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갤러리 선컨템포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6_0215_수요일_05:00pm
책임기획_갤러리 선컨템포러리 월요일 휴관
갤러리 선컨템포러리 서울 종로구 소격동 66번지 Tel. 02_720_5789 www.suncontemporary.com
회화의 재해석_포토드로잉 & 포토페인팅 ● 오늘날 예술가들은 시각예술의 경계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 특정 장르에 자신의 작품을 귀속시키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그림과 사진 이미지를 결합시키고, 컴퓨터로 이미지에 변화를 주고, 오브제를 활용하고, 비디오를 응용한다. 그들에겐 결과가 어떤 장르인가는 중요치 않다. 그리고 그들은 종종 말한다. "회화는 죽었다"고. 물론 사진과 컴퓨터 이미지 가공 기술이 현대미술에 도입되면서 회화가 무대의 배경으로 뒷걸음 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회화는 결코 죽지 않았다. 다만 재해석될 뿐이다. 20세기 초 카메라를 이용해 회화의 붓질을 재현해보고자 했던 알프레드 슈티글리츠 (Alfred Stieglitz)의 열정을 떠올리게 하는 윤영화의 "포토드로잉 & 포토페인팅" 전시는 사진 속에 그대로 살아 있는 회화의 흔적 그리고 그 힘을 보여준다. ● 윤영화의 신작은 "사진의 재현기법과 회화의 표현 욕구"를 한 화면에 담아내기 위해, 이미지 자체보다는 빛과 이미지 사이의 간섭현상, 이미지를 인지하는 방식에 더 초점을 맞춘다. 카메라를 이용해 구체적인 대상을 커다란 붓이 지나가며 형상을 지워버린 듯 해체한 뒤, 그 위에 얇은 철선 그리드를 올려 착시를 배가 시킨다. 카메라의 즉흥성과 붓의 유연성을 바탕으로 순간을 포착하는 대신 빛의 흐름을 그리고 있는 윤영화의 작품은 그래서 전통적인 의미의 사진과 회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포토드로잉 그것 자체로서 하나의 새로운 예술형식인 셈이다.
정확하게 구체적인 대상을 포착하는 사진의 재현 능력. 즉 순간을 잡아내는 속성 대신, 윤영화는 움직이는 대상을 찍거나, 반대로 정지된 대상 속에 숨겨진 운동 에너지를 카메라의 움직임을 통해 발견해 나간다. 시간의 경과를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는 빛 줄기의 흐름은 카메라의 직선 운동과 곡선 운동이 만들어 낸 잔영으로 화면에 고착된다. 장노출과 소프트 포커스를 이용해 이미지의 움직임을 담아낸다. 화선지 위에 떨어진 굵은 붓의 자유로움 번짐처럼 윤곽이 흐릿해진 대상은 시간의 흐름을 상징한다. 이처럼 카메라의 운동과 빛의 잔영이 만들어 낸 이미지를 작가는 "포토-드로잉: 포토-페인팅"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것은 구체성과 추상성,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聖과 俗의 이원적 세계를 하나로 결합시키기는 일종의 화학작용으로서 윤영화의 작업을 진화시킨다.
빛을 이용해 현실을 그려보고자 했던 욕망은 윤영화의 포토페인팅 작업의 직접적인 동인이다. 그는 이번 신작을 통해 예술 창작의 기본은 경계를 무시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다. 현대 사회가 만들어 놓은 보이지 않는 경계, 주체와 피사체 사이의 경계, 과거와 현재, 그리고 회화와 사진 사이의 경계는 중요치 않다. 그것이 사진이었건 회화였건 그것이 만들어내는 미학적 가치와 숭고함이 관객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그것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다. 인상주의의 화가들이 빛을 그리기 위해 물감을 사용했다면, 윤영화는 자신의 내면세계와 현실에 색깔을 입히고 표현하기 위해 빛을 이용한다. 즉 빛이 안료인 셈이다. ● 윤영화는 피사체의 표면이나 망막에 맺힌 이미지자체 보다 이 두 영역 사이에서 일어나는 광학적, 심리적 현상에 주목한다. 거리풍경, 돛단배, 그리고 심지어 바다 속 풍경에 이르기까지 카메라가 잡아 내는 피사체의 구체성과는 다르게 화면 전체가 발산하는 기운은 추상적이고 명상적이다. 이는 윤영화가 물감이 아닌 빛으로 이미지를 완성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빛이란 "존재의 숨결" 내지는 "존재의 흔적"이다. 최초의 만물에게 생을 부여한 빛의 숭고함이 작가의 몸짓, 피사체의 몸짓을 하나로 이어준다.
인공조명을 촬영한 윤영화의 작품에는 사람의 흔적이 없다. 배경은 지워지고 검은 공간 위에 부유하는 빛의 잔영만이 남았다. 작가는 현실을 순수한 추상으로 바꾸어 버린다. 즉 현실의 사실적인 디테일을 순수한 회화적인 관점으로만 보지 않고 디테일을 볼 수 있게 하는 빛 자체를 움직이는 각도에서 바라본 것이다. 이를 통해 가장 구체적인 대상 속에서 가장 추상적인 이미지가 태어난다.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한 파편을 쫓아가는 대신 그는 빛을 일종의 얼어붙은 원형으로 바라보고, 거기에 물리적인 질량과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하나의 역설적 사실을 발견한다. 이미지는 빛이고, 빛은 곧 우리의 주관적인 인지작용이며, 이것이 바로 숭고함을 바라볼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라는 사실이다. ● 작가가 다루고 있는 미디어가 어떤 것인가 보다는 이를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중요한 시대다. 그래서 서두에 이야기한 "회화의 재해석"은 "회화의 죽음"이 아닌 "회화의 확장"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윤영화는 현실을 담아 내기 위해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기 위하여 현실 속에 숨어 있는 빛과 그로부터 비롯된 형상, 색상을 이용한다. 심지어 붓 대신 카메라를 들고 물감대신 새로운 빛을 찾기 위해 바다속 깊은 곳까지 들어가길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까? 윤영화의 이름 앞에 "사진가"라는 말보다는 "화가"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 이대형
Vol.20060213b | 윤영화展 / YOONYOUNGHWA / 尹永華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