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30624a | 이경수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6_0215_수요일_06:00pm
갤러리 라메르 서울 종로구 인사동 194번지 홍익빌딩 Tel. 02_730_5454 www.gallerylamer.com
작업노트 ● 해수욕장 A bathing beach_일탈을 꿈꾸는 사람에게 바다만큼 매력적인 대상이 또 어디 있을까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찾은 해수욕장은 언제나 동경하던 바다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 때 우린 그 바다를 다 가질 만큼 시간이 충분했다. 바다를 만지고 바다를 생각하고 바다를 느꼈다. 어른이 된 지금은 감히 여름의 해수욕장를 바다라고 부르기를 거부하게 된다. ● 해수욕장에 간 그들은 바쁘다. 일 년을 꼬박 기다려 얻은 시간이기에 지체할 틈이 없다. 서둘러 날짜잡고 빨리빨리 놀고 부지런히 돌아가야 한다. 그들은 '바다'를 제대로 볼 겨를도 없다. 이렇게 바쁜 그들을 담아내는 내 카메라는 고장 난 테이프에서 나오는 노래 가락처럼 느려 터졌다.. ● 6초! ● 6초 동안에도 그들은 끝없이 움직인다. 미끈한 몸매 자랑도 해야 하고 즐거운 추억 만들어 방학숙제도 해치워야하고 빨리 놀아야 되는데 흩어진 일행을 찾으려니 자꾸만 고개가 돌아간다. 그저 멈춤 것이라고는 주인 없는 신발과 싫증나서 던져 버린 비치볼뿐이다. 그것들만 진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느린 카메라 속으로 들어온 바쁜 그들이 만들어 내는 풍경은 많은 것을 보았어도 깨어나서 생각해 보면 무엇 하나 정확히 기억할 수 없는 한바탕 요란한 꿈속 같다. 카메라의 작은 구멍을 통해 천천히 그 꿈을 들여다본다.
해수욕장-카메라의 작은 구멍을 통해 천천히 그 꿈을 들여다 보다. ● 흔해 보이는 듯 하면서도 조금이라도 시선을 기울이게 되면 뭔가 어색하고, 특이한 저 바닷가의 풍경이 펼쳐져 있다. 작열하는 여름 한 낮의 바닷가 풍경이야 익숙할 만큼 익숙한 터이라 색다른 느낌의 바닷가 풍경이 싫지도 좋지도 않았지만, 굳이 핀홀 카메라로 힘들게 이런 풍경들을 담아낸 이유가 못내 궁금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핀홀 카메라의 저 독특한 이미지들이 새삼 신기하기만 했다. 작가의 사진들을 보며 처음에 든 생각은 대체로 이런 것들이었다. ● 우리에게는 여느 평범한 바닷가의 풍경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작가에게는 이런 저런 추억이 서려있는 바닷가, 정확히는 대천의 한 해수욕장에서 2004년도에 찍은 이미지들이라고 한다. 고 1때 처음 보았던 바닷가의 이미지가 작가에게 어떤 것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적어도 지금의 잡다하고 왁자지껄한 느낌을 던져주는 여름 한 철의 해수욕장의 이미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고향에서 가까운 거리였지만 자주 가보지 못했던, 그래서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처음 가보게 되었던 색다른 공간이었고, 그런 이유로 작가 개인에게는 일상의 일탈의 기회이자 무한한 동경의 대상이었던 모양이다. 물론 그만큼이나 그 첫 느낌은 강렬한 느낌과 함께 원초적인 어떤 인상을 던져주기에 충분했던 공간이었던 것 같다. 그 느낌에 대한 향수가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지속되었던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다시 찾은 해수욕장의 시끌벅적한 풍경은 작가가 꿈꾸었던 그런 바닷가의 풍경은 아니었던 것 같고, 그런 이유로 조금은 다름 방식으로 이미지들의 풍경들을 담아내고자 한 것이 이번 사진전의 배경이라면 배경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들은 우리에게 어떤 스토리를 이야기해주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전하지 못하는데 아무래도 이 모든 풍경을 담아내는'그 조금은 다른 방식에 관한 것'들이 더 많은 비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듯싶다. 핀홀 카메라로 이들 풍경들을 담아내려 했던 그 이유 말이다.
이번 사진전들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여름 한철 해수욕장의 왁자지껄하고 시끌벅적한, 그래서 일상적인 느낌으로 와 닿아 있는 생생하기만 한 피서지의 바닷가 풍경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간혹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인물들의 움직임들이 긴 노출 때문에 흐릿하게 붙잡혀 있기도 하지만 원근감이 분명하고, 특히 화면의 원경에서 보일 것만 같은 많은 사람들의 움직임들이 정돈되어 있어 번잡하지 않은 느낌을 준다. 더구나 화면의 중심부는 선명하고 가장자리는 군데군데 보이는 비네팅(vignetting) 효과로 인해 풍경을 둘러싼 외곽들이 전체적으로 어둡거나 짙푸른 색감을 보여준다. 특히 컬러리버설 필름을 네거티브 방식으로 현상한 덕택에 유난히 짙푸른 여름 하늘의 색감이 인상적이다. 이런 요소들로 인해 전체적으로 낯설고 특이한 이미지라는 생각을 갖게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무척이나 몽환적인 느낌마저 던져준다. 때로는 정지된 사물들의 건조한 풍경들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움직임에 민감한 핀홀 카메라의 특성으로 인해 사람들의 흐릿한 움직임과 대조되는 해수욕장의 풍경들, 이를테면 비치파라솔이나 모래사장에 널 부러져 있는 물놀이 용품들 같은 정적인 사물들이 시선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느린 카메라 속으로 들어온 이들 정돈된 풍경들이 때로는 몽환적인 느낌들을 만들어 내면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여름 해변의 번잡한 풍경들을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시키고 있는 것이겠고, 작가에게는 자신이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는 바다의 그 넓고 휴식 같은 느낌의 이미지들을 만들어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어떤 이미지들이든 간에 이들 풍경들은 여름 해변이 주는 일상적인 느낌과는 거리가 있다는 면에서 모호한 이미지들이라 할 수 있다. 작가가 핀홀 카메라의 작은 구멍을 통해 보려했던 것들도 아마도 이런 애매한 이미지, 현실의 정확한 이미지나 그 풍경이라기보다는 이제는 잃어버린 바다에 대한 어떤 기억이거나, 혹은 그것들에 대한 어떤 욕망이기도 한 그런 것들이 아니었나 싶다. 이런 면에서 이번 사진전 역시 작가의 이전 작업인 아버지와 과수원을 핀홀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과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아버지라는 특별하기만 한 피사체를 다루었던 전작의 느낌이 더욱 강렬하고 집약적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작업의 지평이 더욱 확대되었고 작가의 작업 세계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는 면에서 이번 사진전 역시 분명 주목할 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사실 정확한 의미에서 핀홀 카메라로 피사체를 정확히 찍어내기에는 여러 가지 기계적인 무리수가 따른다. 렌즈가 없는 기계적인 특성으로 인해 핀홀 카메라는 뷰파인더 없이 대상과 관계해야 하고, 순간의 어떤 정황을 포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핀홀 카메라는 작가의 말처럼 피사체와의 어떤 교감을 더 가능하게 하는 매체라고 볼 수 있다. 남다른 기억으로 자리했던 아버지의 모습이나 그 기억이 서려 있는 과수원의 이미지도 그렇고 원초적인 느낌으로 다가왔을 만큼의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바다의 이미지는 그렇기에 작가에게 있어 단순히 카메라로 포착하고 담아내야 하는 대상 이상이었을 것이고 작가는 이를 위해 핀홀 카메라를 매개로 하여 대상과의 긴 교감을 하려 했던 것 같다. 물론 이러한 교감의 결과가 작가가 원했던, 혹은 그렇게 작가가 보았고, 예측했던 것들과는 거리가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이들 이미지는 대상에 대한 작가의 어떤 해석이나 사유를 담고 있다기보다는 그 태도나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면 직접적인 현실의 재현과는 거리가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에게 핀홀 카메라는 대상에 대한 작가의 어떤 지향이나 욕망을 드러내는데 더 근접한 매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말들이 좀 애매할 수는 있겠다. 왜냐면 핀홀 카메라 역시 대상을 어떤 형태로든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핀홀 카메라가 우연하게 대상을 담아내는 방식은 작가의 사유 속에서, 코드화 된 이미지로 현실을 재단하는 것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 이번 사진전에서 보게 되는 그 애매하기만 한 바닷가의 풍경 역시 작가가 특정한 시점에서 보았던 해수욕장의 풍경과 거리가 있는 것들일 뿐만 아니라 오래된 기억으로 남아있던 최초의 바닷가의 이미지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작가가 우연한 방식이긴 하지만, 다른 식으로 담아내려 했던 모호한 이미지들에 가까운 것이고, 작가의 특정한 시선에 의해 포착한 이미지가 아니라 느린 방식으로나마 길게 교감하려 했던 이미지에 근접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을 하자면 작가의 시선에 의해 포착된 것들이 아니라 빛이, 핀 홀로 들어와 우연히 만들어낸 이미지들인 것이다. 작가는 이런 '눈먼 기계'를 들고 그저 그 기계가 매개하는 것들과 색다른 방식으로 관계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작가가 그렇게 카메라를 단순히 들고 작동시켰다고만 말할 수도 없는데, 왜냐면 이 카메라가 매개시키는 대상들이 작가의 어떤 오래된 기억의 편린들과 어떤 형태로든 관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작가는 어떤 식으로든 이런 기억들을 의식적으로 그려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결과는 작가의 예상과 어느 정도는 비슷할 수는 있겠지만 분명 같지 않은 것들이고, 직접적인 현실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 의식적으로 만들어낸 이미지들하고도 다른 것들이다. 대상을 담아내고 포착한다는 말 대신에 대상과 어떤 관계를 맺으려 함이라든가 대상에 대한 작가의 어떤 욕망을 근접하려 함이라든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느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순간을 포착하는 것은 현실의 어떤 순간을 응고시키는 것이겠고, 뷰파인더를 통해 바라본 세상은 어떤 면에서는 작가의 사유나 시선에 의해 재단되고 조각난 세상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사진기를 통해 현실의 어떤 단면을, 그 순간을 바라보고 조작하고 기록 해왔다. 이런 방식들이 요즘 우리가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익숙한 모습일 것이다. 이번 사진전은 이와는 좀 다른 느낌인데 아무래도 눈먼 기계라는 사진의 오래된 속성을 핀홀 카메라가 유감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인 듯싶다. 눈멀었기 때문에 대상을 향한, 명민하고 예리한 시각이라기보다는 사진이라는 기계적인 방식을 통해 대상과 어떤 특정한 관계를 맺게 되거나(교감하거나) 혹은 이를 통해 대상에 의한 자기 자신을 다시 보게 되는 그런 방식 말이다. 그의 핀홀 카메라는 이렇듯 어떤 시각의 장 속에 사로잡혀 있는 작가(의 현존, 혹은 그 상태)를 다시금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 과정은 작가의 어떤 정체성을 드러낸다기보다는 대상과의 특정한 관계에 있는 작가의 현존의 상태를 드러내는데, 그 상태가 대상에 대한 작가의 욕망인 이유는 언제나 완전히 충족되지 못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 욕망의 관계는 차라리 어떤 의미를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대상과의 특정한 관계맺음 속에서 계속해서 지연되는 흔적이나 얼룩들에 가까운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이 이른바 지표로서의 사진적 이미지에 대한 것들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대목들이다. 이번 사진전에서 볼 수 있는 것들도 그런 것들이다. 다시 말해 작가가 포착하고 담고 싶어 했던 바다의 어떤 이미지가 아니라, 작가의 기억이나 욕망 속에서 담고 싶어 했던, 그러나 정확히 담아낼 수 없었던 그런 해수욕장의 이미지였고 이를 위해 작가는 핀홀 카메라를 들고 여름 바닷가로 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 이미지들을 보면서 작가가 원했음직한 바다의 어떤 이미지를 다만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바다나 해수욕장이라는 어떤 특정한 시점의 공간에 대한 풍경이 아니라 그 풍경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바다에 대한 작가의 어떤 기억이나 욕망에 가까운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미지가 정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현실과 비슷한 듯 하면서도 몽환적인 것은 우선은 핀홀 카메라나 독특한 인화 방식이라는 매체 자체의 속성에서 기인하는 것도 있겠지만 작가가 이들 매체의 속성이나 결과를 어느 정도 감수하면서까지 드러내려 했던 이런 특별했던 이유들이 한 몫 했던 것 같다. 이런 이유들이 얼마간은 의도적이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런 의도를 직접적으로 실현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바다에 대한 작가 자신의 그 내밀한 기억이나 욕망이 정확히 담겨있다고 볼 수도 없다. 왜냐면 이런 방식은 현실을 정확히 재현하는 것과 거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단지 대상에 대한 특정한 관계나 태도만을 비껴가듯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런 것들의 편린들을 얼룩처럼 부분부분 묻혀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작가가 담아내길 원했던 바다의 이미지는 계속해서 지연이 되었던 것이고 다른 방식으로 지속되었던 것이다. 물론 우연하게 담겨지기도 하겠지만 충족되지 않는 욕망이라는 단서를 다는 한에서만 그렇고, 이런 면에서 이들 이미지는 언제나 부정확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만큼 모호하면서 애매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그것들이 몽환적인 이미지들이어서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는 것은 이런 메커니즘에 비하면 차라리 부수적인 느낌이었다는 생각이다.
'카메라의 작은 구멍을 통해 천천히 그 꿈을 들여다본다.'유난히 곱씹어보게 되는 작가의 말이다. 여기서 잠시 그가 뷰파인더도, 셔터장치도, 렌즈도 없는 핀홀 카메라를 들고 한 여름 작열하는 해변의 풍경을 담기 위해 바닷가로 갔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부산한 피서객들의 요란스러운 움직임들은 그저 잡힐 듯 스쳐갈 뿐인 핀홀 카메라를 든 작가에게 여름 한철의 해수욕장이 그리는 왁자지껄한 이미지들은 사실 처음부터 쉽게 담아낼 수 있는 풍경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그 느린 카메라를 통해 들여다보길 원했던, 한바탕 요란한 꿈과도 같은 그 바다의 풍경은 그 시점에서 주어진 현실의 바다풍경이 아니라 작가가 마음속으로 그리고자 했던, 작가 자신의 바다에 대한 어떤 꿈에 더 가까운 것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현실에서는 그 어떤 것도 아닌, 심지어 작가의 마음속에서 그리고자 했던 그 어떤 바다의 풍경과도 닮아있지 않은, 그러나 단지 작가가 드러내고자 했던 바다라는 내면의 기억에 조금 더 가깝게 근접해 있을 뿐인 그런 꿈들, 이미지들 말이다. ■ 민병직
Vol.20060215a | 이경수展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