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ttle of soul

황호석 회화展   2005_1128 ▶ 2005_1207

황호석_Battle of soul_캔버스에 수채와 아크릴 채색_44×72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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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1128_월요일_06:00pm

문화일보 갤러리 서울 중구 충정로 1가 68번지 Tel. 02_3701_5755 gallery.munhwa.co.kr

급격한 변화를 거듭하는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겪는 일 외에도 각종 매체를 통해 접하는 충격적인 사건들로 고통을 받고 있다. 개인이 가지는 경험들은 내면에 어떤 식으로든 작용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경험들이 정상적으로 해소되지 못했을 때 이는 개인의 병 또는 반사회적인 행동으로 돌출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감정의 충돌은 크던 작던 인간 내면에 상처를 내고 스스로 정화하고 회복하려는 의지를 갖게 된다. 치유의 과정인 것이다.

황호석_Battle_캔버스에 수채와 아크릴 채색_91×71.5cm_2005

황호석에게 '치유'는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화두다. 사람사이의 교감이나 주변과의 관계설정에 관심을 갖는 그에게 '치유'에 대한 관심은 필연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감정적 관계에는 늘상 보이지 않는 신경전, 스트레스, 감정의 미묘한 뒤틀림을 수반한다. 이로 인해 상한 영혼은 그것이 종교든 철학, 도덕, 그 무엇이든지 간에 치유를 꾀하기 때문이다. 2004년 'Surroundings'展이나 2005년 상반기의 'Dress'展에서 작가가 언급한대로 '주변세계, 이를테면 사람의 영혼들, 가치관 등을 시각적인 아이콘으로 변환시키는'작업을 시도했기에 이번 작업의 주제가 '치유자, 영혼의 전쟁'이 된 것은 매우 순차적 발상으로 보인다. ● 그러나 그의 작업이 보는 이로 하여금 치유를 불러일으키는 예술치료 류(類)의 그림은 아니다. 단지 의미를 부여한 아이콘을 사용하여 매우 추상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내면의 치유과정과 현상에 대한 개념을 구체화하고 있다. 상한 감정에 대한 치유는 자신 스스로의 정화과정을 통해 이뤄진다는 기본전제아래 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 인간의 내면을 의인화된 아이콘으로 대변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돌발적으로 변화하는 감정에 대한 몇 가지 아이콘 풀이가 필수적이다.

황호석_치료해 줄게_캔버스에 수채와 아크릴 채색_75.5×106.5cm_2005
황호석_풀어봐!_캔버스에 수채와 아크릴 채색_116.5×91cm×2_2005

그의 작업은 크게 두 가지 주제로 나뉜다. 하나는 치유자이며 다른 하나는 감정과 스트레스로 상처입은 감정의 치유과정이다. 첫 번째 주제를 풀어내는 고리로 거대한 소녀가 등장한다. 작가의 심상(心想)에서 만들어 낸 인위적 소녀는 불이나 물통, 실타래를 들고 중심에 서있다. 감정의 에너지를 붉거나 노란 불과 물통으로, 그리고 계속 풀어내야 할 과제로 실타래가 보인다. 화면에 부유하고 있는 플라워혼1)(물고기_말 그대로 꽃뿔 물고기란 뜻을 가지고 있다. 플라워혼은 머리에 화려한 색깔의 돌기가 뿔처럼 나 있는 물고기로 사람에 의해 교배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관상용 물고기다. 치유자로 등장하는 소녀와 비슷한 존재로 쓰였다.)처럼, 인간내면에서 스스로 창조된 치유자인 약간은 부자연스럽고 미성숙한 소녀들은 유유한 낯빛으로 불과 물, 그리고 실타래를 다루고 있다. 치유자로써 소녀가 등장하는 것은, 작가가 생각하는 치유가 전지전능한 신으로써의 절대적 치유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 손상된 관계회복을 위해 만들어낸 미성숙한 치유이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그녀들은 내면의 감정들을 해결하거나 중재하기보다는 문제들을 놀이하듯 다루면서 보는 이에게 윙크를 날리고 있는 것이다.

황호석_Battle_캔버스에 수채와 아크릴 채색_2005
황호석_Battle of soul_캔버스에 수채와 아크릴 채색_130.5×73cm_2005

두 번째 주제는 치유의 과정이다. 연작으로 그려진 작품에 거인의 두 소녀가 키스를 하고 있다. 주변에 벌거벗은 소녀들은 그 모습을 보며 눈을 흘기고, 미소를 날리며 왁자지껄한 소란을 피운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마치 소인국에 포박 당한 걸리버처럼 두 여자아이가 작은 소녀들에 의해 묶여 할퀴고 놀림 당한다. 거대한 여자아이들로 표현된 인간의 관계 속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감정과 힘이 교류하고 있으며 이들이 한 공간에서 얽히고 설키면서 인간 내면의 끊임없는 상처와 그에 대한 치유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 어떤 고통과 문제들도 스스로의 정화과정을 통해 덜어지고 나아진다는 전제아래 마치 함수상자를 들여다보는 듯 노골적인 내면의 치유과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황호석이 끊임없이 의문을 품고 작업해온 '주변'과 '관계'에 있어 '치유자'라는 중재자의 등장은 인간 사이의 관계형성과 문제에 대한 외면이 아닌 나아짐의 모색을 제시했다는 데에 이번 작업이 갖는 진일보한 모습일 것이다. ■ 성윤진

Vol.20051129b | 황호석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