 화면에서 읽혀지기 위해서는 회화매체인 색과 마티에르 사이의 층이 두터워야 한다. 그리고 그녀는 관조자에게 다양한 상상력을 유도해야 할 것이다. 자아의 기억이 일상화 된다는 것은 내용의 일반성을 요구하는 것으로 그녀는 이것을 색으로 가시화 한다. 이제 어떠한 방법과 훈련으로 이와 같은 과제를 풀어나갈 것인지가 미제로 남아있다. 칸딘스키가 바우하우스 교수로 재직할 때 제자에게 구체적인 대상을 추상으로 해석하도록 요구하였듯 그녀도 또한 가깝게는 미술의 역사에서, 멀게는 그녀가 하는 행위에서 이를 구체화 해야만 할 것이다. 화면은 주관적인 구토작업의 결과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은 풀어가야 할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색 이미지와 형태는 그녀가 꾸준히 천착해야할 과제가 아닌가 한다. ● 청년작가 조윤선의 경우는 회화매체의 기본요소가 색이라는 것을 단순한 화면구조로 설명하고, 색의 인식방법이 주관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의 지적욕구가 어떠한 방식으로 화면상에 나타나야 하는지에 대한 그녀의 고민에 동참하게 된다. ■ 김승호

Vol.20060325a | 조윤선展 / CHORYUNSUN / 趙倫旋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