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없는 풍경

문성식展 / MOONSUNGSIC / 文聖植 / painting   2006_0217 ▶ 2006_0317

문성식_코너정원의 수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73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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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217_금요일_05:30pm

키미아트 서울 종로구 평창동 479-2번지 Tel. 02_394_6411 www.kimiart.net

아해(兒孩)가 질주시킨 두 가지 풍경에 관한 소고(小考) ● 문성식의 작업에는 두 가지 풍경(기억의 풍경, 박제된 풍경)이 질주한다. 전통적으로 풍경은 관조의 대상이었다. 그러기에 풍경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누군가가 봐주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들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문성식의 작업 속에서 질주한다. 낯설다. (강선주와 김장언은 이러한 문성식의 작업이 '초현실적'이라고 했다.) 사실, 문성식이 담고 있는 풍경의 대상은 자신의 일상적 경험(어릴 적 기억,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주민들, 학교 앞 공원과 중정)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묘사는 세밀하다. 그렇다 해도 여전히 낯설다. 도대체 兒孩(문성식)는 자신의 삶에 이미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풍경을 무심히 관조하지 못하고 왜 저리도 질주하게 하는 것일까.

문성식_직사각형정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324cm_2004
문성식_초원을 떠나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92cm_2005

兒孩가 第一의 風景에게 질주하라고 하오 : 기억의 풍경 ● 兒孩가 본 '第一의風景(기억의 풍경)'은 기억의 배설물로 그려진 것이다. 배설물은 그것의 재료가 되었던 것과 상이하다. 왜냐하면, 다양한 대상들이 상호 융합하고 반응하면서 변이되어 새롭게 생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삶의 저변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들은 그 자체로 드러나지 않고 「기억의 드로잉」으로 배설된다. 서로 다른 옷을 입고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는 「3형제」,「집」에 존재하는 각자의 구역에서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 할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찍고「봄날은 간다 간다 간다」, 딸 부자집「허만복씨댁 득남」, 잡초도, 과부도, 고양이도, 개도 자신의 할 일을 하고 있는「과부의 집」, 맹인견 한 마리를 졸졸 따라다니고 길을 걷고 있는「맹인 3총사」, 새집 아래에 핀 아름다운「새똥 먹은 잡초」. 이렇듯 문성식이 뿜어내는 기억의 배설물들은 어릴 적 가족이야기에서부터, 동네 주민들 이야기, 그리고 성장 후 이야기까지 그 진폭은 넓고 다양하다. ● 「기억의 드로잉」에 등장하는 도상들은 그것이 인간이건, 동물이건, 식물이건, 자신의 삶을 최적화시키기 위해 바쁘다. 「기억의 드로잉」에 등장하는 사소한 하나하나가 모두 자신의 욕망에 따라 존재한다. 그리고 이 와중에도 끊임없이 주변의 개별적 단자들과 관계를 맺는다. 때로는 상호간에 주고받기도 하고, 때로는 먹고 먹히는 관계가 되면서 말이다. 개별적 단자들이 욕망을 내재하고 삶의 최적화를 추구하는 모습. 그것이 바로 질주하고 있는 '第一風景(기억의 풍경)'이다.

문성식_맹인 3총사_종이에 연필_75×55cm_2002
문성식_봄날은 간다 간다 간다_종이에 연필_27×18cm_2002
문성식_미친 과부_종이에 연필_53×38cm_2002

兒孩가 第二의 風景에게 질주하라고 하오 : 박제된 풍경 ● 기억의 풍경은 '第二風景(박제된 풍경)'을 이끌어내고 있다. 드로잉에서 페인팅으로 변한 '第二風景(박제된 풍경)'은 도시 안에서 인간과 다른 생물들의 관계를 담는다. 「직사각형 정원」에는 어찌하여 직사각형으로 잘려졌는지 알 수 없는(정원 이외의 것은 모두 삭제되어 있다.) 흙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의지가 있으며, 형태도 색도 다른 각양각색의 나무가 있으며, 각자의 자리에서 곱게 핀 잡초가 있으며, 한 마리의 까치는 흙에서 먹이를 찾고 있으며, 다른 까치는 하늘을 유유자적 날고 있으며, 까치에게 밥이 될 법한 곤충들이 있다. 있을 것은 다 있어 보이는 이 정원은 일견 평화롭게 보인다. 그러나 '第一風景(기억의 풍경)'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주워진 직사각형의 인공적 공간에도 이곳의 환경에 적응해가면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맺는 개별자들의 관계가 존재한다. ● 보기에는 좋으나 처절한 죽음이 내재되어 있는 박제. 이것은 인공적 박제의 세계이다. 일반적 시각으로 본다면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도 '第二風景(박제된 풍경)'에 놓여 있다. 현실보다 예쁘고 플라스틱 같은 인공적인 정원을 회화적 공간에 구축하여 다른 각도로 바라보기. 그것이 바로 질주하고 있는 '第二風景(박제된 풍경)'이다. ● 질주하는 두 풍경을 보면서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질문 하나. "원래 향나무는 어떻게 생겼지?" 그 답은 향나무를 깎기 전에 마주한 정원사만이 알지 않을까. ■ 이대범

Vol.20060219c | 문성식展 / MOONSUNGSIC / 文聖植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