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백종옥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5_1216_금요일_05:00pm
작가와의 대화_2005_1220_화요일_04:00pm~06:00pm
조흥갤러리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62-12 조흥은행 광화문지점 4층 Tel. 02_722_8493 www.chohungmuseum.co.kr
책들이 존재하는 시공간 속에서 난 나만의 속도로 숨을 쉬고 생각하며 나만의 속도로 꿈을 꾸며 노래를 한다. '나의 도서관'엔 나의 일상적 체험과 환상으로부터 빚어진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사물들이 자리잡고 있다.
나의 도서관에 이르는 길 ● 그 무렵 갑자기 작업을 한다는 게 어쩐지 천하에 쓸모없는 짓처럼 생각되었고 내 삶과 밀착되지 않은 한낱 뜬구름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더구나 내공을 쌓아보겠다고 건너간 타국땅에서 마주친 그 끝모를 막막함은 그 곳에 내가 있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조차도 가물가물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되돌이표처럼 버티고 있는 작업에 대한 근본적인 권태와 회의였다. 그러나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 것은 '작업에 대한 권태와 회의'가 아니라 바로 그 '권태와 회의'로 인해 '나만의 언어'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저 환상에 불과할지라도 '나만의 언어'를 갖고싶다는 질기고 오랜 욕망이 계속해서 날 숨쉬게 하고 있었다. ● 영영 작업을 포기해야할 것만 같았던 우울한 시간 사이로 해답은 이외로 단순하게 찾아왔다. 그동안 그림을 그리면서 내가 다루었던 작업의 주제나 소재들이 자꾸만 견고하게 관념화 되어 결국 나를 구속시키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난 그것들과 과감히 결별해버렸다. 그리고 우선 손에 잡히는 일상적 삶에서 나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체험들을 하나하나 확인해 나가기로 했다. 그래야만 작업을 한다는 게 더이상 허무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난 오랜 습관같았던 페인팅을 접고 설치, 사진, 드로잉으로 작업방식을 바꾸었다. 그리고 베를린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이천년에서 이천일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이었다.
내 심각한 습성 중의 하나는 책을 가까이 한다는 점이다. 물론 난 엄청난 다독가는 아니지만 틈틈이 책을 읽고 도서관과 서점의 서가사이에서 웅크리고 앉아있거나 배회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이런저런 책을 뒤적이며 한참동안 환상 속을 유영하고 있어도 무방한 그곳에서 작업에 관련된 이미지들은 불쑥불쑥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아마도 책이라는 오브제와 책이 있는 공간이 나에게 정서적 편안함과 영감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내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심각한 습성'을 자각한 이후 작업을 한다는 것이 한결 자연스러워졌다. 무엇보다도 작업에 대한 모종의 압박감과 막연함이 많이 사라졌고 내 생활과 행동반경 그리고 사고의 흐름을 곰곰이 되새김질하는 버릇이 새로이 생겨났다. 그 되새김질 속에서 '나의 도서관'이 서서히 지어졌다. ● '나의 도서관'에 이르는 길은 대략 세갈래로 나있다. ○ 나와 책-관계_책을 읽으면서 또는 책이라는 오브제를 통해 내가 떠올린 심상들이나 책과 관련된 공간속에서 경험한 풍경들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는 책과 관련된 이미지들이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다. '나와 책의 관계'는 '나와 세계의 관계'를 의미한다. ○ 나와 타인- 대화_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와 책 속의 타인이 나누는 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책은 나에게 책밖의 타인들과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하는 매개체이다. 그 책속에 들어있는 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서로 침묵과 언어 사이를 오가며 무언가를 주고 받는다. ○ 영적 성숙_구체적인 책의 형태들이 등장하기 보다는 내 삶의 중요한 요소인 '영적 성숙'에 관한 이미지들이 자리잡고 있다. 나의 도서관엔 책들 뿐만아니라 영적 내면을 지닌 인간 역시 존재한다. 이 영적 성숙은 앞에서 말한 '관계와 대화'를 거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이번 개인전은 지난 2000년말부터 2005년 현재까지의 작업들을 하나의 시기로 마무리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화두를 마음의 흐름 속에 담아 작업을 해온지 5년여가 흐른 것이다. 이 시기에 나는 베를린에서 다시 서울로 돌아왔지만 공간의 이동이 내 화두를 흔들리게 하지는 못했다. 그 화두의 근간에는 '체화'에 대한 고민이 자리잡고 있다. 내안에서 깊이 체화되고 발효시킨 생각과 상상력을 내가 처한 물리적 한계 속에서 나만의 속도로 하나하나 다듬어 내놓는 일만이 작업에 대한 회의와 마주치지 않고 또 다른 새로운 도서관에 이르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 백종옥
Vol.20051216a | 백종옥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