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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1118_금요일_05:00pm
문화일보 갤러리 서울 중구 충정로 1가 68번지 Tel. 02_3701_5755 gallery.munhwa.co.kr
"불편한 관계" : 양은주가 말하는 현실의 문제 ● 양은주의 첫 개인전 작품들은 전시제목처럼 그 앞에선 관람자의 마음을 다소 불편하게 만든다. 여기서의 불편함이란 그녀의 작품들이 개인의 일상적인 소사(小事)를 큰 부담 없이 둘러볼 수 있게 하는 동시대 많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과 달리 그 일상 이면의 또 다른 리얼리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양은주는 우리가 태연히 흘려보내는 일상의 시간 속에서 간과하기 쉬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자신이 부딪쳐야 할 문제로 인식하며 우리에게도 이를 자기화하기를 권유한다. 그 첫 번째 경우가 영화이미지 시리즈이다.
이번 전시에서 총 5개의 그림으로 구성된 영화이미지 시리즈는 작가가 잡지에서 본 영화의 스틸 컷을 캔버스에 재현한 후 각기 다른 영화 이미지 두 개를 병렬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 것이다. 영화 속에서 하나의 리얼리티를 만들어내는데 일조하던 각각의 장면들은 그 본래의 문맥에서 떨어져 나와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새로운 리얼리티를 구성한다. 작가에 의하면 그것은 "사회적 약자가 처한 현실", 즉 「나는 미국 여자가 될 거야」에서처럼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로부터 소외된 제3세계 여성의 현실이나「두 여자」에서처럼 남성과 여성의 권력관계로부터 비롯되는 성적 폭력의 문제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작가가 '사회적 약자'로 범주화한 유색인, 빈민, 여성, 아이들에 대한 그림들이 과연 그들의 처절한 현실을 정확히 대변하고 있느냐이다. 왜냐하면 그 그림들은 실제가 아닌 허구를 다루는 영화의 한 장면을 참고한 것이며 더구나 허구를 실제처럼 느끼게 하는 영화의 서사성을 배제한 채 하나의 대상적 이미지만을 보게 하는 잡지 속 영화사진을 토대로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은주는「정신지체 아이들」이라는 작품에서 그가 그리고자 한 대상을 직접 만나는 방식을 택했다. 작가는 정신지체 아이들을 그리기 위해 복지원을 찾아가 6개월 동안 주말에 그들과 일정 시간을 보내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장애아들과 몸으로 만나는 경험 속에서 얻은 그들 개인에 대한 인상과 느낌을 기억하며 32개의 초상화를 그렸다. ● 이렇듯 자신이 직접 사진을 찍고 그것을 회화로 옮기는 양은주의 재현 방식은 영화이미지를 회화로 옮기는 방식과 달리 실제 현실을 리얼하게 재현해낸다. 일차적으로 그녀의 카메라는 실제 현실 속의 대상을 객관적으로 매개해주며 그녀의 눈과 붓을 든 손은 기계적인 사진이 잡아내지 못한 대상의 진실한 모습을 표현해내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진은 회화를 위한 재료가 되고 있는 셈이다. 사진의 지표적(indexical) 성격을 따르기보다 대상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담아내려 하고 화가의 붓터치를 드러낸 양은주의 그림들은 사진보다 더 리얼하게 정신지체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정면을 응시한 채 클로즈업 된 아이들의 얼굴은 극사실적이 아님에도 그 본래의 표정이 절묘하게 묘사되고 있고 그들의 얼굴과 옷에 입혀진 다양한 색채는 개인 고유의 분위기를 전달한다.
그리하여 관람자는 단 한 장의 그림 속에서 유일무이한 한 '개인'으로 표현된 장애아들의 초상화를 마주 보며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개념적 경계를 벗어나 이들 각각을 사람 대 사람으로 대면하게 된다. 양은주의 그림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주선하는 일종의 중개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듯 사람 사이의 눈높이를 맞추고자 한 이 그림들 앞에서 우리의 마음은 선뜻 편안해지지 않는다. 이는 전시장의 큰 벽면에 걸려 있는 이 장애아들의 모습이 사회 속에서는 그 존재감을 상실하고 만다는 사실에서이다. 그리고 마치 졸업앨범의 한 페이지처럼 줄지어 모여 있는 이들의 초상이 그들끼리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적 소수자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 이처럼 양은주는 사회의 그늘에 숨겨져 있던 사람들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그들을 그림으로 그린다. 일상의 안이함에서 벗어나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현실을 다시 한번 바라볼 것을 권고하는 작가의 의도대로 양은주의 작품들은 현실 속에서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수많은 인간관계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녀의 그림은 백인과 유색인, 남성과 여성, 부자와 빈자, 정상인과 비정상인이라는 인위적인 잣대에 의해 희생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현실을 생각하게 한다. 다만 그녀가 앞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그 처절한 현실을 영화이미지 시리즈처럼 이미지화해 버릴 것인가 아니면「정신지체 아이들」같은 작품처럼 그 현실의 리얼리티를 강렬하게 살려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녀의 선택에 따라 그녀가 재현하는 현실의 모습은 실제에 가까워질 수도 픽션에 가까워질 수도 있다. ■ 김은영
Vol.20051118b | 양은주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