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허상의 식물

김문경 개인展   2005_1130 ▶ 2005_1213

김문경_DEFORMATION06-브루커리_도자, 혼합재료_가변설치_47×50×50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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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1130_수요일_05:00pm

관훈갤러리 신관2층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95 Tel. 02_733_6469 www.kwanhoongallery.com

김문경-욕망과 허상의 식물 ● 우리는 식물과 고리처럼 얽혀있다. 식물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식탁에 올라오는 식물은 생존과 건강에 필수적인 것들이다. 한 켠에 놓인 화병에 꽂힌 꽃들은 먹을 수는 없지만 음식 이상으로 의미가 있는 존재들이다. 식탁위에 놓인 먹을거리와 볼거리인 식물을 대상으로 해서 그린 정물화의 등장은 그 존재에 대한 인식의 변화 아래 가능했다. 신과 천사만을 그리던 이들의 눈에 비로소 식물의 존재가 그 어느 것보다 커다란 의미를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비로소 서구의 근대/근대미술은 그 정물화의 등장으로부터 서서히 발원한다. 식물은 부동의 자세로 대지에 박혀있다. 그래서 동물이 아니고 식물이다. 식물은 다른 생물을 잡아먹지 않는 대신 빛과 공기, 물과 광물질로 살아간다. 그러니까 그들은 해를 먹는다. 식물은 자신의 몸으로 물과 토양과 햇빛을 귀중한 물질로 탈바꿈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녹색이어야만 한다. 지구의 표면 대부분을 뒤덮고 있는 이 녹색은 인간의 눈에 가장 편하게 다가오는 색이자 신선한 공기를 제공하는 색이며 무엇보다도 아름다움과 미적 쾌감, 숭고를 자아내는 색이기도 하다. 그만큼 식물은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사물이다. 일상에서 매일 접하는 이 과일, 야채는 미각, 시각, 후각과 촉각 등을 자극하는 대상이자 인간이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구체적인 매개이기도 하다. 오늘날도 그토록 많은 화가들이 꽃과 식물을 그리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식물이 미술의 핵심적 대상이 된 것은 17세기 네덜란드의 정물화의 등장이며 이후 세잔의 분석적 사과, 고흐의 자전적 해바라기, 오키프의 여성적 자의식으로서의 꽃, 볼테르의 초현실적인 서양 배, 메이플 소프의 관능적인 백합 등으로 나아간다. 그런가하면 동양의 경우 식물이란 대상은 인간이 지닌 동물성을 중화시키고 군자가 지향하는 식물성의 세계로 나아가는 징표로 반복되어왔다.

김문경_DEFORMATION06-호頭_도자, 혼합재료_가변설치_53×55×48cm_2005

이렇듯 식물은 다른 생물체의 욕망을 자극하고 충족하면서 이들을 유혹한다. 그것이 식물의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동시에 인간의 미적 욕망, 존재의 지향성으로 지속해서 자리해왔다. 우리들 일상에서 가장 빈번하게 만나는 이 식물이란 대상을 왜곡, 변형해서 커다랗게 만들어낸 김경문의 작업은 일종의 의사자연, 의사식물이다. 작가는 낯익은 과일을 매우 낯설게 만들었고 그것들은 도예용 흙으로 빚어 구워낸 것들이다. 흙과 불이 만나 이룬 기이한 자연/식물의 세계인 셈이다. 일상의 사물을 재현하는 경향은 팝아트 이후 현대도예나 조각에서 일반화되어왔다. 그러니까 자코모 만주나 올덴버그, 조지 시걸 등의 타블로 조각에서 보듯 실물모형으로 구성된 작품주변을 돌아다니는 체험을 통해 관람자의 세계와 작품 환경이 연속적이라는 느낌을 강화하는 한편 일상적 사물을 변형하는 여러 장치들이 김문경의 작업에서도 반복된다. 작가가 만든 식물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식물들을 닮은 물체를 통해 새삼 자신을 둘러싼 사물과 세계를 다시 보게 한다. 초현실주의 작품에서는 현실세계의 지속적 바탕에 균열을 열어놓기 위해서 크기를 극단적으로 전도시키는 방법이 사용된다. 작가의 이 크기 감각 역시 초현실주의적 원천과 관련되어 있다. 김문경의 경우는 자아에 영향을 끼치는 사물 세계의 힘과 영향, 충격 등을 표현하기 위한 전도로 다가온다.

김문경_DEFORMATION06-毛콩_도자, 혼합재료_가변설치_72×13×15cm_2005

식물은 일련의 변형과정을 거쳐 크기가 커지거나 길이가 늘어나는가 하면 속이 절개되고 그 안에 다른 것들이 개입되어 있다. 의인화된 식물이자 상징과 은유체로 설정되어 있다. 눈속임을 불러일으키는 이 과일과 야채는 외형은 유사하지만 먹을 수 없고 냄새나 촉각이 다른 기이한 존재가 되었다. 어쩌면 작가는 이런 의사식물을 빌어 존재와 거짓존재,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기 어려운 동시대의 가치관을 물어보는 것 같기도 하다. 겉으로는 매끈하고 보기 좋고 탐스러운 과일이지만 순간 흙으로 빚어 구워낸 딱딱하고 먹을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당혹스럽고 낯설 것이다. 그것들은 분명 과일로 존재하지만 분명 거짓이고 허상에 불과하다. 사실 모든 이미지는 허상이다. 허상임에도 불구하고 그 허상을 빌어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 미술의 운명이기도 하다. 작가는 그 허상을 적극 작업의 주제로 추인하고 있다.

김문경_DEFORMATION06-사과_도자, 혼합재료_가변설치_90×90×100cm_2005

돌이켜보면 과일과 야채는 현재 자신이 보고 있는 순간은 일정한 형상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것은 본래 아주 작은 씨앗이고 캄캄함 흙 속에서 물과 햇살을 통해 지금의 모습으로 변환한 것이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썩고 메마르고 퇴색하면서 끝내 가루가 되고 즙이 되어 다시 흙 속으로 들어갈 것들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이 운명을 피할 수 없다. 당연히 인간 역시 그럴 것이다. 그러나 김문경이 만든 과일과 야채들은 결코 썩거나 죽을 수 없다. 시간의 입김에서 자유로워져서 영원성과 불멸 속에서 자리한다. 썩어서 없어질 과일들을 도자기로 만들어 박제화 시켰기 때문이다. 일정한 시간성의 지배를 받는 생명체를 흙으로 빚어 만든 후 불에 구워내 썩지 않는 것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허상에 영원성을 부여하는 것은 어쩌면 거짓을 반영하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이 만든 허상, 박제의 의사자연을 일상의 공간에 다른 사물과 함께 섞어서 그 허상성을 적극 연출한다. 일상의 다른 사물과 함께 엉켜서 자존하는 이 과일과 야채들은 마치 인간 존재처럼 방과 공간, 계단과 책상, 테이블에 앉아있거나 드러눕거나 걸터앉아있다. 의인화 된 식물의 세계상을 만나고 있다는 착가도 드는 연극적 공간이다. 더욱이 그런 일루젼을 더욱 증폭하는 요소는 벽에 걸린 사진인데 그것들은 책꽂이나 실제 과일을 촬영한 것이다. 이미 그것 역시도 사진으로 재현된 허상이고 거짓된 이미지다. 벽에 걸린 사진을 배경으로 커다랗게 부푼 과일들이 놓여져 있다.

김문경_DEFORMATION06-복숭아_도자, 혼합재료_가변설치_60×60×90cm_2005

이렇듯 작가의 작업은 존재와 허상에 대한 혼란을 주면서 과연 현실에서 존재하는 것은 진실 된 것인가 거짓된 것인가를 질문하고 있다. 그러니까 허상화를 통해 거짓된 현실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수많은 거짓과 진실의 커다란 대립적 구조가 공존하고 있고 그러한 것들은 익숙한 사물과 언어, 행동 등에 의해 실제의 존재가 가려지고 허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자각 자신의 메시지를 구현하고 있는 이 의인화된 식물, 과장되고 초현실적인 식물의 세계는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흥미로우면서도 기괴하다. 마치 우리네 삶의 풍경이 그러하듯 말이다. ■ 박영택

Vol.20051130c | 김문경 개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