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적 소통

조은주展 / CHOEUNJOO / mixed media   2006_0322 ▶ 2006_0328

조은주_dualistic communication_혼합재료_203.5×50.7cm×2ea_2005

초대일시_2006_0322_수요일_06:00pm

인사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29-23번지 Tel. 02_735_2655

희망을 연결해주는 소통으로서의 문 - 조은주 ● 두말할 것도 없이 현대미술에 있어 주목할 만한 퍼포먼스의 시작은 "소통"이 그 화두였다. ● 세계를 향해 한국이 주었던 선물이라고 불리는 비디오아트의 백남준과 오노 요코, 요셉 보이스가 참여했던 플럭서스 그룹은 바로 그런 예술과 일상의 통합을 시도하면서 우연성과 부조리 등을 통한 관객과의 소통이 그 출발이었다. 현대미술은 결국 작가와 관객의 직접적인 소통을 통하여 예술과 일상생활의 경계를 없애려는 노력으로 인해 발전해왔다. ● 그렇다면 왜 많은 예술가들은 소통의 문제에 집착하는가? 이러한 질문은 바로 조은주의 작품에도 동등하게 적용된다. 조은주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중심적인 세계는 문이다. 그 문은 아주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 예를 들어, 헌 문짝에서 떼어낸 문이 있는가 하면, 이미지와 오브제로 된 문도 있고, 그가 매일 드나드는 학교 내의 문, 뿐만 아니라 쇠창살로 막혀있는 창문도 여러 개 나열되어 있다. 그가 이렇게 문을 집요하게 다루고 있는 데에는 그만의 분명한 예술적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문은 이 공간과 저 공간을 경계 지우는 대상이다. 또한 나와 타자를 연결하는 관계로서 상징적 의미도 있다. 그는 작가노트에서 문이라는 오브제에 대한 작가의 선택의 의미를 명쾌하게 밝혀두고 있다. "사람은 탄생이라는 첫 번째 문을 통과하면서부터 자의적· 타의적으로 끊임없이 수많은 큰 문 또는 작은 문을 통과하며 살아간다. 여러 문을 통과하고 외부세계와 끊임없이 소통한다." 그의 세계관 속에 외부 세계와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는가를 밝혀주는 부분이다. ● 그러나 실제로 작품 속에 있는 문은 그려져 있는 평면 속의 이미지가 아니고 하나의 실제적인 오브제라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마르셀 듀샹의 작품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미 듀샹도 1920년 「프레쉬 위도우」란 작품을 발표하였고 그 역시 창문을 이용하여 열림과 닫힘을 구별하고 있다. 그는 이탈과 모순의 알레고리적인 관계들을 드러내고자 했고 일상적인 오브제를 위대한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으로 미술사에 전기를 마련했다. ● 그러나 조은주는 이러한 문의 관습적 이미지나 일상적 사고에 닫혀있지 않다. 그는 작품 곳곳에서 단순한 문의 차원을 넘어 문을 규정하는 틀(frame)이라는 형식에도 관심을 둔다. 그가 이렇게 오브제에 주목하는 것은 그 의미가 단순히 사물을 가리키는 '발견된' 오브제가 아니라 예술가의 선택에 의하여 선택된 미술작품으로서 새로운 '지위를 가지는' 오브제이기 때문이다. 미술사에서 이러한 오브제로서의 문이 그에게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

조은주_dualistic communication_혼합재료_161×90cm×2_2005
조은주_dualistic communication_혼합재료_72×85cm_2005

"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것은 다양한 빛과 그림자 ,투영되고 반사되는 외부의 요소들과 이미지의 변화를 받아들여 조화롭고 풍부한 색채의 결합을 이루고 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이 표현으로 보면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문이라는 대상은 오브제를 통해 자신이 건네고자 하는 의사소통으로서의 수단인 것이다. 그녀에게 있어 미술은 마음속에 쌓인 감정을 긍정적으로 분출하게 하는 출구의 역할을 맡아 정서적인 안정을 갖게 하는 것이다. ● 우리가 실제적으로 소통이라고 하는 것이 라틴어의 '나누다'를 의미하는 'communicare' 이지만 신이 자신의 덕을 인간에게 나누어 준다는 의미와 동시에, 넓은 의미에서는 어떤 사실을 타인에게 전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소통은 심리적 전달이라는 불완전한 형태이기는 하지만 인간만이 가지는 독자적인 언어인 것이다. ● 이제 그가 꾸준하게 그리고 일관되게 집중해온 문은 그의 의지를 전달하는 신호 또는 지시를 넘어 하나의 상징(symbol)이 되거나 기호(sign)로 존재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조은주의 오브제는 현실의 직접적인 제시를 주요한 방법으로 삼는 누보레알리즘작가들과도 공통된다.

조은주_dualistic communication_혼합재료_120×360cm_2005
조은주_dualistic communication_캔버스에 디지털 프린트_139×93.5cm_2005

조은주는 실제 캔버스에 이미지를 재현하는 대신 실제 오브제들을 붙이고 활용하는 앗쌍블라쥬기법을 사용한다. 그의 기법 자체가 그의 작업은 폐품이나 일용품을 비롯한 다양한 사물을 끌어들여 삼차원적 입체 작품을 만들어내는 뛰어난 표현력의 시도가 되는 셈이다. ● 그는 문이라는 내밀하고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 대상을 오브제로 하여 궁극적인 인간 존재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뿐만 아니라 이 문을 대상으로 하면서 그는 현대인들이 갖고 있는 닫힌 문으로 인한 감정의 단절, 즉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그가 문을 다루는데 있어서 단순한 장식적 대상에 그치지 않고 그 의미를 심화시켜가면서 사진의 이미지에서 오브제로 이행하는 과정들이 이것을 말해준다. ● 인간의 삶은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 상처의 중심에 놓여있는 것이 바로 벽이다. 그 벽을 헐어낼 수 있는 유일한 소통의 절차가 바로 문이다.

조은주_dualistic communication_혼합재료_61×50.5cm×2_2005

조은주의 작업은 그 벽을 소통의 영역으로 끌어내는 커다란 하나의 언어이다. 어쩌면 인간의 비극은 소통의 단절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그의 작업이 보여주는 메시지는 그 닫혀진 세계를 향해 던지는 희망의 상자 같은 것이다. ■ 김종근

Vol.20060323a | 조은주展 / CHOEUNJOO / mixed media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