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틈

수면 위로 들어난 레이어들을 옮겨 다니는 작업은 마치 장기판을 연상시켰다. 정해진 교차로에는 숨을 곳이 없으며 단순히 실을 엮을 조건들 위에서 반응 하였다. 그렇다 반응이 맞을 것이다. 지나간 곳을 다시 거치지 않으려면 선택사항은 그렇게 많지 않다. 통속적인 세상 안에서도 남이 거쳐 간 찜찜한 자리위에 오래 머물 수는 없지 않은가? 이미 설정된 공간을 바늘이 지나가고 실이 따른다. 위로 지나가면 반듯이 그 다음은 아래로 지나가는 순환은 디지털의 픽셀과 같지만 그와는 다르게 고지식하고 순진하다. 의도하지 않은 움직임은 번거로움과 부담을 엮어놓는다. 실이 모여 동아줄이 되길 원하지만 엉킨 것을 풀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오현아_시간의틈 ⅡⅦⅧ_채, 자수_28×28×14cm_2005

오현아_시간의틈 Ⅷ_채, 자수_28×28×14cm_2005

오현아_시간의틈 Ⅷ_채, 자수_28×28×14cm_2005

이미지는 아무래도 좋다.... 아닌가? 한정된 공간과 지불할 조건위에서 다음을 상정하다보면 표현은 옹색해지고 그 개연성은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 좁아지는 개연성 속에서 자유로움이란 착각이 아닐까? 바늘 끝에라도 내가 앉을 자리가 있을지 의심하면서 알알한 아픔에 나의 짜투리 시간을 누더기처럼 한땀 한땀 바느질 하였다. 상련을 앓는다.

오현아_시간의틈 ⅣⅤⅥ_채, 자수_28×28×14cm_2005

오현아_시간의틈 ⅨⅧⅩ_채, 자수_28×28×14cm_2005

몸의 이미지는 보여 지는 허상이고 실체를 구별하는 것은 단순한 선의 기호이다. 좁은 공간 속에서 허상의 실체는 그러나 붉은 색에서 작은 반전을 기대한다. 붉은 색은 최근 가까이 무의식 속에서 선택되는 색이다. 이것이 한시적인 취향이라 해도 해바라기처럼 또는 중간에 홀로 스스로를 단순화시키는 형상에 강렬한 붉은 몸은 유일한 전략이다. 철망과 바늘은 동질이라 서로를 거부하지만 이내 그 자리를 유약한 붉은 실이 그물에 걸린 미역처럼 최소한의 생명감을 흔적 한다. 의지를 필수 있는 선택이 한정되고 움직임의 반경이 제약을 받을 때 단순함은 그 빛을 발한다. 단순함의 반복은 재래적인 삶의 실체이지만 또한 숭고성을 기억하게도 한다. 종교성을 말하기에는 실로 겸연쩍지만 하루 종일 같은 행위를 반복하면 신체의 노근함은 정신적 마취를 부른다. 실의 단순함에 매료되고 시간은 그 구체성을 잃는다. 그래, 시간이 두려웠다. 공간을 가로지른 어색한 심상들의 만남과 반복되는 일상은 잡념을 만들지만 그러나 틈의 시간 속에 걸려져 명상이 되길 원한다. ■ 오현아

Vol.20051109d | 오현아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