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wind

박경범 개인展   2005_1115 ▶ 2005_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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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1115_화요일_05:00pm

가나포럼스페이스 서울 종로구 평창동 97번지 Tel. 02_720_1020

신인류, 타이탄의 족적, 그리고 컵 속의 세계...... ● 신화적 상상력의 세계와 마법의 세계는 엄연히 현실과 함께 존재한다. 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의 선풍적인 인기가 몰아쳐간 이후 판타지는 현실 세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하나의 구성 요소가 되어버렸다. 문제는 톨킨이 창조한 판타지 세계의 진정한 의미는 퇴색하고 그 부분들만이 의식없이 차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톨킨의 세계는 종을 뛰어넘는 단결과 우정, 역경을 극복하는 의지와 긍정적인 정신 그리고 궁극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다. 톨킨은 말썽쟁이 피핀과 메리뿐만 아니라 골룸에게도 생의 의미를 부여했다. 중간계의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이 역할을 부여받아 악의 세력과 맞서는 이야기, 그것이 톨킨이 창조한 판타지의 세계이다. 박경범의 전시서문을 엉뚱하게 톨킨의 작품 세계에 대한 이야기로 문을 여는 것은 그의 개인전을 관통하는 화두가 인간, 생명, 그리고 우주라는 점에서 톨킨의 주제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박경범의 일관된 주제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첫 번째 개인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박경범_a self-portrait, Angel_아크릴, 금빛 잎, 폴리에스테르 레진 LED 램프, 오브제_ 가변크기×160×17cm_2005

재구성된 신체 ● 근육질의 단단한 신체들은 투구, 검, 방패, 총과 같은 다분히 폭력적인 도구들로 무장하고 있다. 이 신체들은 두 번째 전시에서는 이집트 파라오의 얼굴을 하고 더욱 단호하고 위협적인 모습으로 진화한다. 폭력적인 신체에 스스로 살아있는 신이었던 파라오의 엄숙하고 장엄한 위용이 더해진다. 폭력적인 힘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망을 가진 인간의 모습이자 신의 모습. 하지만 이 인간신은 파편화, 절단, 해체를 통해 재구성된 신이다. 일단 해체되고 절단된 신체들은 재조립되어 새로운 신인류로 탄생한다. 자웅동체의 신인류. 신의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 무생물적인 도구를 장착하고 더 이상 유기체도 무기체도 아닌 이상한 중간단계에 걸쳐져 있는 인류의 모습. 신의 얼굴을 한 무기체적 인간의 기이한 모습에서 우리는 선택을 강요받는다. 신의 권좌에서 존엄과 경외의 대상이 될 것인가, 한낮 기형의 생물로 남을 것인가? 신체의 해체와 조립은 정신의 해체와 조립이다. 재구축의 의지를 통해 우리는 폭력과 잔혹에서 탈출할 수 있다.

박경범_become wind_아크릴, 폴리에스테스 레진, C.C.L.F램프, 아크릴 페인트, 오브제_65.5×65.5×8cm_2005
박경범_become wind_아크릴, 폴리에스테스 레진, C.C.L.F램프, 아크릴 페인트, 오브제_65.5×65.5×8cm_2005

타이탄의 족적 ● 벽에서 나와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겨 다시 벽속으로 사라지는 거대한 발들. 이 타이탄의 발은 세계를 창조하고 지배하다가 올림푸스의 신들과의 전쟁에서 패해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진 타이탄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의 타이탄들이 아름답지 못하게 축출되었다면 박경범의 발은 세계의 변화와 진보를 감지하고 그것에 순순하게 순응하는 타이탄의 것이다. '가야할 때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발걸음은 다음 세대의 발전과 진화의 초석이 된다. 결실은 아름답고 거룩한 희생적인 결별을 통해 완성된다.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의미를 깨닫고 단호하고 확고한 태도로 잔혹과 폭력의 세기와 작별할 때 인류는 작가가 바치는 경외심에 합당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박경범_float wind_아크릴, 폴리에스테르 레진, 가죽, LED 램프, 오브제_28×62×8cm_2005
박경범_moon light_아크릴, 폴리에스테르 레진, LED 램프, 오브제_29.5×24×8cm_2005

컵 속의 우주 ● 타이탄은 벽 너머로 성큼성큼 사라지고 그 자리를 이제는 생명을 대변하는 다양한 아이콘들이 차지한다. 작가는 인간과 생명에 대한 존경과 경외를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소재와 모티브를 사용하고 있다. 작은 꽃들, 요정들, 절단된 신체들(조각난 신체는 앞서 말한 것처럼 긍정적 재결합을 위한 전단계이다.), 그리고 말라붙은 포도 덩쿨같은 생명을 대변하는 소재들이 작은 컵 속에 박제되어 있다. 그 주제와 표현 방식이 아이러니하다. 생명의 순환을 계속해야할 것들이 채집되어 투명한 컵 속에 박제되어 있다. 컵 속의 생명들을 보고 티컵 강아지와 분재 고양이가 떠올랐다. 인간의 잔혹하고 이기적인 유희본능을 위해 희생된 생명들. 어렸을 적 필자는 길가에 핀 예쁜 꽃은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라고 할머니께 배웠다. 나아닌 타인과 그 아름다움을 공유하고, 생명의 순환을 통해 그 다음해에도 그 아름다움을 다시 볼 수 있도록. 역시나 숨쉬는 생물인 당신, 이기적인 욕심을 위해 작은 생명에 위해를 가하지 말라. 작은 생명에 대한 존중 없이는 당신의 생명도 존중받을 수 없다. 컵 속의 생명들을 통해 작가는 말한다. 세상의 모든 생명들에 경외심을 품어라. 그러면 너희도 경외의 대상이 될 지니, 그때 우주와 네가 하나가 되리라. 박경범의 작품을 보는 당신들, 겸허하고 낮은 자세를 위해 스스로 컵 속으로 들어가라. 외형적으로 완전히 달라보이는 박경범의 작품 세계를 꿰뚫는 주제는 하나이다. 겸허한 마음으로 생명에 대한 존경을 품을 것. 자연과 우주에 대한 겸손한 마음과 자세는 분명 각박하고 잔인한 현실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 김선영

Vol.20051115b | 박경범 개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