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산수

조영설 회화展   2005_1111 ▶ 2005_1120

조영설_무림산수-昇_캔버스에 유채_193.9×518.2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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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1111_금요일_06:00pm

갤러리호 서울 서초구 서초동 1538-4번지 Tel. 02_588_2987

虛靈과 無心의 사이에서유채의 맛과 무소유의 몸짓 ● 비록 오랜 방활 끝에 처음으로 갖는 개인전이지만 처음 개인전이라고 할 수 없는 의외의 화풍이 세상에 드러나고 있다. 그것은 여러 유형의 화풍을 정돈하여 자신의 스타일로 개척해 나아오는 과정 속에서 뚜렷한 방식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무엇이 등장하였기 때문이 아니며, 오로지 자신을 비우는 과정에서 서서히 드러난 것이다. ● 조영설의 근작들은 회화의 원초적인 몸짓과 같은 난화와 무작위의 기교와 같은 미묘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필자가 느낀 바는 작가가 무엇보다도 천진무구한 무기교와 무소유의 철학과 같은 관조적인 경지를 겨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그림을 그린다기 보다는 단순히 긋거나 비비는 행위 자체의 각인과 같은 것으로서,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바가 매우 초탈한 무엇으로 보인다. 그것은 잘 그리겠다는 것도 없고, 무슨 이미지나 대상성을 확고히 하여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을 배제하는 과정에서 발현하기 때문에, 작품을 제작하는 첫인상은 마치 채색을 위한 연습장을 거대하게 확대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 작가는 우직하리 만치 완고하게 유채의 맛을 즐기며 고집한다. 그것은 유채의 끈적끈적하고 오버랩 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미묘한 뉘앙스를 드러내는 것을 선호하여 일반적인 아크릴이나 공업용 안료와 같은 인스턴트 적인 질료를 거부해왔기 때문이다. 뻑뻑하고 질기며, 단단한 캔버스 위에 미끄러지듯이 연속적으로 그어대는 선의 병치 효과와 텅 빈 공간을 달리는 칼리그래피 적인 필치가 연속되는 공간을 차지하게 한다. ● 이러한 필력은 단순히 생성된 것이라기보다는, 유채의 맛을 살리기 위한 소재적 특성을 염두에 두고 캔버스가 튕겨내는저항과 작가의 손과 팔에서 나오는 행위의 대결과 같은 필치들이 일정한 에너지를 가지고 캔버스 위로 횡단하게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출중한 힘과 기가 질료와 행위의 몸짓으로 베어 나오도록 한다. 그것은 다른 의미로 작가의 오성(悟性)이 붓질의 행위와의 일체감을 갖기 위한 시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조영설_무림산수-遊_캔버스에 유채_130.3×162cm_2005
조영설_무림산수-孤_캔버스에 유채_162×130.3cm_2005

3. 칼리그래피와 난화의 사이 ● 그것은 단순히 붓질의 효과만의 과정이 아닌 작가가 무기교적으로 발현하는 힘을 통해서 무수히 그어대는 반복적 필치로 살아나게 하여 샘솟는 듯한 힘을 충만하게 하는 무념의 도상학(圖像學)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단순하고 직접적이며, 보다 미묘하면 섬세한 아이디어를 통한 작업이 아닌 포기와 체념의 무심에서 나오는 선의 힘으로 보인다. 그래서 몰아 속에서 빚어지는 상념의 세계 혹은 로베르토 마타(Roberto Matta)나 잭슨 폴록(Jackson Follock)의 회화에서 등장하는 드리핑 혹은 액션의 모습을 동양적을 재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사이 트웜블리(Cy Twombly)의 난화적인 표현과도 미묘한 연관관계를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하나의 선에서 자신을 지운다. 그래서 하나의 화폭에서 그어지는 만큼 자신의 자취도 사라져간다. 그것은 어린아이가 그어대는 무작위적인 원이나 낙서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그렇기에 더욱 강한 힘이 드러나기도 한다. ● 평소에 작가는 줄리어스 비쉬에르, 조제 미쉬에르, 조안 미첼, 사이 트웜블리 등의 작품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 왔고 이들이 추구해 나아오고 있는 방법론에 연구의 초점을 맞추어 왔다. 그래서 이들이 추구하고 있는 추상표현주의와 후기 미니멀 양식 등에서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선의 사용과 밀도감의 처리 방식에 대하여 주목하였던 것이다. ● 또한 로베르토 마타, 안토니 타피에스(Anthonie Tapies), 크리포드 스틸(Clifford Stijl) 샘 프란시스(Sam Francis) 등의 혼합추상표현주의 화가들에게도 관심을 보여 그들의 방식을 동양적인 사색의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방법적 특징이 무엇인지를 확인하였으며, 초기 4-5세 아동이 표현하는 미묘한 난화(亂畵)에도 관심을 보여, 보다 천진난만한 화면을 이룩하고자 하였다. ● 또한 중간색조나 검정 혹은 드물게 사용되는 원색은 한국적인 토속성이 베어 들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그것은 색채의 선택에 있어서 동양적 서정성과 명상 관조의 세계를 추구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조영설의 작품들에는 스트로크와 터치의 사용이 동양적인 서체추상에서 발현하는 뉘앙스와 정서가 숨겨져 있다.

조영설_무림산수-秘_캔버스에 유채_72.7×91cm_2005
조영설_무림산수-寂_캔버스에 유채_72.7×91cm_2005

4. 허령(虛靈) ● 캔버스를 대하면서 작가가 가장 염두에 두는 점은 출발선상에서 마음을 최대한 비우는 것인데, 그것은 허령(虛靈)의 상태로서 자신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기교가 가미된 무작위 몸짓에서 비구상의 가능성을 찾고 필력에서 발현하는 것 즉, 결과를 중시하는 자신의 회화가 나아가야 할 바를 찾는 과정에서 비롯된 하나의 소통 즉 허공과의 대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초현실주의나 추상표현주의에서 연구한 오토마티즘(automatism)과도 통하며, 동양의 화가들이 지향하는 몰아(沒我)의 경지와도 통한다. 그래서 자신을 비우고 또 비우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드러나는 필치와 무작위의 형태에 의해서 이룩된 채색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미묘한 유채의 맛이 이루어진다. ● 결국 캔버스는 작가 자신을 거세한 또 다른 자아가 이룩되어 자신이 비워진 혹은 자신의 속세적 욕심이 거세된 하나의 덩어리 혹은 흔적이 배출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자신의 내면에서 발현하는 무심 어린 상념과 연결 지으려 는 통로가 된다. ● 그것은 작가가 스스로 터득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막연히 이러한 방법이 등장하여 고착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작가가 제주도 등지를 여행하면서 자신의 가슴속에서 발현하는 허령에 대한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거니와 불교적 색채와 직관적인 통찰력을 결합하여 발현하는 무기교의 기법을 채택하는 과정에서 이룩한 통렬한 허령의 덩어리가 된다.

조영설_무림산수-隱_캔버스에 유채_116.7×91cm_2005
조영설_무림산수-感_캔버스에 유채_80.3×100cm_2005

5. 두 가지 시리즈로의 전개 ● 시리즈 A는 「난화가 있는 풍경」들로서 아동미술의 표현방법을 중시하는 계보를 따르고 있다. 그것은 전체적으로 특정한 구도에 의해서 제작되는 태도를 배제하고서 이룩하는 캔버스 회화의 또 다른 가능성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이룩한 것으로서 전술한 현대화가들의 화풍에 관심을 두면서 점차적으로 작가의 스타일처럼 이룩된 것이다. 그것은 색채와도 연결 지어져 있지만, 두드러진 색상이 전체적으로 화면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심의 상태에서 무작위로 선택한 색상이기 때문에 어떤 계열색이나 일관된 패턴에 의해서 추출된 것이 아니다. ● 시리즈 B의 경우는 「제스처가 있는 공간」으로서 행위와 여백의 상관관계를 매우 중시한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작가가 여백을 염두에 두고 제작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구도가 형성된다. 그래서 일반적인 칼리그래피 회화가 비구도를 지향하는 것과는 다소 다르게 완성되고 있다. 그리고 이따금씩 자신만이 알고 있는 기호나 문자가 드문드문 드러나기도 한다. 그래서 자신의 내면 속에서 형성되는 언어의 기초가 되는 내용들이 흔적의 몸짓으로 등장하고 있다.

조영설_무림산수-結_캔버스에 유채_72.7×91cm_2005
조영설_무림산수-逍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2005

6. 결어 ● 결국 조영설의 근작들은 자신의 없음 위에 새겨진 부재의 회화 혹은 비움의 회화이다. 그것을 통해서 작가는 그간의 고통을 벗고 화단에 자신의 존재를 거침없이 드러내고자 한다.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지만, 없다고는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표현되어있지 않게 보이지만 많은 것이 드러나는 그의 근작에 부쳐 필자는 조심스레 이러한 글을 쓰는 바이다. 금번 늦가을에 펼쳐지는 조영설의 전시에 많은 관객들과 화단의 관심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 박기웅

Vol.20051111b | 조영설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