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 공명(共鳴)

이구용展 / painting   2006_0307 ▶ 2006_0317

이구용_산울림_장지에 수묵채색_200×366cm_2005

갤러리 우덕 서울 서초구 잠원동 28-10번지 한국야쿠르트빌딩 2층 Tel. 02_3449_6072

심상에 투영시킨 산의 형상 ● 우리 미술의 정체성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지니고 대상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온 이구용은 자연에 대한 이미지를 감성적으로 살펴보고 그 느낌을 전달하며 형상화시키는데, 면밀하게 살펴보면 단순히 감성적인 작가라고만 여길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는 우리의 산수자연을 소재로 한 그림을 통해 전통미술의 형식을 재해석하여 우리 한국 미술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회복하는데 관심을 지녀온 작가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면은 작가 스스로가 주장하는 바는 아니지만 평소의 대화나 글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부분으로서 자신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는 중요한 측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구용_산-공명(共鳴)_장지에 수묵채색_200×122cm_2005
이구용_산에 관한 명상_장지에 수묵채색_165×135cm_2006
이구용_산-공명(共鳴)_장지에 수묵채색_235×185cm_2005

이구용의 작품 세계를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보면, 식물의 형상을 소재로 한 것과 산을 대상으로 한 것 등이 있다. 특히 최근 몇 년간의 산을 소재로 한 일련의 그림들은 작가적 이미지를 크게 변모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는 산의 겉과 속을 속속들이 파헤쳐 놓은 듯한 오묘하고도 깊이 있는 산의 맥락과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가 그리는 이 산들은 단순하게 산의 외적 이미지나 모습만을 담은 산이 아니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작가의 이 산들은 자신이 받은 감흥이 화면을 통하여 한 순간에 발산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여기에는 산이 지니는 알 수 없는 신비함과 기운 그리고 영감이 함께함은 물론이다. 이는 산이 곧 작가 자신의 세계를 하나로 불러 모아주며 새로운 예술적 영감을 비추어 주는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더 나아가 그가 산과 함께 호흡하고 전율하고 공존하는 바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연유로 그의 산은 산이면서도 산이 아닐 수 있는 그 무엇으로서 새로운 모습을 담은 신선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이처럼 그는 산에 대해 체험하고 느끼는 일련의 과정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또 다른 세계가 지니는 산의 모습을 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기에 의식적으로 잔 기교를 부리며 미감을 형상화시키거나 일부러 투박하게 보이게끔 의도적으로 만든 그런 그림이 아니다. ● 이처럼 이구용의 산은 우리가 흔히 인식할 수 있는 그런 산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그의 그림을 대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데, 이는 작가가 바라보는 산의 이미지가 남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이러한 면은 그가 복잡한 도심에서 일탈하여 산을 오르내리면서 자신의 내면에 잠재되어 자신도 알 수 없는 내적인 부분을 감각적이면서도 미적으로 표출하며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구현시키는 데서부터 비롯된다. 작가는 산을 그리면서 산의 운치와 기개를 몸소 체험하였으며, 이 산을 통하여 자신의 예술적 흥취를 형상화 시켰을 뿐만 아니라 초자연적인 실체와의 만남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크고 작은 암산과 토산 등 다양한 형태의 여러 산들을 통하여 산에 대한 무언의 체험과 내면적 대화가 이루어지면서, 작가는 자연의 대 질서와의 교융을 체험하고 이를 자신의 내면으로 끌어들여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남다른 미적 체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그의 미적 감흥과 심경은 다음과 같은 자신의 작업노트에서 잘 나타난다.

이구용_산-공명(共鳴)_장지에 수묵채색_200×122cm_2006
이구용_산-공명(共鳴)_장지에 수묵채색_200×122cm_2005
이구용_산-공명(共鳴)_장지에 수묵채색_122×200cm_2005

"나는 매일 태고적 신비를 담고 있는 산의 능선과 현대의 복잡한 도심의 고층 건물의 선이 차갑게 조화를 이룬 도시의 하늘을 만나고 있다. 태초의 기운의 가락을 느낄 수 있는 산의 능선과 인간의 얇은 재주로 제법 그럴싸하게 지어 올린 고층 건물의 기하학적인 선의 교차 속에서 인간의 욕망의 높이가 얼마나 허무한지를 느껴본다. ● 요즈음은 축적된 현대 과학의 핵심인 인공위성의 활용으로 지구를 손바닥 보듯이 하는 세상 속에서 더 이상 산은 성스러운 대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다양한 생명의 호흡을 담고 있는 거대하고 숭고한 산을 오르며 내면에 잠재된 우주적 경험을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체험과 산에 대한 기억들을 형상화하고자 한다." ● 주지하다시피 이구용이 그린 산은 일단 양식적으로 매우 상징적이며 표현적이고 이념적이다. 그럼에도 그의 산 그림은 인간의 삶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있다. 더 나아가 산의 실체를 보다 인간적인 모습으로 인간 본연의 냄새가 물씬 풍기게 하면서도 단순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산은 예로부터 자연과 우주의 상징으로 표현되어 왔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좋은 소재로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산의 실체를 진정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로 인식되어왔다. 그러기에 동양의 대가들은 감히 범접하기 힘든 산의 기운을 파악하고자 많은 고민을 해왔고 평생을 깊은 산 속에서 보내며 생활하기도 하였다. 서양의 경우는 산의 위용과 본연의 맥을 갖춘 그림을 그린 작가가 고대부터 지금까지 거의 없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이구용의 산은 산에 대한 또 다른 조형적 형상미를 가능하게 하였고 중국 등 동양의 산을 소재로 한 그림들과는 또 다른 신선한 양식을 느끼게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는 우리 한국적 정서에서 발로된 순수한 작가적 감흥과 미감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 이구용의 산은 그 나름의 형상미를 지니고 이후에도 또 다르게 변모해 나갈 것이다. 자연 특히 산이 지니는 정기와 기운이 현대 인간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투박한 필선과 담담한 붓 자국으로 이루어져 있는 그의 그림은 일상을 통해 부딪치는 산의 이미지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그의 산 그림은 산에 대한 무의식적인 애정과 열정을 자신의 심상에 투영시켜 또 다른 산의 모습을 지닌 자연 풍광으로 형상화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구용의 산 그림은 아직 진행 중이므로 정리하고 명확하게 분석하기에는 다소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 나름의 조형적 의미와 가능성 및 신선함을 지니고 있다. ■ 장준석

Vol.20060314b | 이구용展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