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인권사진展   2006_0317 ▶ 2006_0328 / 일,공휴일 휴관

성남훈_엄마, 저어 오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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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호_김중만_노익상_박여선 성남훈_이갑철_이규철_임종진_최항영_한금선

기획_국가인권위원회

조흥갤러리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62-12번지 조흥은행 광화문지점 4층 Tel. 02_722_8493 www.chohungmuseum.co.kr

2005년 열 명의 사진작가들은 다큐멘터리, 포토에세이, 포트레이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인권사진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우리 사회 차별의 현장에 더욱 깊숙이 다가가고자 도시의 뒷골목과 집회현장, 농촌, 어촌, 산간벽지 할 것 없이 전국을 떠돌며 봄부터 초겨울까지 무심한 카메라에 숨결을 불어넣어 갔습니다. ● 그리하여 차별에 관한 열 가지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보호시설의 정신장애인, 난민, 중국 동포, 장애인과 그 가족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노인들과 어린이만 남은 농촌, 한국으로 시집온 아시아의 여성들, 산간벽지의 여성들, 조손 가정의 어린이 등입니다. ●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차별들이 존재합니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고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편 가르는 일들이 바로 우리 주변에서 수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들 속에 내면화되어 있는 차별에 관한 의식들을 끌어내어 '차별'이 아닌 '차이'로 인정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우리 사회의 인권감수성이 향상되길 바랍니다. ■ 국가인권위원회

엄마, 저어 오네에 ● 강원도 정선의 한 초등학교 분교에 다니는 아람이는 할머니와 함께 산다. 어떤 연유인가로 엄마아빠가 제 아이들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맡겨놓은 집이 늘다보니 이른바 조손가정이란 말이 생겼다. 정선의 아람이는 충청도에도 전라도에도 경상도에도 있다. 요즘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편화된 풍경이 되어가고 있다.

김문호_기대어 선 가족들

기대어 선 가족들 ● 지금 장애인들과 그 가족은 서로에게만 기대어 서 있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 정책을 기대하기엔 아직 멀고 먼 현실이다. 장애의 구분 없이 한데 어울려 살아가는 생활공동체는 장애인과 이 사회가 서로 기대어 설 때 만들어 질 수 있다.

김중만_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내일이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내일이다 ● 1년 단위로 계약된 삶. 한해살이 들풀이었으면 아무렇지 않겠지만 인간의 삶은 한해살이가 아니다. 마음대로 파견하고 거두어들일 수도 없다. 그러나 수백만의 비정규직, 계약과 파견과 임시로 이루어진 삶으로 채워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 대학을 마치고도 취업을 못한 젊은이들이 다시 직업전문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정부산하기관인 그 직업전문학교의 교사도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비정규직이다. 직업전문학교를 수료하고 취업할 수 있는 곳도 비정규직이다. 취업상담을 해주는 직업상담사도 비정규직이다. 그 뿐이 아니다. 골프장 캐디, 방송사 직원, 학습지 교사, 야쿠르트 아줌마... 수많은 직군과 직종 곳곳에서 너무 쉽게 비정규직이 늘어만 가고 있다.

노익상_촌 여자의 굽이굽이 이야기

촌 여자의 굽이굽이 이야기 ● 마을 사람들이 거의 떠난 산골의 텅 빈 마을은 홀로 아니면 한두 집만이 살림을 꾸리고 있다. 평생을 한 곳에 머물러 살아왔던 터라 다른 고을 이주는 곧 삶을 포기하는 것처럼 어렵지만 무엇보다 이들을 받아줄 이 아무도 없다. 몸까지 불편하여 나들이를 나설 형편도 못 되는 처지이니 말 그대로 꼼짝없이 텅 빈 마을에 고립된 살림을 꾸리고 있다.

박여선_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던진 질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던진 질문 ● 1만 1,000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한 공장 안에서 정규직과 함께 일하고 있다. 정규직의 1/3에 육박하는 숫자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들이 하는 일은 다르지 않다. 도급업체 노동자, 2차 하청 노동자인 비정규직들도 정규직과 똑같이 인격을 가지고 태어난 다르지 않은 인간이다. 그러나 그들이 받는 대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르다. 그 둘은 작업복부터 다르다. 쉬는 곳도 다르고 월급봉투의 무게도 다르다.

이갑철_촌아 울지 마

촌아 울지 마 ● 바스락, 쿵, 쩌억, 농촌의 집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농촌이 울고 있다. 이제 '살아남은' 집이 30여 호나 될까. 젊은 사람이라곤 없다. 그저 노인들이다. 거개가 할머니들만 산다. 섬진강변 한 초등학교에 도회지로 모두 떠난 사람들이 추석날 귀향해 주인 없는 학교에서 운동회를 한다. 갑자기 부산한 듯 보이던 운동회가 끝난 후 텅 빈 운동장에 외로움과 적막감이 휘감는다. 우는 농촌을 위로하는 건 아이들뿐이다. 아이들은 일기장에 쓴다. "촌아 울지 마."

이규철_유민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유민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 한때 5만 명에 달하던 가리봉동 중국동포 타운은 추석전후였는데도 썰렁했다. 정부가 불법체류자들을 정리하기 위해 '동포 자진 귀국' 프로그램을 시행하면서 대부분 중국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체불 임금 때문에 오도가도 못하는 사람, 합법신분을 기다리는 사람 등 약 1만 명이 기거하고 있다. 코리언드림을 꿈꾸며 가리봉동으로 모여든 중국동포들은 바로 한 세대 전, 서울로 가는 야간열차에서 '기어코 성공하리라'며 어금니를 깨물던 우리의 형과 누이였다.

임종진_그곳엔 우리의 누이들이 산다

그곳엔 우리의 누이들이 산다 ● 필리핀에서, 베트남에서, 몽골에서, 우즈베키스탄에서, 중국에서, 인도네시아에서, 미얀마에서... 참 멀리도 시집온 여자들. 적령기를 넘겨버린 농촌 총각들이 아시아로 원정을 가서 맞선보고 겨우 결혼을 하고 있다. 이제 결혼이민자가 전라남도 나주만 해도 5백여 명에 달하고 12만 명의 결혼이민자 아내들이 한국 땅에 살게 되었다. 아주 오랜만에 시골 마을에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게 되었다. 지금 이 땅엔 외국인 아내들이 시집간 우리의 누이가 되어 살고 있다.

최항영_두 개의 벽, 두 개의 문

두 개의 벽, 두 개의 문 ● 인종과 종교, 정치적 차이 때문에 난민이 된 그들은 두 개의 문을 나서야 한다. 먼저, 자신이 난민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2001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외국인이 난민으로 인정된 이후 이 문을 통과한 난민은 2005년 현재 37명. 두 번째 문은 취업이다. 난민으로 인정받는다 해도 대부분 이주노동자일 따름이다. 피부색이 다른 그들에게 인종차별이 심한 한국 사회는 그 자체가 거대한 벽이다.

한금선_꽃무늬 몸뻬, 막막한 평화

꽃무늬 몸뻬, 막막한 평화 ● 전라남도 무안의 한 다수인보호시설. 가을 햇살 아래 황토색 추리닝 바람으로 열심히 공놀이를 하는 사람들. 등나무 밑에 옹기종기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여성 원생들. 그 속에 여성관리자가 모기약을 들고 나타나 무좀약 치게 양말을 벗으라고 한다. 약 치고 햇빛에 발 말리는 모습이 참으로 평화로웠다. 그러나 그건 막막한 평화였다. ● "여기 있으면 한허고 많이 묵는디도 배가 고파라우. 집에 가면 안 묵어도 배가 부르겄지요?" 세상이 '정신질환자'라 부르는 그녀가 배고픈 이유는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Vol.20060317d | 인권사진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