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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선보이는 '우리 공공미술 이야기'
미술이 바람 피우러 나섰다. ● 미술이 자신의 본처(本處)인 미술관을 저버리고 도시 곳곳을 배회하면서 아름다움의 바람을 피우고 있다. 남의 눈을 피하지도 않는다. 거리나 광장, 건물 등 오히려 공공연한 장소를 현장으로 택하고 있다. 미술관 안의 미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공공연하고(public) 자유분방(art)하다. 도시 곳곳에 '미풍(美風)'이 일고 있다. ● 서울 도심의 백화점 리노베이션 현장. 중절모를 쓴 신사들이 하늘에 둥둥 떠 있다. 미술관 속에 모셔져 있어야 할 마그리트의 「겨울비」이미지다. '안전제일' '기술일류' 같은 공사장의 삭막한 글귀들이 장악하는 도시 풍경을 저어해 미술관 안을 밖으로 뒤집는 듯한 역전을 시도해 화제를 일으켰다. ● 노동하는 사람들을 위해 헌정된 보롭스키(Jonathan Borofsky)의 '망치질 하는 사람'은 20미터 크기의 키네틱(kinetic)으로 서울에 차와 빌딩이 다가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고 잘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풍경이 되었다. ● 동네로 온 미풍은 더욱 부드럽고 아름답다. 골목길을 통해 역사와 삶을 잇는 골목길 공공미술 「명륜동에서 찾는다」, 흐르는 강처럼 사람과 예술을 잇는「안양천 프로젝트」물건뿐만 아니라 인정과 삶의 지혜가 모이는 「석수시장 프로젝트」등 '아름다움의 바람'은 이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 이처럼 미술이 미술관 밖으로 나와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과 만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우리에게도 비로소 '공공미술의 시대'가 온 것이다. ● 공공미술을 도입하는 문예진흥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고 공공미술 및 디자인 그룹이 속속 출현하는 현상들도 이를 확인해준다. 아직 외국처럼 독립된 분야로 정착됐다고 하기는 이르지만, 우리 공공미술도 일상 속에서 가장 쉽고 친숙하게 즐길 수 있는 창의적이고 민주적인 예술 장르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해가고 있다.
우리의 공공미술은 어디에 있는가? ● 하지만 갓 태어난 공공미술에게 우리 여건은 매우 거칠고 험난하다. 공공미술을 '건축물을 장식하거나 빈 공공 장소를 폼나게 채우는 미술'쯤으로 여기고 있고, 순수미술에 비해 질적으로 뒤떨어지거나 모자라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 그렇게 방치된 사이 화랑이나 브로커들이 이 분야를 장악함으로써 사회 속에서 꽃피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온갖 반미학과 부조리를 양산하는 '문제적 미술'이 되어버렸다. 문화관광부 집계에 따르면 1년에 600여 억 원 들여 700여 점의 미술작품을 공공장소에 세우고 있다. 그만큼 세상은 아름다워지고 있는가? 발에 걸리는 돌멩이보다 눈에 치이는 미술작품이 더 많다는 소리를 듣지만, 그 작품들이 도시 경관을 아름답게 하고 쾌적성과 정주 가능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경우를 찾기란 쉽지 않다. 열리 도시공간에서 작품 자체의 조형성이 시민들과 소통되는 경우를 찾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다. ● 공공미술에 대한 연구나 비평 역시 턱없이 빈약한 실정이다. 청장년층을 중심으로 공공미술에 관심을 갖는 이론가들은 늘고 있지만 전문적으로 매달리는 사람을 찾기 힘들고, 연구 논문 역시 단편적인 프로젝트에 대한 리뷰나 인상 비평이 대부분이다. ●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 공공미술의 현주소와 나아갈 길을 우리 시각으로 진단하고 정리한 『왜 공공미술인가』가 나왔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공공미술 이론서는 『미술 공간 도시』(말컴 마일즈 지음)가 유일했다. 이 책은 우리 시각으로 성찰 ? 비평된 첫 번째 이론서로, 우리나라에서도 공공미술의 비평과 연구가 본격적으로 뿌리 내렸음을 보여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저자는 왜 공공미술이어야 하는지, 무엇이 공공미술인지, 어떻게 공공미술이 작동하는지 등 공공미술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던져놓고 미술과 사회의 흐름을 함께 진단하는 가운데 양쪽의 문제점들을 정면 돌파하면서 해답들을 찾는다. ● 저자 박삼철은 국내에 공공미술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와 연구가 전무하던 시기부터 공공미술 프로젝트 제작과 이론 연구를 병행해 온 현장 이론가다. 미술이 장식물로 묶여 있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을 통해 공공미술의 새로운 영역 개척에 도전해 왔다(약력 참조). ● 『왜 공공미술인가』는 저자의 풍부한 현장 경험과 국내외 공공미술 이론을 아우르는 이론적 식견을 바탕으로 공공미술의 과거와 현재, 이론과 실제, 현실과 이상 등을 정치하게 다룬 본격적인 우리 공공미술 이론서다. 다양한 창작 현장에서 비롯한 수많은 문제 상황에서 미술가들과 함께 고민해 온 저자는 서양 공공미술의 이론적 체제를 옮겨놓거나 정리하는 데 머물지 않고, 우리 식 공공미술을 모색해 왔다. 소승과 대승, 두레, 수신과 처신 등 우리의 풍성한 공동체 문화를 바탕으로 공공미술을 우리식으로 소화해내려는 노력들이 책 곳곳에서 신선하고도 친근하게 와 닿는다.
책 속으로 ● 『왜 공공미술인가』는 공공미술에 대한 'Why' 'What' 'WHERE' 'HOW' 'WHO' 'WHEN' 등의 질문에 답해가는 형식을 취했다. 저자는 이 책이 공공미술에 관한 국내 필자의 저서로는 첫 책인 만큼 저자의 주관에 따른 자의적인 해석의 오류를 피하기 위해 공공미술에 대해 꼭 필요한 질문 6개(육하원칙에 따른)를 설정하고 그 질문에 따라 논의를 전개했다. 또한 현장감 있는 풍부한 도판으로 공공미술의 여러 사례를 실감나게 보여주며, 각 도판에 자세한 해설을 곁들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1장 '왜 공공미술인가'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공공미술이 왜 필요한 지를 살폈다. 미술이 미학 내부의 폐쇄된 논의를 넘어 공공의 문제를 제기하고 나아가 공공의 문제에 관해 심도 깊게 토론해야 할 때라고 하는 공공성 시대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우리가 잘 살기 위해 모여든 도시는 갈수록 거대해지고 번쩍번쩍해지지만 그 도시에 사는 우리의 삶은 죽어가고 있음을 직시하고, 죽은 삶의 공간이 되어버린 도시를 개념공간, 표면공간 등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해부한다. 또한 이전까지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비평하면서 예술이 왜 도시, 공간, 사회에 대해 관여해야 하는지를 설명했다.
2장 '무엇이 공공미술인가?'에서는 공공미술의 정의를 내리기 위해 18세기 말 이후의 모뉴멘트에서 지금의 새 장르 공공미술에 이르는 공공미술의 흐름을 살폈다. ● 공공미술 개념의 변천 과정을 '모뉴멘트'―'장소 속의 미술'―'장소로서의 미술'―'공익 속의 미술'로 정리하면서 역사 속에 나타난 여러 가지 사례와 함께 설명했다. 또한 공공성을 해석하는 미술의 태도와 형식, 개념의 변화를 도표로 체계화하고 우리 사회가 지닌 공공미술의 무한한 가능성도 함께 진단했다.
3장 '어디에 공공미술이 있는가?'에서는 처소의 문제를 다루었다. 공공미술은 단순히 미술관 바깥이라는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미술과 사회의 사이, 곧 삶의 현장에 있음을 확인한다. 그 동안 미술(이른바 순수미술)이 미술관 안이나 프레임 같은 전문 영역 속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대중과 유리되었다고 보고, 공공미술은 미술과 대중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면서 미술과 사람들 사이에 존재해야 함을 역설한다. 또한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변화함에 따라 뉴 미디어로 형성되는 새로운 문화 예술 공간들을 살펴보고, 그런 미디어 공간이 갖는 여러 가지 의미들을 성찰해본다.
4장 '어떻게 공공미술이 되는가?'에서는 미술이 어떻게 공공성을 얻게 되는지를 알아본다. 많은 작품들이 도시 곳곳에 널려 있지만 그것들은 도시를 머물고 싶고, 살고 싶은 곳이 되게 하지 못하고, 높은 좌대 위에서 저 혼자 잘나고 저 혼자 고상해서 사람들과 유리된 것으로 진단한다. 이렇게 도시 곳곳에 널려 있는 미술 작품들의 주제나 형식, 내용이 사람들의 삶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그 자체가 폭력이라고 보면서 이러한 미술에 대해 반성을 촉구하며 이 폭력을 삶에 대한 창의력으로 바꾸자고 제안한다. ● 또한 무엇보다 미술이 해야 할 일은 사람들이 외로울 때, 지치고 힘들 때, 어떤 곤경에 빠져 도움이 필요할 때, 그 누군가로부터 받았으면 하는 관계의 내용을 찾는 것이라고 한다. 공공미술은 그러한 관계의 내용을 어떻게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문안하는 공공미술, 동반하는 공공미술, 대변하는 공공미술 등의 새로운 사회적 역할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다.
5장 '누가 공공미술을 만드는가?'에서는 공공미술의 주체에 관한 질문을 토대로 미술가와 그의 파트너로 위상이 회복된 시민 사용자의 상생관계를 살펴본다. 그리고 사회 문화적 기반으로서의 공공 정책도 함께 검토해 본다. ● 먼저 미술가에 대해서는 삶의 현장에서 공간 디자이너, 공공영역의 조직자, 에이전트 등으로 처신하는 미술가의 역할에 대해 살펴본다. ● 사용자에 대해서는, 지금껏 관객이라고 불러 온 대중(시민)들을 그들이 행하는 새로운 역할과 책임에 걸맞은 이름으로 새롭게 불러야 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진단한다. 또 관객이냐 사용자냐 하는 용어 구분을 넘어 새로운 미학을 열어가고 있는 사용자의 새로운 역할에 대해 중점적으로 설명한다.사용자에 대해서는, 지금껏 관객이라고 불러 온 대중(시민)들을 그들이 행하는 새로운 역할과 책임에 걸맞은 이름으로 새롭게 불러야 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진단한다. 또 관객이냐 사용자냐 하는 용어 구분을 넘어 새로운 미학을 열어가고 있는 사용자의 새로운 역할에 대해 중점적으로 설명한다. ● 또한 공공미술을 만드는 요소의 하나로 문화 정책과 이를 집행하는 행정 집단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지금껏 예술 정책은 미술가, 그것도 엘리트 미술가의 창작 지원에 비중을 두어 왔는데, 이제는 이러한 관행에서 벗어나 대중들이 문화예술을 실제로 사용하고 향유할 수 있게 사용 환경을 새로이 구성할 것을 요구한다. ● 또한 예술도 그런 정책들에 창의적으로 참여하고 개입할 때만이 삶의 인프라를 제대로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6장 '언제 공공미술은 살아 있는가?'에서는 삶의 현장에 있는 공공미술은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만들어 가는 과정이 훨씬 중요하다고 설명하면서 공공미술의 산 시간과 프로세스를 살펴본다. ●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공공미술은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함께 만들어 가는 시간의 미학, 과정의 미학에 생명이 달려 있으며, 과정 없는 미술은 곧 죽은 것임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지은이 ● 박삼철 1964년 부산 동래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스포츠조선 문화부 미술담당 기자(1990~1996)로 미술과 인연을 맺었다. 현재 공공미술을 기획하는 큐레이터 집단 (주)아트컨설팅서울을 이끌면서 공공미술 연구?기획?평론 활동을 하고 있으며, 미술인회의 공공미술 위원장, 문화연대 회원 등의 NGO 활동도 벌이고 있다. 책임 큐레이터로 강익중 밀레니엄 프로젝트『십만의 꿈』(1999-2000, 파주 통일동산), 거리미술전『공즉시색』(2005, 서울 광화문) 등을, 공동 큐레이터로 제3회 광주비엔날레 영상부문『상처』(2000), 제1회 도시와 영상전(1996, 서울시립미술관) 등을 기획했다. 실행 감독으로 부산민주공원 민주항쟁기념관 상설 전시실(1999, 부산광역시),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2003, 과학기술부), 광복 60주년 기념『시련과 전진』(2005, 민주화기념사업회) 등을 제작했다. 저서로는 『미술전시 기획자들의 12가지 이야기』(한길아트, 공저), 『에로스 바로보기』(심지, 공저) 등이 있고,『미술, 공간, 도시』(학고재, 맬컴 마일스)를 번역했다.
Vol.20060321c | 왜 공공미술인가 / 지은이_박삼철 / 학고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