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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1116_수요일_06:00pm
갤러리 아트링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11번지 Tel. 02_738_0738
관성(慣性)으로부터의 탈피 - 잠시 멈춰 서다 ●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나름대로 존재 이유를 가지고 있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물론이고 생명이 없는 무생물도 존재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인간 자신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의 사유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수한 철학자와 종교인은 물론이고 모든 사람이 한 번씩 자신에게 던져보는 질문이 아닐까?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신이 만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냥 내던져져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것이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인간 현존재는 그것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인간을 초월해서 인간 현존재의 실존과 본성을 파악하는 것뿐이다. 나 또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자문하지만 내가 풀어야 할 몫이 아니라고 애써 물음을 비켜간다.
그렇다면 신(神)이 원하는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 신은 기도하고 절하기보다는 행(行)함을 먼저 하는, 은총을 기원하기보다는 자기반성을 먼저 하는 그런 사람을 바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는 신성(神性)을 찾아내어 신을 닮은 인간이 바로 성인(聖人)이 아니겠는가 신의 존재 이유를 안다면 인간의 존재 이유 또한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 같다. ● "그러나 우리 인간은 연약한 존재이기에 멀고 어려운 신성(神性)을 찾기보다는 가까이 있는 자신의 고통을 먼저 해소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채우고자 기도하며 신에게 의존한다. 나도 그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다. 그래서 다들 간절한 소원 하나씩은 품고 신에게 의존하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우리가 신(神)께 간절히 소망하는 것은 무엇일까?" ● "한번쯤 그 복잡한 길 위에 가만히 서 보고픈 충동을 느낀다."항상 걷고 있는 우리는 각자의 길 위에서만 익숙한 채 주위를 돌아보지도 걸음을 멈추려 하지도 않는다는 걸. 그래서일런지 거슬러 발을 멈추고, 귀를 막고, 그들이 지나간 길 위에 가만히 서 본다."_작가 노트에서 ● 그녀의 작품이 던지고 있는 화두(話頭)는 우리 인간들이 개별적으로 시간 속에 어떻게 있느냐는 「있음」의 문제, 즉 실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운동하던 물체를 가만히 놓으면 계속 움직이려는 관성을 갖고 있듯이 사람들도 우주의 모든 만물처럼 관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관성 속에 안주하여 인간들은 그 길을 벗어나기를 꺼려하고 자신의 걸음을 멈추지 않으려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상태로는 자신의 존재를 깨닫기 힘들며, 그렇다고 이러한 관성을 깨뜨리는 것 또한 무척 힘이 들고 고달픈 여정이 될 것이다.
마르틴 하이데거는 그의 저서 『존재와 시간』에서 존재와 관련하여 "각자 자기의 존재를 존재해야한다", "인간에게는 존재함에 있어 그 존재함이 문제가 되는 존재"라는 매우 모호한 표현을 사용했다. 그 이면에는 인간은 존재가 확정된 것이 아니라 가능 존재이고, 각자 자기의 존재(각자성)이며, 시간적인 존재라는 내용이 담겨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 오선영의 작품 속에는 과연 현대 사회에서 "나"를 규정할 수 있는 범주가 무엇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으로 점철되어 있다. 일상적 자아가 그 걸음을 잠시 멈추고 본질적 자아를 대상화하여 관찰하고 객관적으로 묘사하여 인간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내면적 성찰을 도모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 까닭에 오선영의 작품은 검소한 색조를 사용하지만 결코 어둡지 않고, 외로워 보이지만 따뜻함과 함께 깊은 맛이 배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몰입되는 느낌을 주고 있다. ● "...그 길 위에서 언젠가 인사 없이 만났던 무수한 사람들과 또 그렇게 인사 없이 헤어진 수많은 얼굴들을 기억한다. 긴 시간 지나쳐간 그들이 한동안 내 작업 안에 있었으며, 가진 것 없이 무겁던 어깨와 얼어붙듯 차갑던 걸음들을, 또 그 걸음이 지나던 그 길의 모습들을 판 위에 새겨갔던 시간들이 있었다..."_작가 노트에서 ● 상황적 위치나 존재가 인간의 의식 그 자체를 완전히 지배하지는 않는다 하여도 상당 부분 영향을 받는다. 작가는 그와 인연을 맺었던 상황과 사람들을 기억하고, 작품을 통하여 되돌아보면서 인간이 타인을 위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사유(思惟)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이 타인을 위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한 질문에 접하면서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어떤 존재인가? 라는 근본적 물음이 새삼 다가왔다 작가는 작품의 주요 소재이자 자신의 비유이기도 한 "그릇"을 통하여 가능 존재로서의 자신을 그리고 있다. 때로는 이 세상에 덩그러니 던져져있는 자신을, 때로는 보호 속의 자신을, 그리고 때로는 허공 속에 그릇을 뒤집음으로써 무욕, 무소유의 상태에서 오히려 자립한 자아를 발견하기도 한다. ● 하지만 작가는 진리의 거대한 바다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채 그녀 앞에 누워있을 뿐이라는 것도, 자신은 때때로 그 바다에서 매끄러운 조약돌이나 예쁜 조개껍질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주워와 즐기고 있을 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불멸의 가치를 찾기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자 최선의 방법이 관성으로부터 벗어나 발을 멈추고 스스로를 관조하는 일이요, 동시에 그것이 진정한 자아를 성찰할 수 있는 길임을 관람자에게 침묵으로 암시하며 동참을 호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 한미애
Vol.20051116c | 오선영 판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