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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222_수요일_05:00pm
김창겸_김해민_올리버그림
갤러리 아트사이드 서울 종로구 관훈동 170번지 Tel. 02_725_1020 www.artside.net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지만, 현재의 의미를 알 수 없다. 현재가 이미 과거가 된 연후에 평가와 그 의미의 총체적 색채를 수여하게 된다. 다만 예술만이 현재의 의식의 지평을 엿볼 수 있는 거울이다. 인격신을 표방하며 제정을 구가 하던 그리스 시대의 미의식은 절대적인 사람의 아름다움에 있었다. 감각의 자유와 이성으로의 도취가 팽배해있던 시기에 몽마르뜨의 예술가들이 탄생했으며, 자본의 번영을 만끽했던 시기에 미국의 팝아트가 등장했다. 따라서 예술을 흔히 현재의 거울이라고 한다. 그리고 종전과 비견되는 우리만의 삶의 모습은 우리의 예술 속에서 찾을 수 있고, 그 선두에 영상매체가 자리한다. ● 김창겸, 김해민, 올리버 그림은 영상매체의 형식적 완성도를 이미 획득한 작가군으로 평가 받는다. 그러나 비단 그 형식뿐만 아니라, 우리시대가 지니는 동시대성의 이야기를 결코 잊지 않는 작가군이기도 하다. ● 플라톤은 세계를 이데아와 실재, 그리고 그림자와 같이 세 가지로 구분해 파악했다. 그리고 화이트헤드가 "현대철학은 플라톤의 주석에 불과하다"고 말했듯이, 플라톤의 구분법은 지금도 통용되는 사실이다. 김창겸은 이 세 가지 세계를 하나의 예술 속에 포용해내는 예술가이다. 가령 '반고흐에 대한 경의에 대한 경의'라는 작품은 이를 잘 뒷받침해준다. 예술에 있어서 예술가에 대한 경의는 가장 존엄할만한 이데아에 해당한다. 여기에 실체인 재료(matter)로 반고흐의 작품을 재현하며, 끝으로 그림자의 세계에 자리하는 영상을 투사한다. 이는 전세계를 아우르며 모든 계층과 특권의 구분을 떨쳐내는 보편적 감성인 반고흐라는 주제에 현재의 예술만이 구가해낼 수 있는 방법론을 선사한다. 반고흐는 신화이다. 그의 신화는 그의 삶과 그가 살았던 시대와 관련되어 태어난 복합적 결과물이다. 그리고 김창겸은 우리시대에 그 신화를 투영해본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일관되게 관통하는 본질을 그는 경의로운 감수성으로 재해석해낸다.
김해민은 우리나라 영상작업의 일세대이면서 동시에 선두에 위치한 작가이다. 그는 인간의 시지각이 지니는 경험의 허와 실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파헤치는 치밀한 작업을 제시한다. 실재의 칵테일 잔에 실재 칵테일의 영롱한 빛깔의 영상을 투사한다. 우리는 이때 칵테일에 대한 경험을 느끼게 된다. TV해머는 TV의 브라운관이 깨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다만 나중에 예술이라는 규약에 의해 실재로 깨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뿐이다. 이렇듯 그는 우리의 시지각이 실체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해주는가라는 의문을 우리에게 던져주며, 동시대의 시각문화에 대한 반성의 감응을 선사해준다. ● 올리버 그림은 '버터플라이'라는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나비와 여인, 환상의 계속되는 3중주의 향연 속에서 그는 몰입성(indulgency)의 문제를 대변해준다. 현대문화, 특히 영상문화의 단면적 특징은 바로 몰입성이다. 회화나 문학과 같은 종전의 문화의 속성은 바로 해석에 있었다. 이 해석에는 제시와 반응이라는 쌍방적 통행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영상문화에는 일방적 몰입만을 강요하는 속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올리버 그림의 영상예술은 몰입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면서 정확한 답변을 모호하게 만드는 힘을 지닌다. 즉 영상문화의 속성인 비해석을 해석의 보편성으로 끌어올리는 성과를 획득해낸다.
이번 기획은 영상매체의 형식적 즐거움뿐만 아니라, 시대의 의미를 재고하자는 취지가 그 의도라 할 수 있다. 자화상 시리즈를 통해 자기의 현재의 모습과 경의의 의미를 되새기는 김창겸의 의도는 개인적 이야기에 있지 않다. 방향성을 상실해버린 현금의 세태에서 고요한 자기관조를 잊지 말자는 것이 그의 이야기의 시작이다. 물그림자에 비추어진 자기의 모습은 한 떨기의 물방울만으로도 그 본모습이 흐트러진다. 김창겸은 영상이 갖는 현상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본연이 무엇인지 알도록 끊임없이 촉구해낸다. 김해민은 시지각의 허와 실을 드러내줌으로써 현재의 문화에 대한 비판적 수용의 의미를 깨우쳐준다. 실체의 본질과 환영의 아름다움에의 중도적 수용의지는 그가 말하려는 일관된, 우리의 나아가야할 모범이다. 올리버 그림의 철학적 영상이 주는 교훈은 바로 해석의 중대성이다. 해석하지 않는 영상은 영상물로 그치지만, 해석의 의미를 고민하면서 영상을 대할 때, 그것은 더욱 개진될 문화의 토대임을 그는 결코 잊지 않는다. ■ 이진명
Vol.20060222c | 컬러 오브 네러티브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