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6_0118_수요일_05:00pm
공평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공평동 5-1번지 Tel. 02_733_9512
리얼리스트의 경쾌한 예술 테러 ● 예술가가 사회 현실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개입하는 일이 어떠한 체계와 방법을 가지고 예술적 실천으로 용인되는가 하는 문제는 예술의 자율성 논쟁과 함께 예술적 실천의 가치에 대한 논쟁을 유발한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예술흐름은 사회에 대한 예술가의 발언에 대해 좀더 미시적이고 구체적인 성찰을 요청하면서, 거대담론에 기댄 관념적인 세계인식을 통한 추상적인 수준의 비판적 발언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내비쳐왔다. 사회와 자연과 인간에 대한 총체적 수준의 인식이 가능하다는 전제와 그 전제를 바탕으로 한 전면적인 예술적 언설들이 과연 어디까지 유효한가에 대해 심난하게 질문해온 것이 포스트모던 논쟁의 핵심논점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예술가로 살아남기와 리얼리스트로 살아나가기 ● 우리는 이러한 논점에 비추어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열망하는 예술가 주체의 의지와 감성을 회화작품에 담아 내고 있는 이명복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명복의 사회비판은 체험으로부터 나오는 것인가, 아니면 지식인의 비판적 성찰로부터 나오는 것인가? 사회에 대한 비판의 시각을 견지한 예술적 실천의 수위는 과연 어디까지인가? 이명복의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는 거대담론의 해체와 미시적 실천을 이야기하는 포스터모던 시대의 예술적 전략과 어떤 식으로 조우하는가? 이러한 공격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또다른 질문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이명복은 왜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갈구하는 메세지를 담아 그 그림들을 관람하는 이들과 정서적으로 공유하려고 하는가? 과연 순수한 회화적 공간이란 존재가능한 것인가? 이 시대에 전쟁에 반대하는 것을 과연 내적 필연성이 결여된 예술가의 관념적인 자기독백 같은 것으로 치부할 수 있는가? 사회 현실과 조응하는 예술적 실천으로서의 비판적 리얼리즘 회화는 여전히 유효한가?
이명복은 70년대 후반 이후 한국미술계에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잡은 사실적 묘사라는 표현 방법을 자신의 주된 표현 방법으로 삼고 있다. 하이퍼리얼리즘 경향으로 뭉뚱그려지는 그 흐름 속에 이명복의 회화적 방법이 자리 잡았다. 그러나 그는 리얼리즘을 표현방법의 문제로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의 삶의 체험을 바탕으로 세계인식에 도달하는 태도로서의 리얼리즘을 지향해왔다. 그것을 간추려서 사실주의와 차별성을 가지는 현실주의라는 지향을 비판적 리얼리즘으로 집약할 수 있다. 더불어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은 일관되게 회화적 표현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80년대 초반부터 수십년동안 디지털 매체를 매우 친숙하게 다루면서도 디지털 매체로 본격적인 예술창작을 하지 않았다. 그는 철저하게 붓을 쥔 손에 의지해서 자신의 감성과 인식 체계를 평면회화 작품으로 표현해왔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거리에 걸거나 벽에 그리지도 않았다. 대부분 전시장 벽면에 걸어두는 프레임 속의 회화였다. 요컨대 그는 철저하게 회화를 통해서 자신의 예술가 정체성을 지켜왔으며, 전시장이라는 예술의 장 속에서 활동해온 화가이다. ● 이명복은 예술적인 현실참여를 지향하는 비판적인 기질과 성향의 예술가이다. 그는 80년대 초반의 '임술년' 동인 활동 이래 예술가로서의 사회적 소명의식을 가지고 20여년간 회화작업을 통해서 진보와 변혁을 이야기해온 작가이다. 그는 자신의 체험적인 세계인식을 바탕으로 이 땅 삶의 모습을 회화작품에 담아왔다. 그는 성장기에 접했던 이태원의 암울한 모습을 우울한 색채로 그려내던 체험적인 현실비판에서 전쟁의 폭력으로 인한 암울한 현실을 그려내는 것으로 예술적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당대의 현실 인식을 통해 그 실체를 낱낱이 드러내는 체계적 인식을 감성적으로 들춰내고 있다. 이때 그의 인식 체계를 표출하는 감성적 표현의 총체를 우리는 비판적 리얼리즘의 견지에서 포착해낼 수 있다. ● 그렇다면 이명복에게 있어서 예술창작이란 무엇이고 예술의 장과 현실의 장은 상호간 어떠한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인가? 그가 추구하는 문제의식을 추적하는 데에 그 해답이 있다. 그는 예술의 장 바깥에 존재하는 '현실의 문제'를 예술의 장 속으로 투척해왔다. 이 말은 예술가 주체 이명복과 그 주체가 바라보는 사회라는 대상 사이에 일정 정도 거리가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예술가 이명복과 자연인 이명복 사이에는 단절이 존재한다는 것이며, 그의 현실 체험과 인식 사이에도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명복의 다음과 같은 독백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일부 사람들은 예술가로서 살아남았지만, 헌신하고 투쟁했던 80년대 사람들은 점점 사라져갔다. 돌이켜 보면 우리 사회와 예술계에는 진정한 예술가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없었다. 나는 9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사라져간 사람들에 대한 죄의식을 넘어서 예술가로서의 내 할일을 지속할 수 있었다." ● 이와 같은 말에 비춰보건대, 그에게 있어 절실했던 것은 미술판에서 예술가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를 살아나가는 구성원으로써 부끄럽지 않은 예술가로 '살아나가는' 것이었다. 90년대 중반 전후에 역사적 풍경을 그릴 때에도, 그에게는 보다 적극적인 비판 실천으로서의 예술적 발언의 계기가 필요했다. 그렇게 한 시대의 암중모색을 지나 세기가 바뀌면서 그는 젊은 날의 예술적 열망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예술의 장은 그 자체로 생물이다. 꿈틀거리며 역동하는 생태로서의 예술의 장 속에서 그는 예술적 실존을 위해 지난하게 자기 자신과 암투를 벌여왔다. ● 이렇듯 사회와 예술에 관한 상호연관의 고리를 놓지 않고 끊임없이 시대정신과 예술가의 정체성을 연관시켜온 이명복의 자세는 포스트모더니스트의 지위를 갖는다. 모더니스트가 예술과 사회 사이의 장벽을 예술적 자율성이라는 망령에 기대어 용인해왔다면, 포스트모더니스트 이명복은 그러한 분화의 상황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화가 이명복에 있어서 이러한 기질은 자신의 성장과정에서 접했던 아메리카에 대한 기억을 초기작 속에 담았던 시기에서부터 오늘날 전쟁으로 인한 폭력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부터 평화를 노래하는 데에까지 일관되게 이어오고 있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읽어낼 수 있다. 요컨대 이명복은 현실을 대면하는 태도에 있어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한 리얼리스트이며,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탈분화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대면하게 하려는 포스트모더니스트이다.
아메리카와 예술가 이명복 ● 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 걸린 금메달 하나로 인해서 반미가 대중적 정서로 자리잡는 시대에 살고 있다. 월드컵의 광기에 가려서 그냥 묻혀버릴 뻔했던 효순이미선이 사건이 한 네티즌의 제안으로 미대사관을 집어삼킨 촛불의 바다를 만들기도 했다. 이렇듯 반미가 상식 수준에 달한 시대에 예술가 이명복이 아메리카에 대해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에 대해 그의 수십년에 달하는 체험과 창작의 과정을 살펴보지 않고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초기 걸작 중의 하나인 「그날이후」(1983)와 같은 작업의 배경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태원을 근거지로 삶을 꾸려온 어린 시절부터 사회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태원에 들어서면 우리 땅인데도 스스로 왜소해지는 느낌을 가졌다. 양공주를 낀 미군이 활보하는 거리의 분위기에 대한 정서적 반감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이태원을 그려보고 싶었던 나는 노골적인 표현을 피해서 이태원의 묘한 분위기를 포착하려고 애썼다."그는 초기작에서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의 가랑이 사이로 보이는 이태원의 거리 풍경을 포착했으며, 호랑이 마크가 새겨진 점퍼를 입은 미군의 뒷모습을 통해서 군사적 피점령국인 대한민국의 현실을 드러냈다. 그는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상징하는 기물이나 사물을 풍경과 대비시키는 식의 간접적인 표현 방법을 썼다. 침대와 외국인 사진이 놓인 음습한 이미지의 실내공간을 상상해서 그리는 식이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이명복은 정연한 논리에 입각한 주제 설정의 단계가 아니라 작가의 직접적인 체험이 내면화 한 회화적 표현에 집중해 있다. 구체적인 사건 묘사보다는 감성표현을 통해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포커스를 맞추면서, 우회적인 내러티브, 중성적인 이미지 차용과 변용 등과 같은 포스트모던한 미술전략을 수행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특정 상황이나 장면을 포착함으로써 그러한 현상을 배태한 세계에 대한 총체적 인식에 도달하는 방법으로서의 회화를 추구했던 초기작 시기를 지나서 80년대 후반에는 역사적 풍경이나 노동자의 모습을 그리는 등 보다 설명적인 정치적 풍경과 장면을 그려냈다. 90년대 중반을 거쳐 후반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특정한 장면이나 상황을 그리기보다는 고깃덩어리나 은폐와 음모를 상징하는 커튼을 그리는 등 암시나 은유를 통해서 현실에 우회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취하면서도 보다 적극적으로 정치적 비판의 메시지를 담았다. 현실에 대한 이명복의 체험은 80년대라는 특수한 시공간의 따끈따끈한 가시영역을 넘어 실체를 분간해내기 어려운 비가시적 수준의 간접체험으로 이어진다. 최근작에서 그는 자신을 둘러싼 정보들에 대해, 특히 정치적 상황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현실의 모습들에 대해 보다 냉정하게 거리를 유지하면서 현실에 대한 예술적 테러를 감행하는 데로 나아간다. 비판적 거리 두기라는 장치에도 불구하고 예술작품이란 간접체험의 관념성이 야기하는 위악과 폐해에 빠지기 십상이다. 이명복은 예술작품이 처한 이러한 한계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그 너머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매우 냉철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의 말을 간추려서 요약하면 이렇다. "나는 현장의 진정성을 충분히 인정한다. 그러나 예를 들자면, 현재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민중의 고통에 대해 평택에 직접 가서 현장 활동을 벌이는 것이 유효한 만큼, 예술적으로 그 문제의 뿌리를 찾아서 밝혀내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이명복이 자신의 회화작품에 아메리카 내러티브를 구조화 해놓은 것은 지금 우리사회에서 아메리카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주의의 차원에서 반미정서를 부추기는 알맹이 빠진 반미를 예술적 표현으로 반복하는 일이라면 그것은 이미 철지난 일이거나 아니면 상식 수준의 엔터테인먼트에 그치고 말 것이다. 이명복이 다루고자 하는 것은 반미를 넘어서 평화에 있음을 깊이 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는 반미라는 '일종의' 이데올로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부시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전쟁과 폭력을 넘어서 진정한 평화를 갈구하는 마음을 공유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요소로서 가져다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복의 사회에 대한 비판적 거리두기는 관념적인 이데올로기 비판의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지역적 편견을 넘어서 세계적 보편으로서의 평화라는 가치에 대해 진지한 성찰과 번뜩이는 도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그의 성찰과 도발이 머무는 곳은 우리에게 익숙한 당대의 도상에 위해를 가하는 방식으로부터 과거의 이미지와 시공간을 초월한 이미지들의 재결합을 주선하고 있다는 점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예술적인 테러리즘으로 초점이 모아진다. 그의 예술 테러는 암울하고 음습한 것만이 아니라 때로는 경쾌한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경쾌한 예술 테러 ● 수십 개의 작은 캔버스에 반전 포스터 이미지를 그려넣어서 하나의 거대한 벽면을 형성하는 작업 「평화의 벽」에는 낱낱의 화면들에 간략한 이미지와 텍스트들이 들어있는데, 이러한 작업은 거대한 화폭에 구도와 형상과 색채를 정연하게 배치하는 방식과 달리 기존의 이미지와 텍스트를 화가의 손으로 빠르게 옮겨 그리는 방법으로 새로운 시각 체험을 유도하고 있다. 이와 같이 폭력과 죽음의 우울한 도상들로 가득 찬 그의 그림들이 밝고 맑은 명랑 버전의 미색 계열과 만나고 있는 것은 폭력과 짙은 색을 연결하고, 희망과 밝은 색을 등치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형태와 색의 역설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적인 묘사에도 불구하고 화면 구성의 간략함과 색채 구성에 있어서 고유색을 비껴가면서 사물이나 인물 개별 또는 무리를 단색으로 처리함으로써 단선적인 진지함의 도식을 벗어나 있다. ● 이번 출품작들은 부시에 대한 지대한 관심, 상처를 드러내는 예술적 표현, 시공간을 초월한 폭력의 근원을 밝히는 일 등과 같은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이명복은 부시의 면면에 대해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더 면밀하게 연구한 사람일 것이다. 그는 「환영을 쫒는 자의 초상」에서 부시를 매우 자상하게 묘사하고 있다. '조지'고 '부시'는 게 일이라 그 이름도 선명한 '조지 W. 부시'. 그 부시의 얼굴 옆모습을 포착한 후에 그의 두개골과 치아 구조 하며 뇌에서 꿈꾸고 있을 세계패권의 지도까지 펼쳐놓음으로써 한 인간의 머릿속에 관한 깊은 성찰을 가시적인 영역으로 끌어내고 있다. 위풍당당하게 앉아있는 근육질의 맹견 주둥이 부분에 부시의 얼굴을 대입해 넣은 개-부시 그림 「붉은개」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말 주둥이에 부시를 그려넣은 말-부시 그림 「붉은말」 또한 같은 맥락의 우화적 표현이다. ● 이명복은 예술의 이름으로 상처를 치유하려 들지 않는다. 그는 전쟁의 폭력으로 인한 상처를 날것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어설픈 휴머니즘 차원의 메세지이기 보다는 극악한 폭력에 의한 죽음을 폭로해 내는 데 초점을 맞춘 것들이다. 「복원」은 절단된 신체 이미지를 붕대나 석고로 보이는 흰색으로 채워 넣은 인형형상의 어린 아이의 몸을 그려 놓음으로써 전쟁의 폭력으로 인해 상실한 섬득한 이미지로 담아내고 있다. 파란 미색의 배경화면 위에 산뜻하게 차려진 아침 식탁 「굿모닝」은 그 식탁 아래에 천을 덮어놓은 한 무더기의 해골더미를 쌓아놓고 있다. 잔디위에 놓인 식탁과 그 위의 화병과 극명하게 엇갈리는 은폐된 죽음의 드러남이다. 마치 인형 같이 보이는 여러 개의 인체 이미지들이 겹겹이 포개져 있는 그림 「나락으로 떨어지다」 역시 파란 배경을 바탕으로 마치 인형을 쌓아놓은 것 같은 포로학대의 상황들을 그려냄으로써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위악을 다시 들춰내고 있다. ● 폭력의 근원은 시공간을 초월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명복은 여러 인물과 사건과 장면들을 동원하고 있다. 부시와 블레어, 체니, 럼즈펠드, 파월, 고이즈미, 그리고 노무현에 이르기까지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한 주요 인물들이 등장하는 「죽음의 승리」는 좌우에 공격용 헬기와 전폭기가 배치되어있고, 그 뒤로 포연이 마치 구름문양처럼 장식적인 화면 구성 요소로 등장한다. 배경 속에 어지럽게 놓여있는 전쟁터의 장면은 피터 브뤼겔의 걸작 「죽음의 승리」를 옮겨 그린 것이다. 이라크전쟁의 실체를 한 폭에 담은 탱화 양식의 도해이다. 「시간의 공전」은 도시의 야경을 배경으로 해서 박정희 기마상을 그려넣었다. 군국주의 망령의 부활을 의미하듯 그의 얼굴은 해골로 처리되어 있다. 시간은 그렇게 돌고 돌아서 20세기 중반의 제국주의 망령은 21세기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아라비안나이트」는 부시와 블레어가 마주보고 걸어나오는 장면 주변으로 파괴된 인체 조각이 떠다니고 배경에 포연과 파편들이 널려있는 장면이다. 하단부의 원탁에는 커튼이 드리워져 있고, 그 아래에는 죽음의 검은 그림자들로 가득하다.
사회에 대한 직간접적인 체험을 드러내는 예술가의 비판적 실천은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성찰의 가능성을 높인다. 사회 구성원이나 기재들의 다양한 대사회적 발언과 표출의 한 방식으로서의 예술적 표현을 수행하는 화가 주체 이명복은 비판적 리얼리즘이라는 잣대를 확고부동하게 세워놓고 있다. 이것은 우리 시대가 공유할 수 있는, 혹은 아직 공유하지 못하고 있으나 공유해야 한다고 믿는 새로운 가치에 대한 참여를 의미한다. 그것은 다른 한 편으로 이명복 자신의 말처럼, '그림이니까 할 수 있는 그런 것'이기도 하다. 자율적인 예술적 발언이 허용되는 예술영역에서의 일이다. 이명복의 예술적 실천이 우리에게 당대의 시대정신을 일깨우며 평화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은 그가 끊임없이 사회와 예술의 역동하는 관계 속에서 사회의 날것을 까발려서 예술의 장에 투척하는 예술적 테러를 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 김준기
Vol.20060119a | 이명복과 이주루 미주타니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