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ePub

한젬마展 / mixed media   2006_0308 ▶ 2006_0314

한젬마_TelePub-인터미디언_포스터, 전단지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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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308_수요일_05:00pm

MC performance_한젬마

인사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02_736_1020 www.ganaart.com

텔레펍 ●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텔레펍'이다. '텔레'란 말은 예술 프로그램의 MC로 활약했던 그의 방송생활을, 그리고 '펍'이라는 말은 『그림 읽어주는 여자』로서의 출판활동을 가리킬 게다. 그런 의미에서 이 두 낱말을 결합한 '텔레펍'은 그 동안의 활동을 요약하는 자전적 작업이자, 동시에 여러 대중 매체를 통해 활동하는 "인터미디언"이라는 새로운 예술가 유형이 존재할 권리를 주장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한젬마_MC performance_2006
한젬마_MC performance_2006

방송과 출판의 바깥에서 한젬마의 작업을 이끌어온 주제는 '관계'의 탐색이었다. 한때 승려가 되려고도 했던 그는 '관계'라는 주제를 불교의 철학에서 가져왔다고 말한다. 불교에서는 인간을 실체가 아니라, 현재의 '인연'과 과거의 '업'으로 이루어진 관계의 총체로 바라본다. 이 관념을 가시화하는 데에 한젬마는 주로 못, 경첩, 단추, 지퍼, 스티치워크, 플러그 등을 이용한 오브제 작업을 이용해 왔다. ● 그는 "페인팅보다 오브제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페이지에 경첩을 달아 책을 만들고, 한지 입힌 목판 조각들에 녹슨 못을 박고, 벨트로 씨줄 날줄의 직물을 짜는 브리콜뢰르가 이번에는 다른 재료를 골랐다. '텔레'와 '펍'으로 대량 복제된 자신의 이미지들을 이어 붙여, 한편의 방송과 같은 서사를 구성한다. 여기서 불교적 근원을 갖는 '관계'라는 주제는 그의 방송 및 출판활동과 맞물려 예술과 대중의 관계로 변용된다.

한젬마_그림 읽어주는 그림-열어버린 몬드리안_혼합재료_46×46cm_2006
한젬마_그림 읽어주는 그림-반고호_혼합재료_60×49×25cm_2006

이 변화는 이번에 전시된 지퍼를 이용한 명화 시리즈에 잘 드러난다. 여기서 지퍼 작업은 『그림 읽어주는 여자』의 '펍'과 연계되고, 대량생산된 상품의 모습으로 슈퍼마켓 전단지 속으로 들어간다. 이 영리한 기동을 통해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는 관객은 슈퍼마켓에서 상품을 고르는 소비자가 된다. 이는 물론 작품을 아우라 없는 상품으로 제시함으로써 대중과 예술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둘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다.

한젬마_인터미디언-자화상_방송 프로그램 재편집 동영상_2006

방송 및 출판활동 기록들을 재료로 한 이번 작업들은 이미지의 성격상 어쩔 수 없이 '팝아트'를 연상시킨다. "안녕하십니까, 한젬마입니다." 자신이 나온 비슷한 방송화면들을 공간적으로 병렬하거나, 비디오를 통해 시간적으로 반복하는 것은 시뮬라크르의 계열적 전개라는 팝아트의 전략을 닮았고, 대중매체에 비친 이미지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피상성의 예찬 역시 영락없이 팝아트의 제스처다.

한젬마_인터미디언-'우먼텔레펍'여성지 / 'TelePub'시사지_2006
한젬마_인터미디언-'Wedding Telepub'웨딩지 / '혼인 텔레펍'웨딩지_2006

하지만 '텔레펍'은 팝아트와 다르다. 팝아트가 대중 매체의 이미지를 가져와서 거기에 예술적 가공을 가한다면, 텔레펍은 작가가 직접 매체 안으로 들어가는 퍼포먼스의 성격을 띤다. 한젬마는 매체에 수동적으로 보도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동시에 방송과 출판을 능동적으로 기획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적어도 방송과 출판활동을 하는 동안에 대중매체에 비친 그의 이미지는 작업의 재료가 아니라 완제품이다. ● 팝아트가 산업적이라면 텔레펍은 매체적이다. 팝아트가 기계복제의 비인격성을 띤다면, 한젬마의 작업에서는 인격이 느껴진다. 자신을 표지모델로 등장시킨 잡지 시리즈를 통해 매체에 비친 이미지의 긍정은 의도적으로 나르시즘의 수준으로까지 올라간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의도적으로 대중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고독한 '장인'이 아니라 대중으로부터 이해받고 심지어 사랑까지 받는 '스타'라는 새로운 예술가 유형에 대한 인정이다.

한젬마_TelePub/인사아트센터_2006

그의 앞에는 두 가지 길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사진 너머에는 아무 것도 없다"며 방송과 출판의 피상적 이미지들 속으로 스스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 매체에 비친 이미지를 허구로 간주하고 그와 구별되는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이 따로 있다고 믿는 것이다. 밖에서 들어오는 선택의 그를 오랫동안 괴롭혀 온 듯하다. 그는 그 두 길을 모두 가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도 다시 한번 '관계'를 만들어내야 한다. ● '텔레펍'은 방송과 출판을 잇는 못이며, 그것들과 작가적 활동을 맞붙이는 지퍼이며, 작가의 이미지와 그의 실체를 연결하는 경첩이며, 무엇보다도 대중과 예술을 연결하는 플러그다. 조각을 기워 만든 그의 캔버스를 연상시키는 이 자전적 조각들의 브리콜라주가 얼마나 성공했는지는 물론 관객이 판단할 몫이겠지만, '텔레펍'이 미디어의 시대인 21세기에 사회의 모든 곳에서 앞으로 더 강력하게 나타날 어떤 현상을 미리 보여준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 진중권

Vol.20060307d | 한젬마展 / mixed media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