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 경계

손봉채展 / SONBONGCHAE / 孫烽彩 / painting.sculpture   2006_0208 ▶ 2006_0227

손봉채_잃어버린 시간, 경계_혼합재료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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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208_수요일_06:00pm

갤러리 쌈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38번지 쌈지길 내 아랫길 Tel. 02_736_0088 www.ssamziegil.co.kr

시간의 간극(間隙)을 넘어선 현재의 풍경 ● 여러 겹의 투명 아크릴 위에 흑백 사진이미지가 쌓여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내는 손봉채의 신작 시리즈는 존 버거(John Berger)의 "글로 쓴 사진 (photocopies)"의 첫 장에 보여지는 한 장의 흑백 사진을 떠올리게 한다. 아마 핀홀(pinhole) 카메라로 촬영 한 것으로 추측되는 그 흑백사진은 화면의 중앙에 서있는 피사체인 두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지기 보다는 뒷배경의 검은 자두나무에 맞춰져 있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역광과 화면 전체가 심하게 흔들린 듯한 흐릿한 이미지는 아무런 기술적 조작 없이도 "처얼컥"하고 천천히 셔터가 눌러지는 몇 분 동안 카메라 앞에 존재했던 피사체의 과거와 현재 사이의 간극을 의미심장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손봉채_잃어버린 시간, 경계_혼합재료_2006
손봉채_잃어버린 시간, 경계_혼합재료_2006
손봉채_잃어버린 시간, 경계_혼합재료_2006

버거(Berger)는 정신은 육체의 시간과 구별되는 또 다른 시간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다고 말한다. 손봉채는 육체의 시간-물리적인 시간-을 거쳐 이룩된 특정 장소의 현재의 모습을 통해 정신의 시간에 집적된 역사의 기억을 불러낸다. 작가는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쳐 근 현대에 이르기까지 주로 남도 지역의 특정 사건, 사고가 일어났던 장소를 돌며 그 역사적 장소의 현재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후 그 이미지들을 여러 장의 투명 아크릴 위에 전사(傳寫)시켜 몇 겹의 레이어를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재이미지화 한다. 이렇게 완성된 손봉채의 입체 풍경은 보는 시점, 시각, 빛의 양과 방향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보이는데 이는 마치 수묵의 농담과 공기원근법으로 표현된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이것은 또한 사진/설치와 동양화적 어법이라는 다소 상이한 요소들이 어울려 만들어지는 조형언어로 손봉채가 기존의 기계적 설치 작업과 그림자 작업 등의 과정을 거쳐 시도해 온 동서양의 조형성의 결합으로 볼 수 있다.

손봉채_잃어버린 시간, 경계_혼합재료_2006
손봉채_잃어버린 시간, 경계_혼합재료_2006
손봉채_잃어버린 시간, 경계_혼합재료_2006

손봉채가 흑백사진으로 담은 한국의 근 현대사를 관통하며 남도가 겪은 그 지난한 역사 속 장소의 현재 모습은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의 간극만큼이나 생경하다. 평범한 시골 마을길이 된 6.25당시 주민 학살이 자행되던 교회가 있었던 영광 어느 마을의 오솔길, 지금은 고즈넉한 바람만 머물다가는 6.25때 죽창으로 주민들이 학살당했던 담양의 대나무 숲, 등산코스가 된 빨치산의 근거지였던 지리산, 그리고 잘 가꾸어진 가로수 길이 된 광주시내 기독교 병원으로 가는 길은 5.18 민주항쟁 당시 무고한 시민, 학생들이 생의 기로에서 달려갔던 길이었다. 또한 무심한 일상의 풍경으로 보이는 지하철에서의 광경은 멀지 않은 과거에 일어났던 대구 지하철 참사 현장의 오늘의 모습이다.

손봉채_잃어버린 시간, 경계_혼합재료_2006
손봉채_잃어버린 시간, 경계_혼합재료_2006
손봉채_잃어버린 시간, 경계_혼합재료_2006

폴 오스터(Paul Auster)는 과거의 어느 사건은 이미지와 기억의 집합체로 존재한다고 한다. 스냅사진과도 같은 평범한 풍경사진이 바탕이 되어 만들어진(fabricated) 손봉채의 풍경들은 안개에 쌓인 듯, 흐릿한 시간의 경계에서 현존하는 장소와 그 장소에 얽힌 기억 사이를 흐리며 풍경 밖의 감상자를 화면 안으로 끌어들이는 제3의 풍경을 보여준다. ■ 양옥금

Vol.20060208b | 손봉채展 / SONBONGCHAE / 孫烽彩 / painting.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