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VASSE:경계의 그림자

2006 대안공간 팀 프리뷰 작가지원 프로그램 02   2006_0217 ▶ 2006_0308

권성운_찬가_사진(생선, 플라스틱, 혼합재료)_120×100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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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운_김태덕

대안공간 팀 프리뷰 서울 마포구 서교동 332-1번지 B1 Tel. 02_337_7932 www.teampreview.com

두 세상이 있다. 두 세상은 서로 타협할 수 없는 경계로 나누어져 있다. 눈 덮인 남극의 크레바스(눈에 묻힌 계곡이나 빙하(氷河)의 갈라진 틈.)처럼 두 세상을 나누는 경계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나락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빠지는 순간 끝도 없는 추락으로 이끄는 이 좁은 틈이다. 그러나 이 틈은 달리 보면 감히 도달해보고자 하지 않는, 혹은 생각은 하더라도 도달할 수 없는 또 다른 세계이다. 그것은 "차안(此岸)"와 "피안(彼岸)"의 중간적 공간이다. 깊은 심연의 그림자 속에 존재하는 이 경계 속의 세상은 경계의 양 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두 세상의 교집합과 같은 세상이다. 즉, 두 세상이 만나는 곳은 두 세상을 모두 포용한다. 그러나 경계의 그림자 속에 존재하는 이 곳은 두 세상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이다. ● 그 좁은 폭의 시각적 느낌에 이미 속아버린 사람들에게 크레바스(눈에 묻힌 계곡이나 빙하(氷河)의 갈라진 틈.)는 무의미한 위험공간에 지나지 않지만, 좁은 폭의 눈속임을 벗어난 자들에게는 끝도 없는 깊이가 넓이로 다가온다. 그 좁은 폭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중력의 법칙으로부터 탈피해야 한다. 지구의 중심으로 작용하는 중력에서 벗어나는 순간, 중력의 법칙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그 순간 깊이는 곧 넓이가 된다. 그러나 중력이라는 물리적 법칙을 벗어나는 것은 인간의 상상을 넘어서는 이야기다. 그것을 벗어나는 길은 오직 지구의 중력장 밖으로 벗어나는 길밖에 없다.

권성운_think view_사진(생선, 플라스틱, 혼합재료)_150×120cm_2006
권성운_exodus_사진(생선, 플라스틱, 혼합재료)_150×80cm_2006
김태덕_let the time be free from institutions_사진(오렌지, 스테이플)_60×80cm_2006
김태덕_욕망과 대리만족 네번째 이야기-나는 살고 싶다_사진(오렌지, 스테이플)_30×40cm_2006
김태덕_욕망과 대리만족 두번째 이야기-이미지의 자살_사진(마네킹, 손 합성)_50×80cm_2006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의 법칙은 물리적인 법칙뿐이 아니다. 인간의 일상은 수많은 가치와 규칙과 법칙 속에서 움직인다. 우리가 차마 인지하지 못하는 매 순간, 우리가 무의식 중에 내리는 수많은 선택과 결정들... 이 모든 것들은 우리의 자유의지와 더불어 우리의 주변을 감싸고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제약하는 수많은 규범과 제도에 의해 정의되고 실행된다. 물리적 법칙에 이미 익숙해진 인간에게 물리적 법칙은 더 이상 구속이 아니다. 그것은 안정이다. 올라간 것은 떨어진다는 이 간단한 법칙은 그것에 구속 받는 자들에게는 예상할 수 있는 결과라는 단물을 제공한다. 마찬가지로 사회의 지상명령에 따라 학교에 다니고, 기술을 배우고, 직장을 갖고, 돈을 벌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행위는 이 법칙 따르는 자들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 인간은 본능적으로 안정을 추구한다. 변화에 대한 욕구가 큰 만큼 안정에 대한 갈망 또한 거대하다. 안정을 추구하는 인간들에게 새로운 물리적 법칙, 새로운 가치와 규범이 존재하는 이 경계 속의 세상은 존재해서도, 존재할 수도 없는 세상이다. 그 변화를 받아들이기에 규칙이 주는 달콤함이 너무도 심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계는 분명한 실체와 형상과 나름의 법칙 속에 분명히 존재하는 제3의 세상이다. 인간에게 익숙하지 않은, 익숙하기 힘들 새로운 세상, 새로운 법칙과 규범 속에 존재하는 세상에 두 사람이 있다. ● 두 사람이 경계의 그림자로 움직인다. ■ 대안공간 팀 프리뷰

Vol.20060220b | CREVASSE:경계의 그림자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