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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308_수요일_05:00pm
갤러리 상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9번지 Tel. 02_730_0028
한사람의 인생이 결코 가볍지 않을 터인데 천만 인구가 형성해 놓은 도시를 오가는 사람들을 헤아리면 아득한 전율을 느낄 수밖에 없다. 큰 그림에서 보면 인간이 만든 도시조차 자연의 일부라 할 수 있는 하나의 풍경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도시의 풍경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전선다발로 이루어진 밀림을 보는 듯한 이민혁의 그림에는 우리가 만들어 발 디디고 있는 풍경이 격정과 슬픔의 일기로 가득 차 있다.
스피드 ● 속도감은 현대 도시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도시와 사람들의 정서뿐 아니라 드러나는 모습까지 빠른 속도를 지향하는 현상은 역으로 '느림'의 미학을 예찬하는 지경에 도달하였다. 속도는 공간을 없애고 시간을 건너뛰게 만들었다. 숨 가쁜 떠밀림은 사람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좀 더 빠를 것을 주문한다. ● 작품은 면이나 점이 아닌 선으로 그려져 있다. 작가는 작품 제작 과정에 있어서도 빠른 붓질로 일관하였다. 직선이나 곡선의 반복으로 인하여 작품에 등장하는 거리, 자동차, 사람들은 움직이고 있는 속도감을 잃지 않는다. 곧 다음 동작과 다음 위치로 이동할 것 같은 이미지들은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속도에서 일탈하는 즉시 전체 덩어리에서 빠져나올 뿐만 아니라 이동하는 무리에서 유리되어 사라져버릴 것 같은 태세이다. ● 작품 전체에서 느낄 수 있는 속도감은 도시를 하나의 유기적인 생명체로 드러낸다. 이것은 도시속의 삶이 개인의 범주를 넘어서 오히려 개인의 삶을 조절하는 시스템으로 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정체모를 위기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은 일상 속에서 문득 알아차리게 되는 개인의 소외감과 짝을 이룬다. 무서운 속도로 진행되는 문명을 거스르고 개인이 홀로 멈춰 설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까? 흐름에서의 일탈은 곧 낙오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암암리의 두려움이 도시인의 삶에 내재되어 있다.
익명 ● 흘러가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식당에서 다툼을 하며 쇼핑을 하고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우리 모두이다. 나이기도 하고 타인이기도 하다. 대중이란 이름으로 명명되는 이 사람들은 그림을 통해서는 각자의 이름을 얻을 수 없다. 적어도 이민혁의 그림에서 사람들은 주인공이지만 동시에 도시 풍경 그 자체로 드러날 뿐이다. 작가는 '흘러간다'라고 그림속의 사람들을 표현하였다. 흐름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는 사연들을 가진 각기 다른 지문을 소유한 존재들이다. ● 낱낱의 삶은 개인에게는 절절한 것이지만 전체의 관점에서 본다면 하나의 점과 같은 것이다. 부속품이라는 건조한 표현을 빌 필요는 없다. 다만, 공중 부양하듯 날아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이름 없이 도닥거리는 삶의 집합체가 바로 도시라는 앎은 중요하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이러한 거리를 두고 일상을 바라보면 개인의 이름과 정위(定位)가 상대화된다. 익명은 개성을 빼앗는 폭력일 수 있지만 전체적인 시각에서 개체의 소소함을 관조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유효하다. 물론, 이민혁의 작품에 등장하는 익명의 대중은 정신과 느낌을 강탈당한 것 같다. 마치 떼 지어 몰려다니는 벌레나 짐승처럼 본능에 의해서만 휩쓸리는 나약한 존재로 보인다. 도시인의 실재가 그러하다. 때로 밤하늘의 별처럼 자신의 궤도를 그리는 아름다운 별 무리와 같지만, 때로 광기와 욕망에 떠밀리는 야만의 상태가 될 때도 있다.
슬픔 ● 빠르게 움직이는 도시에 흘러가는 사람들을 그린 그림은 슬픔을 안겨준다. 작가는 이 도시의 풍경에 대한 인상을 슬픔의 정서로 풀어헤쳤다. 그의 붓질은 격동하는 빠른 선으로 천위에 휘갈겨져있다. 작가는 토해내듯 작품을 만들어 내었다. 또한 작가는 작품에 등장하는 도시풍경과 동화되어 그림을 그린다. 이것은 여행자의 시각이 아니다. 관조하듯 도시를 관찰했지만 작가마저 이 도시의 구성원인지라 삶에 있어서는 철저히 속도와 익명의 바다인 도시에서 헤엄칠 수밖에 없다. 느긋한 유영(遊泳)이라기보다 고독한 자기 대면이라 할 수 있다. 슬픔의 기조는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유일한 치유의 방법으로써 끓어오르는 감성을 작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 슬픔은 자기 연민이나 비관으로 이어진다면 부정적인 힘을 강력하게 발휘한다. 도시는 개인의 삶을 유린할 수도 있고, 위축시킬 수도 있다. 도시적 삶의 부정적인 현상들은 한편 성장과 개발의 역동적인 창조에서 비롯되는 것들이기도 하다. 음양(陰陽)이 도시에 존재한다. 이것은 인간의 태생적 조건이기도 하다. 이러한 인간 조건의 냉정한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진정 비통한 것은 거대한 집합체적 삶 속의 개인은 티끌만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이다. 망각은 야만에 휩쓸려 흐름의 일부로만 존재하는 상태로 이끌기 때문이다. ● 흘러가면서도 '자신의 흘러감을 아는 익명인'은 도시 속에서도 빛나는 별로 자기 궤도를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미미한 존재라는 자각에 잠시 슬픔에 젖어볼 수도 있지만 가끔은 자신의 속도를 멈출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될 것이다. 그러할 때 빠른 속도 속에서도, 이름 없는 존재로서도 넉넉한 참 여행자로 도시 속을 걷게 될 것이다. ■ 신혜영
Vol.20060308b | 이민혁展 / LEEMINHYUK / 李民赫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