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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303_금요일_05:00pm
조흥갤러리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62-12번지 조흥은행 광화문지점 4층 Tel. 02_722_8493 www.chohungmuseum.co.kr
이민영은 집 근처에 위치한 독립공원의 풍경을 담았다. 매일 같이 마주치는 풍경이자 자신의 일상을 이루는 장소에 대한 일종의 다큐멘터리 사진이다. 오다가다 마주치는 그곳은 공원이면서도 일상적 삶의 연장 공간에 다름 아니고 쉼터이자 만남의 장소이며 교육의 현장이자 회상과 기념의 자취들이 한자리에 붙어있는 기념비적 장소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삶 안으로 너무 깊숙이 들어와 버린 이곳은 그로인해 경외감이나 신비감을 부여받을 만한 거리감이 미처 확보되지 못하는 편이다. 그래서 그곳을 공원이라고 부르기도 좀 뭣하고 그렇다고 거창한 역사적 기념장소로 각인하기도 어려운 곳이다. 작가는 다분히 일상적인 삶의 한 공간으로 그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니까 그 근린공원에 모여들고 지나드는 사람들의 모습을 주변풍경과 함께 담아놓은 것이다. 그것은 한낱 이미지에 다름 아니다. 사진 속의 인물들은 무척 작게 위치해있고 무엇인가에 골몰하고 있다. 비둘기에게 모이는 주거나 퇴락한 담을 끼고 산책을 한다. 아직 풋풋한 내음이 나는 젊은 연인들이 손을 잡고 다소 어색한 데이트를 하는가 하면 이방인들은 창을 통해 내부를 기웃거린다. 소풍 온 학생들은 아직 스산한 봄의 잔디밭에 둘러앉아 도시락을 까먹으며 참새 떼처럼 떠드는가 하면 정강이에 바짝 달라붙은 교복바지를 하나씩 걸치고 순국선열추념탑 아래에 몰려 앉아 잡담을 나누는 중학생들도 들어있다. 가끔 퇴락한 형무소 벽돌담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하거나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의식을 구경하는 사람들, 그저 무심결에 마주친 사람들의 그림자가 짙고 길게 드리워져 있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나무 그늘 아래서 노인들은 한담을 나누다가 지팡이에 의지해 어디론가 총총히 사라진다. 벤치에 앉아 누군가와 핸드폰으로 교신에 열중인 양복 입은 신사나 서재필 동상 아래 위치한 벤치에 홀로 앉은 이의 뒷모습은 모두 고독하다. 그런가하면 공원을 관통해 다음 행선지로 가기 위해 버스나 지하철을 타러가는 이들의 뒷모습은 여전히 바쁘다. 이때 공원과 그 공원을 이루는 기념물들은 그저 낡고 흐릿한 건물 이상이 되지 않는다. 이 공원에 모인 사람들은 한 개인의 적극적인 몸짓과 개별성의 지표를 지니고 있다기 보다는 풍경에 묻혀있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공원에 있는 이들은 한결같이 그 장소성의 의미와 주변 기념물에 눈길을 주기 보다는 그저 이곳에 놀러오거나 쉬기 위해 앉아 있는가 하면 다만 스쳐지나갈 뿐이다. 더러 눈길을 주고 사진촬영의 배경으로 삼는가 하면 건조한 문구로 쓰여진 푯말을 들여다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심심하고 건조한 표정과 포즈들을 저마다 짓고 있다. 정작 그들의 시선은 이곳의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시선은 다만 그들 자신의 내부로 겨냥되어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굳이 왜 이 공원에 왔을까?
공원 바로 뒤로는 고층 아파트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순간 이 기념비적이고 역사적인 공간이 갑자기 왜소하고 초라하기 까지 하다. 앞에는 곧장 도로로 연결되어 버스를 기다리거나 각자 어디론가 급히 가는 이들의 발걸음으로 어지럽다. 부산하고 소란스러우며 늘 반복적인 일상의 한 보판에 갑자기 유령처럼, 침묵처럼 이 공원은 자리하고 있다. 회색빛의 도시 공간 속에 안쓰럽게 누추하고 절박하게 자리한 이 공원은 비좁고 어색하고 그만큼 불편해 보인다. 나로서는 이 공원 주변에 심어놓은 나무와 벤치, 휴식공간과 역사기념물들이 어쩐지 부수적이고 마지못해 만들어 놓은 어색함을 만난다.
이민영이 찍은 서대문독립공원은 행정구역상 서대문구 현저동 941번지에 위치해있다. 아마도 서울시공무원이나 구청직원들에게 이곳은 그 같은 추상적인 기호와 번지수로만 인식되어 있을 것이다. 그들은 행사나 구청장의 순시 때나 황급히 와 볼 것이다. 반면 주변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아파트 단지 내에 위치한 아이들 놀이터나 작은 공원보다 조금 커 보이는 공원, 그 이상이 되기는 어렵다. 서대문 독립공원은 서대문 형무소가 1987년 의왕으로 이전하면서 남은 터를, 일부 건물을 남겨 역사 교육장으로 활용하여 만든 곳이다. 그 한 켠에는 옮겨진 독립문이 자리하고 있다. 원래의 자리에서 이탈해 공원으로 이동한 독립문 역시 궁색해 보인다. 알다시피 서대문 형무소는 1907년 일제 통감부가 사법제도를 이른바 '근대적'으로 개혁하면서 세운 옥사시설이었다. 1987년까지 쓰였던 옥사의 시설은 이후 서대문 형무소역사관으로 개관하였고 더불어 독립공원의 개장으로 옛 감옥은 독립투쟁의 산실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 안의 설비들은 관람객에게 공감각적 체험을 제시하여 '일본 형사놈들의 잔혹함'과 그에 대비되는 '독립운동의 숭고함'을 새삼 추체험시킨다. 서대문 형무소를 역사관으로 단장하여 재개관하는 과정에서 이 장소의 의미는 한층 강화되어, 서대문구에서 역사학습장으로 내세우는 주요 관광-관람지의 역할을 맡게 되면서 '식민지 체험과 한 짝을 이루는 독립이라는 화두와 그를 둘러싼 사건과 기억을 기념하는 장소'(목수현)가 된 것이다.
이 공원 안에는 독립문을 비롯하여 서대문 형무소 유적과 『3.1운동 기념탑』,『순국선열 추념』등의 기념물이 들어서 있으며, 옛 서대문 형무소 건물 일부는 전시장인 역사관으로 꾸며져 독립의 역사를 기억하는 중심 장소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니까 이 공원은 근린공원이면서 동시에 민족독립의 수난사와 순국선열이 투쟁사에 관한 기억을 확인하고 담아가는 교육의 현장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이곳은 역사적 사실을 간직한 곳이자 그 역사를 집단적으로 기억하는 곳이며 기억되도록 강제하는 곳인 셈이다. 과거의 질곡과 역사적 상흔의 간절한 기억을 간직하고 부디 잊지 말자는 뜻으로 여러 기념물이 수직으로 솟아있고 시각적인 방식으로 제시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시각적인 형성물인 기념물은 보는 즉시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상징이며 그것이 공공장소에 세워지는 순간 항상적으로, 누구에게나 노출되면서 한 사회 안에서 공공의 기억을 작동하는 일련의 장치가 된다. 그러나 과연 사람들은 이 공원에 와서 그러한 기억을 떠올리고 있을까? 이민영의 사진 속 인물들은 그저 무심하게 자신의 일상을 반복해나갈 뿐이다. 그들에게 이 공원은 공원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듯 하다. 고층 건물 속에 납작하게 자리하고 앉아 파리한 지난 시간을 안쓰럽게 간직하고 있는 공원에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에 하염없이 잠겨있을까? 공적인 기억이 강요되는 곳에서 고립된 개인들은 각자의 몽상으로 그 기억의 하중을 가볍게 거둬 내면서 반복적인 일상을 다만 수행해나갈 뿐인 듯 하다. 우리들의 도시공간과 일상, 기념비와 사적 공간, 집단의 정체성을 간직하는 공공의 장소와 개별적인 존재들이 직조한 삶의 무늬들이 연속적인 대비를 이루면서 증식하는 사진이다. 나로서는 수직으로 솟은 극동아파트와 도열한 가로수, 그 아래 위치한 독립관 건물을 배경으로,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기 위해 손짓을 하고 있는 밀리터리 룩(군복바지)을 착용한 여자의 몸을 담은 풍경에서 그런 대비의 극단을 마주하고 있다. ■ 박영택
Vol.20060303a | 이민영展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