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 TO FACE

이재훈展 / LEEJAEHOON / 李哉勳 / painting   2006_0307 ▶ 2006_0318 / 일요일 휴관

이재훈_FACE TO FACE-당신의 얼굴은 무엇입니까(20050831)_장지에 수간채색_72.7×60.6cm×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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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307_화요일_06:00pm

아트포럼 뉴게이트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1-38번지 Te. 02_737_9011,9013 www.forumnewgate.co.kr

가면과 익명 사이에 드리운 감정의 그늘과 진실 ● 우리는 부단히 삶의 진실을 엿보려고 노력한다. 과학이나 철학을 통해 자연의 법칙이나 심리작용을 이해하여, 주어진 환경과 주관적 인식이 어떻게 우리 삶의 양식을 만들어 내는 가를 파악하며, 그것이 나와 세계 사이를 보다 더 투명하게 만들어 줄 것을 기대한다. 사물의 현상을 보다 더 잘 이해하고, 동물이나 인간의 행동양식이나 감정 표출의 양태에 대하여 보다 세밀하게 인식함으로써 우리는 서로의 의사를 더 정확히 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서로의 의사를 더 정확히 전달하고 이해하는 것은 소통의 문제이다. 우리의 삶에서 소통의 문제가 중요시 되는 이유는 함께 살아가는 사회적 삶에서 소통이란 더 나은 삶의 행복을 보장하는 기초이기 때문이다. 소통을 통하여 서로를 이해하며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고, 조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훈_FACE TO FACE-당신의 얼굴은 무엇입니까(20051030)_장지에 수간채색_77×67cm
이재훈_FACE TO FACE-당신의 얼굴은 무엇입니까(20051204)_장지에 수간채색_144×52cm
이재훈_FACE TO FACE-당신의 얼굴은 무엇입니까(20051128)_장지에 수간채색_130F

과학이나 철학이 외부의 환경을 기초로 삶의 진실을 규명하고자 한다면, 예술은 또 다른 방식으로 삶의 진실을 이야기 한다. 그것은 상상이나 비유, 은유 또는 과장이나 감탄의 방식으로 자신이 느낀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내적 감흥을 기초로 한다. 유명한 이백의 시구를 예로 들어 보자. 이백은 여산(廬山)의 장대한 폭포를 보며 "날듯이 곧게 떨어져 내리는 삼천 척의 물줄기(飛流直下三千尺)"를 노래한다. 삼천 척의 물줄기는 실제 폭포의 크기가 아닌 이백이 느낀 감정의 크기이다. 이백이 여산 폭포를 보는 그 순간 폭포의 크기는 삼천 척의 장엄함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이러한 수사법은 예술적 상상의 눈으로 볼 때만 의미가 있다. 이 시구를 듣고, "실제로 그 크기를 재보니 백 척도 안 되던걸"이라고 이야기한다면, 이백이 전달하려고 하는 '진실'은 사라져 버리고 만다. 크기에 대한 느낌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같은 대상이라도 보는 사람의 정서, 나이 또는 시간에 따라서 달리 보이기 마련이다. 예술은 같은 대상에 대한 또 다른 삶의 진실을 말하는 창구이다. ● 이재훈의 작업은 인간의 소통의 문제를 주제로 하고 있다. 소통이란 사회적 삶을 전제로 한다. 소통은 말하려는 대상이 있고, 말하는 상대가 있음으로써 비로소 가능해 진다.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고 처리하는 정보의 지극히 일부분만을 교류하며, 타인에게 내어주는 정보는 의식적으로 제어되거나 통제된다. 그 과정에서 순간의 감정 상태에 따라 그 정보는 과장되거나 축소, 또는 왜곡된다. 그러나 그 정보를 받아들이는 상대방 또한 이처럼 과장 또는 축소, 왜곡된 정보를 단순하게 받아들여 그 일차적 정보만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왜냐하면 보여주는 정보가 매우 단편적이기 때문이다. 정보를 받아들이는 수용자 입장에서는 적은 분량의 정보를 분석하고, 자신의 경험이나 유추에 의하여 그 정보에 숨어 있는 풍부한 의미를 복원하고, 그 의미의 진실을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감정의 교류란 특정 양식으로 보여주는 여러 정보들을 통하여 느낌을 공유하는 소통을 말한다. ● 그러나 인간사이의 정보 교류가 항상 참만을 전제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각기 남들이 자신을 이렇게 봐 주었으면 하는 욕망이 있고, 보여주는 모습은 항시 내면의 본 모습과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인간은 의식적으로 자신의 정신과 육체를 포장 하며, 그 포장은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인간은 이 정보만을 내보이고자 한다. 이것은 가면이다. 가면의 모습이 얼마나 화려하든 또는 얼마나 정치하든 그것은 의식적 가식의 표상이다. 가면은 언제나 익명의 모습으로 표현되거나 정당화된다. 가면의 모습에서 개성은 사라지고, 사회적으로 훈련되거나 지향하는 익명의 모습이 가시화된다.

이재훈_FACE TO FACE-알 수 없는 대화 (20050930)_장지에 수간채색_60×115cm
이재훈_FACE TO FACE-水深可知 人心難知(20051231)_장지에 수간채색_190×400cm
이재훈_FACE TO FACE-水深可知 人心難知(20060128)_장지에 수간채색_130×120cm

이처럼 인간의 겉모습과 내면적인 의식 사이의 근원적 간극이 그의 작업 대상이다. 이재훈은 겉으로 드러난 정보를 통하여 인간의 치장너머에 있는 진실한 모습을 어떻게 환원할 수 있을까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표현하려는 대상의 진솔함을 보기위하여 가면과 익명의 실체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대상의 진실에 접근하려한다. 그가 지금 마주대하고 있는 대상은 그가 그 대상에 대하여 그러하듯이 그 대상 또한 그에게 익명의 보호막 안에서 가면을 쓰고 있다. 그는 그 익명성과 가면을 철저하게 긍정한다. 그러므로 역설적으로 대상의 진실에 한걸음 더 다가선다. 가면을 긍정하는 순간 그의 시각은 대상의 가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가면 너머의 진실한 얼굴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 따라서 그의 작업은 모두 익명과 가면의 상태로 대상을 표현한다. 치장이나 포장은 더 이상 그의 진실의 눈을 속이지 못한다. 그의 작업에서 그의 시선은 상대의 내면을 드러내 줄 수 있는 다른 부위로 향한다. 머리카락이나 손가락 마디, 대상의 전체적인 윤곽에 머문다. 이러한 부위는 대상의 가면에서 벗어나 대상의 개성이나 감정, 또 그 인간다움을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부위들은 의식의 통제를 조금 덜 받는 부위로 여겨지는 까닭이다. 무의식이나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에 의해 드러나는 모습들, 예를 들면 손의 떨림이나 제스쳐, 움츠림이나 꼿꼿함 등 모든 움직임에서 예술적 영감과 상상의 증폭으로 상대의 감정 상태를 느끼고자 하는 것이다. ● 이 과정 속에서 이재훈은 인간의 생노병사와 희노애락을 그려낸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인간만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그의 노력이 관객들의 눈에도 보이기를 희망한다. ■ 김백균

Vol.20060317c | 이재훈展 / LEEJAEHOON / 李哉勳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