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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310_금요일_05:00pm
갤러리 선컨템포러리 서울 종로구 소격동 66번지 Tel. 02_720_5789 www.suncontemporary.com
오래된 문 앞에서 ● 일산 작업실에서 최봉림의 사진들을 보고난 뒤에 함께 술을 마셨다. 술은 과해서 취했다. 대리 운전으로 달리던 차 안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깨어났다. 자정 넘은 차창 밖은 캄캄하고 적막했다. 그 적막 때문이었을까? 홀연히 오래 전의 꿈 하나가 기억났다... ● 최봉림의 사진들은 다양한 이미지들을 보여준다. 검은 월동 보호막에 허리를 졸린 동상들, 말라버린 분수대 자갈밭에 묻혀서 몸부림하는 조상들, 갖가지 모양으로 성행위를 연기하는 인형들, 어느 먼 나라 여인의 풍성한 후두부 금발, 수분을 다 탈진 당하고 고개를 떨군채 시들어가는 식물, 십자가에 매달려 블랙홀처럼 바닥없는 어둠으로 침강하는 구세주의 성상 등등... 이들 이미지들은 저마다 고유한 연상을 불러 일으키지만 (성적 판타지와 특히 종교적 판타지 - 나는 혹시 최봉림이 무슨 까닭인가로 이교도가 되어야 했던 크리스천은 아니었을까 궁금하다) 동시에 그 저마다의 연상들은 수원지로 회귀하는 여러갈래의 물길들처럼 알 수 없는 중심으로 수렴된다. 내 경우, 그 수렴점으로 각인되는 이미지는 수없이 반복 포착되고 있는 보도 위의 맨홀들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맨홀들 가운데 박혀서 흑옥(黑玉)처럼 보는 이를 응시하는 검은 구멍들이다.
구멍은, 특히 검은 구멍은, 예술적 상상력의 잘 알려진 모티브이다. 멜랑콜리에 시달리던 영문학 교수 J. R. R. 톨킨을 '반지의 제왕'이라는 신화적 상상력의 세계로 데려간 건 교수실 양탄자 위에 뚫려있던 작은 구멍이었다. 19세기의 여류 시인 E. 디킨슨을 폐기 당한 욕망들이 꿈틀거리는 낭만적 시의 세계로 데려간 것도 어느 날 설거지를 하다가 발견한 개수구의 구멍이었다. 의식의 흐름이 범람하는 경계 밖의 어느 곳으로 우울한 페미니스트 V. 울프를 데려간 것 역시 우연히 올려다 본 방 천정 위의 검은 곰팡이 자국이었다. 최봉림의 사진들도 다르지 않다. 최봉림의 사진들 속에도 그만이 발견한 그래서 그만이 알고 있는 모종의 구멍이 있고 그 구멍을 통해서 대상들의 세계는 이미지의 세계로 전이된다. 다양한 사진 이미지들은 그러니까 작가만이 간직한 상상력의 구멍이 카메라의 렌즈와 일치되었을 때 포착되어 드러나는 인물들, 사물들, 풍경들 혹은 그 디테일들이다. 하지만 그렇게 주관적 상상력이 표현된 이미지들과 더불어 주목해야 하는 건 그 이미지들이 불러일으키는 효과이다. 최봉림의 사진들 속에 비밀스런 힘이 있다면 그건 보는 이의 시선을 모르는 사이에 이미지로부터 자신에게로 향하게 만드는 힘이다. '모르는 사이에'라는 어휘는 모호하지만 그것은 팽팽한 두 힘의 긴장을 통해서만 일어날 수 있는 특별한 심미적 효과이다. 주관적 상상력의 세계를 표현하면서도 최봉림은 냉정하고 객관적인 (더 정확히 말하자면 거의 금욕적인) 사진적 거리를 끝까지 견지한다. 그리고 그러한 심미적 거리의 유지를 통해서 작가의 주관적 상상력의 세계는 집단 상상력의 세계로 바뀌고 다시 자연스럽게 보는 이를 개인적인 상상력의 세계로 유도하는 무의식적 회로가 된다. 이미지를 응시하던 시선이 어느 사이 보는 이 스스로를 응시하게 되는 건 우리가 이 무의식적 회로를 자신도 모르게 따라가기 때문일 것이다.
최봉림의 사진들은, 오래 보고 있으면,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간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아서 최봉림의 사진들은 나를 어느 오래된 문 앞에 문득 서있게 만들었다. 이 문은 낯설어서 얼른 문고리를 붙들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문이 정말 그렇게 낯설고 오래된 문일까? 아닐 것이다. 사실 우리는 끊임없이 이 문을 열고 닫으면서 살아간다. 이 열고 닫음을 우리는 통상 꿈이라고 부르지만 그 문들이 반드시 깊은 잠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문들은 일상의 도처에 존재한다. 다만 우리가 그 문을 보지 못하거나, 보아도 그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하거나, 열고 들어가도 눈 먼 습관 때문에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한 채 문 밖으로 되돌아나오기 때문에 그 문은 낯설 뿐이다. 그런데 이 오래된 문의 저편에는 어떤 풍경이 있는 것일까? 그 풍경은 보는 이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 그것은 까맣게 잊었던 옛 꿈 하나였다. 물론 나는 최봉림의 사진들과 문 저편에서 느닷없이 떠오른 오래된 꿈 사이에 무슨 특별한 관계가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까닭을 이해하는 일이 아닐 것이다. 중요한 건 최봉림의 사진 이미지를 통해서 어느 오래 된 문 앞에 내가 도착했으며, 그 문 저편에서 새로운 꿈을 꾸지는 않았지만 아득히 잊고 있었던 옛 꿈 하나를 거짓말처럼 기억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렇게 홀연히 되돌아 온 옛 꿈의 내용은 이렇다.
...나는 모르는 여자와 도시의 중심가를 걷고 있었다. 해가 쨍쨍한 대낮인데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여자가 쥬얼리의 쇼윈도우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보석들 속에서 박제된 새 한 마리가 새카만 눈을 반짝이며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여자는 쇼윈도우 앞을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지루해서 돌아본 거리는 어느 사이 캄캄한 밤이었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고 가로등마다 불이 켜져 있었다. 여자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긴 중심가의 끝은 지하보도였다. 우리는 계단을 밟으면서 땅 밑으로 내려갔다. 갑자기 작고 어두운 방 안이었다. 나는 등 뒤에서 여자의 옷을 벗기는데 돌아앉은 여자는 자꾸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마침내 속옷마저 벗기고 나는 등 뒤에서 힘껏 여자를 껴안았다. 그러다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여자의 흰 등 위에 박처럼 커다란 혹이 붙어 있었다. 그제서야 여자가 부르는 노래가 또렷하게 귀 안으로 들어왔다. "혹 속에서 아이가 울고 있어요, 혹 속에서 아이가 울고 있어요..." ■ 김진영
Vol.20060310a | 최봉림展 / CHOI BOM / 崔鳳林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