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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1117_목요일_05:00pm
책임기획_고원석
브레인 팩토리 서울 종로구 통의동 1-6번지 Tel. 02_725_9520 www.brainfactory.org
계속해서 흘러가 버림으로 인해 그 실체가 불분명한 '현재'의 속성을 특정한 형태로 고정시키고자 하는 것은 조각의 본원적인 의도 중 하나이다. 흐르는 시간의 순간성을 연장하는 조각에는 본질적으로 시간의 개념이 이입되어 있는 것이다. ● 2003년, 갤러리 사간에서의 첫 개인전을 통해 박진범은 조각의 본질적인 시점적 성격을 넘어 특정 시점의 고정을 주요 개념으로 한 조각 작품들을 보여 주었다. 작가의 말과 같이 '냉장(冷藏), 냉동(冷凍), 염장(鹽藏)' 등과 같은 저장의 종류들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화하는 연속적 속성의 당위성을 거부하고, 원하는 시간의 속성을 계속해서 유지하고자 하는 파격의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박진범은 이러한 '저장'의 시간적 속성을 모티브로 하여 '무수(無水)푸탈산(phthalic anhydride)'이라는 독특한 재료를 사용, 주로 냉장고나 금고와 같은 사각형의 물체들을 조각하였다. 평범한 물체에 비해 융해점이 지극히 높은 이 독특한 재료로 만들어진 흰색의 조각 작품들은 섭씨 123도 이하의 온도에서 항상 냉동되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음으로 인해 시간의 연속적 흐름과 함께 변화하는 속성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상온이 이미 빙점을 넘어서고 있어 냉동 상태를 항상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독특한 표면 질감을 보여주고 있는 사각 형태의 내부에는 낮은 조도의 조명이 켜져 있어 은은한 불빛이 작품 표면까지 새어 나온다. 이러한 그의 전작들은 주로 조각과 시간의 연속적 속성 간의 근원적인 관계에 대한 질문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번 브레인 팩토리에서의 개인전에서 박진범은 전작들에서 나타난 개념의 독특한 변형을 통한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평소 의자의 디자인적 성격과 형태에 관심을 가져왔던 작가는 완성된 의자의 형태를 분석하여 종이 위에 도면으로 옮겼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통해 완성된 도면을 가지고 얇고 네모난 합판 위에 의자의 다양한 부속들을 재단한다. 재단선을 따라 커팅이 된 이 합판은 네모난 가방 형태로 제작되어 손쉽게 이동할 수 있다. 원하는 장소에서 펼쳐 놓고 각각의 부속들을 떼어서 조립하게 되면 완성된 형태의 의자가 된다. 이러한 일련의 방식을 통하여 작가는 재료의 물성에서부터 시작, 일련의 수공적 작업을 거쳐 특정한 형태를 만들어내는 기존의 조각 방법을 탈피하여 완성된 형태에 대한 관조로부터 그 형태가 만들어진 선후 순서를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의 유희를 벌이고 있다. 작가는 단순히 시간의 일향(一向)적 흐름을 거부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원래의 형태가 언제든지 손쉽게 복원될 수 있는 특정한 시점을 발생시키고 그 시점에서의 상태를 '보존'시켜 놓음으로써 보다 읽히기 어려운 시간의 유희를 감행한 것이다.
시간의 선형적 구조를 거스른 이 의자 조각들은 조각 작품의 예술적 원본성 또한 거스르고 있다. 완성된 형태만을 보자면 작가는 기능적, 장식적 용도를 가진 의자들의 형태를 재현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 의자들은 분해와 조립이 가능하고 이동이 매우 간단하므로 작품이 갖는 권위와 무게까지 부정해 버렸다. 대개 예술 작품의 원본성은 디지털화된 방법에 의해 무너져 버리는 것이 기술복제시대 이후 우리가 흔히 목도했던 양태들인데, 박진범의 작품들은 매우 아날로그적이고 기계적인 방법론을 택하여 분해와 조립, 복제 등의 작업을 실행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완성된 형태와 그 형태의 부속들이 재단된 합판, 가방과 미니어쳐 등을 함께 전시함으로써 스스로 감행한 시간적, 개념적 유희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사고에 주로 개입하는 주요한 개념들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것은 의외로 쉽지 않다. 시간의 선적 구조와 조각 작품의 개념, 재료의 물성과 공간의 한정성 등을 모두 끄집어 낸 박진범의 의자 조각들은 독특하고 명상적인 해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 고원석
Vol.20051117d | 박진범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