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가인갤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5_1213_화요일_05:00pm
참여작가 칼 안드레_댄 플래빈_프레드 샌드백_제니 홀처_빅 뮤니즈
전시관람_11:00am~07:00pm_월요일 휴관
가인갤러리 서울 종로구 평창동 512-2번지 Tel. 02_394_3631
1990년대 청담동의 주요 화랑 중 하나였던 가인갤러리가 2005년 평창동 (구)이응노미술관 자리로 위치를 옮겨 새롭게 문을 열게 되었다. 가인갤러리는 1992년 청담동에 화랑을 설립한 이후 이인현, 민병헌, 홍명섭, 천광엽 등 국내 작가들과 Gottfried Honegger, Roman Opalka 등의 외국 작가들의 개인전과『The Nineties』등 다수의 그룹전을 개최하고 해외 유명 아트페어에 참여하는 등 1990년대 활발히 활동한 바 있다.2005년 평창동으로 이전한 가인갤러리는 첫 전시로 외국작가 5인의 그룹전『ONGOING』을 마련했다. 이 전시는 1960년대 대표적인 미니멀리즘 작가로 알려진 칼 안드레(Carl Andre)와 댄 플래빈(Dan Flavin)부터 그 후 포스트미니멀리즘 작가로 분류되는 프레드 샌드백(Fred Sandback), 그리고 현대미술작가 제니 홀쳐(Jenny Holzer), 빅 뮤니즈(Vik Muniz)까지, 다섯 작가의 대표작품을 통해 미니멀리즘이 현대미술에 미친 영향력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이다.
"내가 생각하는 조각은 하나의 길이다. 그 길은 어떤 특정지점에서 혹은 어떤 특정지점으로부터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 칼 안드레(Carl Andre)의 조각에 대한 이 정의는 은유적인 그 표현만큼이나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길을 걷다 멈춰서서 바라본 길의 모습이 그 지점마다 다르며 한 지점에서 바라본 것이 그 길의 전체 모습이 아닌 것처럼 안드레가 생각하는 조각은 그것이 놓여진 장소에 따라, 또 그것을 바라보는 그 순간사람들의 느낌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이 언술은 취미에 관한 오랜 미학적 논의에서 취미가 주관적인 것이라는 설득력 있는 주장이며, 전통적인 조각의 정의에 반하는 안드레 자신의 새로운 조각에 대한 예술관의 피력이다. 무엇인가를 새겨 넣고 깎아냄으로써 어떠한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모양의 사물을 반복적으로 배열함으로써 어떠한 공간을 완성하는 칼 안드레의 조각은 관람객 각자의 관점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며 관찰자가 그것을 지각하는 과정에서만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칼 안드레의 이러한 새로운 예술개념은 도널드 저드(Donald Judd), 댄 플래빈(Dan Flavin), 솔 르윗(Sol LeWitt) 등과 함께 '미니멀리즘'이라 칭해지며 1960년대 미국의 비평가들 사이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이들 미니멀리즘 작가들은 가공되지 않은 산업적인 재료를 사용해 동일한 단위를 규칙적으로 배열함으로써 극단적인 간결성과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그로부터 예술의 자기표현(self-expression)과 환영(illusion)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이러한 특징들로부터 비롯된 미니멀 아트의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모습 때문에 미니멀리즘을 1950년대 추상표현주의 회화와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추상표현주의 회화가 회화라는 틀 안에서 자신의 영역을 공고히 하는데 전력을 다했던 반면, 미니멀리즘은 이러한 회화의 철옹성에 도전하고자 공장에서 만들어낸 재료를 통해 누구나 만들 수 있을 것같은 실제 사물을 작품으로 제시함으로써 회화도 조각도 아닌 전혀 새로운 예술을 시도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미니멀리즘은 오히려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 - 어떠한 오브제라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 의 혈통에 가깝다. ● 사실상 '미니멀리즘'은 그 명칭에서부터 다소부정적인 뉘앙스를 띤다. 그것은 작가들 스스로 원치 않은바 당시 비평가들 사이에서 그들의 예술이 지닌 기계적인 엄밀성과 소극적인 구성을 빗대어 '미니멀'이라고 부른 것에서 연유하기 때문이다. 또한 미니멀리즘은 1960년대 잠시 성행하다가 1970년대 초 그 물질적 특성에 반대하는 예술가들의 움직임에 의해 금새 거부의 대상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미술사의 짧은 하나의 경향으로만 단정짓기에는 미니멀리즘이 오늘날 미술에 끼친 그 영향력은 지대하며, 미니멀리즘의 여러 요소가 현대미술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미니멀리즘의 정신적 의미와 그 중요성에 대한 재평가는 현대미술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이 될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칼 안드레와 더불어 또 한명의 미니멀리즘 작가 댄 플래빈의 작품이 선보인다. 그의 작품은 미니멀 아트의 특징을 잘 대변하면서도 다른 미니멀 작가들과 차별되는 미적인 풍부함이 있다. 플래빈은 오로지 기성 형광등을 기본단위로 한 반복적인 구성을 통해 실제 공간을 완성한다. 형광등이야 말로 누구나 구입할 수 있는 산업재료이며 작가는 재료에 어떠한 변형도 가하지 않은 채 요소들간의 관계와 공간과의 관계를 고려해 단위들을 배열할 뿐이다. 플래빈 자신이 작품의 부제로 여러차례 언급한 타틀린의 유명한 강령인 "실제의 공간과 실제의 재료를 사용할 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플래빈이 미니멀리즘이라는 하나의 예술 사조를 넘어서 자신만의 고유함을 갖는 것은 그의 작품이 어떠한 지시체도 없으며 환영도 존재하지 않지만 형광등의 빛과 색의 조화만으로 그 어떤 예술작품보다 풍요로운 미적 외형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 미니멀리즘은 등장 후 십년도 채 되지 않아 예술의 상업화로 치부되며 제대로 한번 조명조차 되지 못한 채 포스트미니멀리즘이라는 반동세력을 맞닥뜨렸다. 그러나, '포스트(post)'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반(anti)'과 '후기(after)' 두 가지 의미 모두로 사용된다고 할 때 '포스트미니멀리즘' 역시 미니멀리즘의 가치에 대한반동을 함축하면서도 미니멀리즘의 특징을 일부 계승하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상 포스트미니멀리즘은 미니멀리즘의 두드러진 물질적 특성으로부터 벗어나 예술의 도덕성을 회복하고자 했던 1980년대 후반까지의 광범위한 예술현상 - 퍼포먼스 아트, 프로세스 아트, 대지미술, 비디오 아트 등 - 을 지칭하는 바, 이들의 공통된 양상이라면 수집가의 수집품이 되는 오브제를 가능한 만들려 하지 않았다는 점 정도가 될 것이다.
연대기상 이번 전시의 허리에 위치한 프레드 샌드백(Fred Sandback)은 이러한 면에서 편의상 포스트미니멀리즘 작가로 분류해도 무방할 것이다. 샌드백의 실을 이용한 설치작품은 물론 미니멀 아트처럼 실제 부피와 면적을 가진 물질이 공간을 구성하지 않는다는 점과 작가가 한정된 공간에 실로 드로잉을 하는 퍼포먼스적 요소가 강하다는 점에서 미니멀리즘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실상 그의 작품은 많은 부분 미니멀리즘의 뒤를 잇고 있다. 먼저, 선만으로 구성된 샌드백의 모든 작품은 외견상 기하학적이며 극도의 간결성을 특징으로 한다. 또한, 물질성으로 공간을 채우지 않으면서도 공간의 부피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샌드백의 공간 드로잉은 '실재하는 환영'으로서 어떤 다른 상을 지칭하는 전통적인 의미의 환영이 아니라는 점에서 미니멀리즘의 환영에 대한 거부와 맞닿아있다. 그리고, 샌드백의 조각은 미니멀 조각들이 공간의 벽, 바닥, 혹은 천장에 설치됨으로써 작품을 완성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공간과 시간에 따라 동일한 작품도 다른 작품이 될 정도로 공간특정적(site-specific)이다. 현대미술의 주된 특징 중 하나인 공간의 특수성이 미니멀리즘에서의 공간의 중요성에서 출발했다 해도 무리는 아닌 셈이다. 나머지 두 작가는 최근현대미술의 선두에 위치한 제니홀쳐(Jenny Holzer)와 빅 뮤니즈(Vik Muniz)다. 먼저 제니 홀처는 전쟁, 폭력, 인종차별, 성, 질병 등 사회정치적인 주제와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전광판, 벤치, 티셔츠, 텔레비전 광고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텍스트 작업을 해왔다. 자신의 개인적인 주장을 텍스트를 통해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설파한다는 점에서 홀처의 작업은 극히 자기표현적이며 그녀의 작품에서 작가의 주관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이러한 특징은 분명 미니멀리즘과 거리가 멀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대미술처럼 홀처의 작업에는 상충된 요소들이 혼재한다. 그녀는 LED 전광판과 같은 대표적인 자본주의 사회의 산업재료를 자신의 주된 매체로 삼고 있으며, 같은 재료와 형식을 반복적으로 이용하는 작품들을 주로 행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미니멀리즘의 요소를 또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빅 뮤니즈의 경우에는 상충된 요소들의 아이러니가 한층 더 하다. 뮤니즈의 작품은 초콜릿 시럽, 설탕, 먼지, 실핀, 흙, 철사 등 극히 일상적인 재료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만든 뒤 그 일차적 결과물을 다시 사진이라는 이차적 매체로 담아내는 형식을 취한다. 인물, 풍경, 정물까지 모든 미술장르를 뛰어난 솜씨로 재현해내는 그의 일차적 제작단계는 분명 어떠한 상을 옮긴 것으로서 환영이 존재하는 전통적인 화가의 그것이다. 그러나 그의 재료와 소재 선택은 특별하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포트레이트 연작을 위해 무의식과 욕망의 상징인 초콜릿 시럽을 택하고, 자본주의의 대표적 심볼이자 워홀의 주된 소재였던 마릴린 먼로의 포트레이트 연작을 위해 다이아몬드 잔해물을 택하는 식으로 그의 전 작품에서 재료는 소재에 따라 다르게 선택된다(물론 재료에 따라 소재를 택하는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러한 뮤니즈의 재료 선택과 기본단위를 이용한 배열, 그리고 연작에 대한애착에서 우리는 오늘날 현대미술 도처에 남아있는 미니멀리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 그간 미니멀리즘은 196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하나의 예술 경향으로서 그 형식적 특성에만 국한되어 편협하게 논의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에 주목하여 이 전시는 미니멀리즘이라는 명칭에 갇힌 외형상의 요소들만을 볼 것이 아니라 당시 그러한 예술을 시도했던 작가들의 의도와 본질적인 성질을 되새김으로써 하나의 지나간 사조가 아닌 그 영향력이 지속되고 있는 예술태도로서의 미니멀리즘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한 공간에서 호흡하는 칼 안드레, 댄 플래빈, 프레드 샌드백, 제니 홀처, 빅 뮤니즈 다섯 작가의 작품을 통해 오늘날 미니멀리즘이라는 사조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 영향력은 곳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계속하여 다른 형태로 진행하고(ongoing) 있음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 신혜영
Vol.20051215c | ONGOING-Carl Andre to VIk Muniz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