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의 다양성

세종동문미술제展   2006_0208 ▶ 2006_0214

여섯 번째 세종동문미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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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208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_57학번부터 01학번까지 99명● 조형1부_이견_황정자_김숙일_서양순_박순흔_오순식_박 순_유명애_오옥자_유영옥_박상미_서정완_우혜원_임현자_장송희_김용숙_조경자_홍승욱_장순현_김혜숙_이호임_김은희_김영지_곽정명_한숙희_김혜옥_배현미_임순팔_송명희_조 환_최수현_김성근_김승관_고영인_이희자_신영진_정태영_선호락_이종열_정영진_이관수_권병호_정도용_박제덕_권일순_이정희_정덕원_장 미_정연화_정태균_이정은_황종연_권경엽 ● 조형2부_조영실_김부자_심경자_김창희_이명선_유재숙_최혜숙_박혜숙_권숙자_이문표_김나야_홍은숙_김순희_황인희_양태숙_김인섭_박두리_금동원_김혜순_박인희_김경화_김낙일_안호균_이희현_곽경화_김영종_채주희_최종미_한경원_이보경_오진순_최세경_박지민_정천우_고수정_장석존_오영숙_원세유 ● 조형3부_김민정_김창겸_정명국_장종오_정재호_김나래 _임운규_장형수

주최_세종대학교 회화과 동문회

세종문화회관 서울 종로구 세종로 81-3번지 Tel. 02_399_1111 www.sejongpac.or.kr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온 이들이 모인다. 100여명의 인원이 모여서 하는 일은 '전시(展示)'라고 불리는 것이다. ● 각자의 그림을 들고 와서 한 데 모여 전시를 한다. 그러고는 다시 거기에 '동문(同門)'이라는 타이틀을 건다. 이 타이틀이 한국 사회에서는 너무나 중요하다고 하길래 이 땅에 사는 이들은 대부분 타이틀 하나 이상씩 가지는 삶을 당연히 여긴다.

김나래_한국인과 환국인의 유전자_5×5×160cm_2003
김낙일_APPLE-060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김부자_과수원_53×53cm

그 중에서도 지금 얘기하려는 (同)門을 소유한 이들은 世宗이라는 門을 공통사항으로 두고 있다. 世宗이라는 이름 그 자체는 우리들(민족)에게 매우 낯익고 보편적이기까지 하다. 그만큼 世宗이라는 이름을 가슴에 품고 있기 때문이리라. 물론 世宗을 직접적으로 달고 있는 우리들조차 일부러 떠올리기 전에는 世宗의 업적을 의식하지는 않는데 꼭 이런 것처럼 同門들도 그 이름을 걸고 스스로 무언가를 하기 전까진 同門들간의 연대감 형성이 저절로 되지 않는다. 이번의 전시도 그런 차원이리라.

김성근_The Wall_90.9×72.7cm
김숙일_오랜 세월을..._45.5×60.6cm

世宗이라는 (同)門을 통해 학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56년도부터이다. 초창기에는 '수도여자사범대학'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으나 1979년도에 남녀공학으로 변신하여 世宗의 이름을 달게 되었다. 世宗의 門을 통해 '美術'이란 것을 배우고 나간 이들은 1,700여명에 이른다. 이들은 초중등학교 교사(초창기에는 사범대학)로 거듭나 예술교육으로서 건강한 시민들을 양성해왔다. 졸업생들은 전국 각지에 고루 퍼져 그들의 소명을 다하는 데 열심이었고, 그 외에도 창작가의 역할로서, 사회인으로서, 미술계와 사회에 이바지해오고 있다. 물론 '이바지'만 한 게 아니라 이 땅의 아픔을 같이 해오기도 했다. 설립 초기에 졸업하신 동문님들은 일정시대에 성장기를 보내며 자랐으며 조직의 허리를 맡고 있는 사십대 중후반의 세대들은 어두운 정치현실과 맞서야 했다. 정치현실은 왜곡된 사학(私學)의 면모와 맞물려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어 한 때 世宗의 모습들이 공중파에 자주 나가곤 했다. 게다가 근래의 졸업생들에겐 사회의 첫 인상이 안긴 어려운 경제현실이 그들의 목을 조이기도 한다. 그래도 예술가라면 당연히 맞닥뜨려야 할 가벼운 장애물이라 여기고 묵묵히 받아들였다. 물론 '묵묵함'만이 해답은 아닐 것이며 선배가 후배들에게 남길 유산으로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김창겸_세상에 남을 이를 위한 기도_비디오 영상_00:11:00
박순_미산면 읍내의 감동_24.2×41cm

同門이란 집합은 하나의 유기체가 아닐까! 유기체는 각 단위원소의 작용이 다른 단위에게도 서로 영향을 끼친다. 그 유기체의 매커니즘은 매우 복잡하지만 균일하게 움직인다. 때문에 정작 유기체 본인은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 매커니즘의 존재와 가치를 쉬이 깨닫지 못한다. ● 이런 점에서 同門이 유기체의 매커니즘을 닮는다면 매우 다행이다. 왜냐하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풀 수 있기 때문이다.

서양순_장미의 추억_60.6×72.7cm
신영진_누드 2005003_종이에 콘테_37×36cm
안호균_金漆人物_종이에 수묵담채와 니금_69×69cm_2006

이번 2월에 世宗의 門을 통해 나온 이들 중 99명을 2월8일에 모았다. ● 불경기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평상시 제작한 작품들을 가지고 성의들을 모아보기로 한 것에 주목해주길 바란다. (성의가 극복할 수 없는 곤란함들도 얼마 목격되었는데 예술을 전공한 이들에게 경제적 어려움이 얼마나 큰 짐인가!!) ● 世宗은 과거 '수도여자사범대학'의 이름을 가지고 있던 시절부터 형상성이 매우 확실한 작업 형태를 유지해 왔었다. (서양회화의)고전주의적 사실주의로 불리는 회화양식을 오랜 기간 닦아왔고 이들의 범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동문님들의 작품이 꽤나 많다. 이 동문님들의 그림을 1부에 모아놓았다. ● 그렇다고 1부에서 개개인의 특별한 감성을 발견 할 수 없을 거라 단정짓지 말기 바란다. 많은 세월이 담긴 술만큼이나 자기 색을 열심히 만들어 온 분들이다.

우혜원_수국곁에_캔버스에 유채_45.5×53
유명애_평화_캔버스에 유채_10호
유영옥_그 쓸쓸함에 대하여..._캔버스에 유채_15호

1부의 세월이 길었던 世宗은 재현능력만으로 승부하는 것이 현명치 못하다는 점을 짐작했다. ● 짐작은 고민으로, 혹은 고통으로 발전하였고 이어서 결과물들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타 일부대학의 경우처럼 외국의 양식이나 사조가 곧바로 수입되는 부작용이 없었다는 점은 스스로 평가해볼 만하다.

장석존_접(接)_163×122cm
장형수_Still_6mm 디지털비디오 영상_00:11:34
정명국_따스한 외출_44×75cm

2부의 구성은 크게 형상의 변형을 통해 시각을 전환해보려는 노력과 회화의 원천적인 요소들에 주목하고 이를 가지고 구성해보려는 의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 그래도 1부와 2부를 꿰뚫고 있는 긴 선이 있는데 화면의 완성도를 대체로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봇을 들고 그리는 행위'라는 사항이 1, 2부 간에 공유되고 있는데다 1부의 깊은 그림자가 아닌가싶다. ● 1부에서 2부로 나아가게 했던 의지와 시각은 3부로 나아갔다.

정태영_삶-오후_캔버스에 유채_97×162.2cm
조환_韻(운)_110×110cm
황정자_동백꽃_캔버스에 유채_50×65.1cm

'붓으로 그리는 행위'까지 벗어나고자 함은 현시대에서는 더 이상 이슈거리도 되지 못하지만 世宗에서는 야아깐 지체된 듯 싶다. 그러나 좀 지체됐을 뿐이지 결코 늦었다고 할 순 없다. 이미 왕성한 소화력으로 다양한 매체들을 다루는 동문들의 숫자가 충분하게 나오고 있으며 그들 간의 '소통'도 원활하기 때문이다. 매체는 소통을 돕기 위한 것이므로 3부에 이르러 비로소 예술의 본 역할에 접근했다고 하면 좀 과언이 되려나? 어쨌든 더 이상 世宗에게 도구에 대한 고민은 없다. 우리의 고민대상은 '무엇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이지 '무엇을 가지고 할 것인가?' 는 아니다. 그리고 풀어갈 무엇의 대상도 同門들 각자의 위치에서 다양하게 바라보고 있다. 50여년의 세월이 흘러서 쌓인 만큼 서로 참고할 거리도 많은데다 인생의 지혜도 얼마든지 빌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난 배움/가르침보다 빌림/빌려줌이 마음에 든다) 그리곤 미래에 나올 후배들에게도 빌려줄 준비를 다시금 한다. ■ 세종대학교 회화과 동문회

Vol.20060208a | 세종동문미술제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