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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1107_월요일_06:30pm
스페이스 함 서울 서초구 서초동 1537-2호 렉서스빌딩 3F Tel. 02_3475_9126 www.lexusprime.com
또 다른 장소 - 사라진 '장소성'의 복원을 위하여 ● 흔히들 오늘날 우리 삶에서 '장소'가 사라졌다고 한다. 여기서 장소, 사라진 장소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장소(場所, place)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용어이다. 그러나 이 용어의 매우 다층적인 의미가 무시된 채 때로 모호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장소는 어떤 특정한 사건이 이루어지는 장(場), 또는 그 사건이 이루어지는 환경, 그리고 이러한 사건을 통해 부여된 상징적 의미 등과 관련한다. 여기서 장소는 공간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일정한 활동이나 사물들 또는 환경을 가지는 위치들 간의 연장으로서 추상적이고 물리적인 범위와 관련되는 것이 공간이라면, 장소는 체험적이고 구체적인 활동의 기반이면서 맥락적이고 문화적인 의미와 관련된다. 물론 공간과 장소는 분리된 두 개의 실체나 사물이 아니라 동일한 것의 두 측면을 지칭하긴 하지만 말이다. 따라서 장소는 인간과 그것을 둘러싼 사건 등으로 의미가 부여된 공간이다. 장소에의 체험은 인간의 활동(사건)과 공간 환경간의 관계를 통해 구축되며, 의미 부여의 동기가 된다는 점에서 인간과 분리되어 설명될 수 없다. 다시 말해, 장소는 이미 '체험된 대상'을 전제하며 엄격한 의미에서 '체험의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이므로, 인간의 의식이 물질적 존재와 맺는 관계의 총합체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장소성'과 부딪친다. 장소성(sense of place)이란 다른 곳과 구별 되는 단위 장소의 고유한 특성을 의미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부여하거나 또는 생성된 장소관련 의미이다. ● 근대화 이전 세계의 모든 공간들은 나름의 특정한 장소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근대화가 이뤄낸 빌딩, 상점, 거리 풍경 등은 유사지역, 유사도시를 낳으면서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특정한 장소 체험, 즉 특정한 장소성을 사라지게 하였다. 장소성이 사라진 빈자리를 이른바 사이버 상의 가상공간 같은 무장소(Placelessness)로 대체하여 살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직면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니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무엇보다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장소 체험, 즉 특정한 장소성(sense of place) 이다. ● 『또 다른 장소』展은 이러한 사라진 '장소', 즉 '특정한 장소'를 주목하는 전시이다. 그것은 이 곳이냐 저 곳이냐를 선택하여 사건을 만들 곳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택의 논리 이전에 체험했던 또 다른 장소를 바라봄이다.
산수(山水)를 새로운 차원으로 해석하여, 태도로서 문인적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임정주( 1975-)는「산에 피는 꽃」 연작을 통해 바니타스(vanitas)적 교훈과 생의 의지를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숲으로 대변 되는 산수자연은 그 아름다움에 꽃으로 화하였다. 씨와 먼지 사이에서 변형을 더해가는 꽃. 즉, 탈피와 동요를 거듭하는 꽃은, 구멍을 뚫고 붙이는 그의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잎이 되고 숲이 되고 산이 되어 어떤 경계도 가지지 않는 열려진 장소가 된다. 여기서 향으로 무수한 구멍을 뚫는 작가의 행위 자체는 제작 그 이상의 의식적 제스처로서 마치 몸을 씻는 것과도 같은 일종의 정화의식과도 같다.
기억과 자아를 동일시하며 끝없는 시간에 시선을 주는 홍민정(1980-)은「기억의 공간」을 그려내고 있다. 그에게 기억은 자신을 스쳐간 시간들이며, 자신이 그리는 기억은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시간을 담아둔 장소이다. 그의 시간은 이미 침몰해 무겁게 정지되어 있는 그 무엇이 아니며 역사를 소거하는 갑작스런 부딪침이 아니라 긴장감이 감도는 침전과 부유의 연속적 흐름이다. 따라서 그의 농도가 유연한 먹의 깊이를 통해 기억의 '공간'이 아닌 특정한 장소로서의 환타지를 맞이한다.
장소를 지시하지만 잘려진 의자, 외로운 실내전등, 벽을 암시하는 가녀린 선 등과 흔들리는 'Black Square…'. 이경림(1969-)의 그림 속 물건들은 언젠가 맞닥뜨릴 사건을 암시하는 'Black Square'를 통해 현실보다 더 극화된 공간 이미지로 관람자에게 다가선다. 캔버스 안에 갇힌 물건들은 열려진 듯한 'Black Square'를 통해 캔버스 밖으로의 탈출을 감행하고 그림 앞에 서 있던 관람자는 저마다 실체화되지 않은 공간을 특정한 사건이 일어난 특정한 장소로 돌려놓는다. 따라서 내러티브가 넘실대는 그의 그림은 터무니없는 낭만적 신화로 덧씌워진 추억의 공간이 아니며, 특정한 사건이 벌어지는 저마다의 '장소'이다.
존재와 부재가 만나는 길목에서. 일상 속 사물「다시보기」의 즐거움을 아는 전현선(1980-)은 각양각색의 병(bottle)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보고 있다. 병은 의인화되어, 긴장된 형태로 무리를 짓기도 하고, 유혹적인 자태로 가슴을 내보이고 있으며, 원근법적 구조로 도시를 재현하기도 한다. 오리고 또 오려 붙이고 붙인 종이나 끝없이 얽힌 재봉 실 등으로 그려진 작업들에서 작가는 자신의 모습을 철저히 타자화되어, 일상 속 사물을 통해 사건을 목격하는 목격자로서 서성이고 있다. 특정한 장소, 우리로부터 사라져 버린 장소를 목격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유하영(1980-)은 자신에게서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증후군적 증상들에 주목하면서 타인과 공유하기에는 불가능한 사적 장소를 제시하고 있다. 「분실센터 - 환각증후군」에서 유하영은 여자이며 아티스트인 실제의 자신, 자신의 삶과는 다른 주인공이다. 마치 모노드라마의 배우처럼 그녀는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나는 '화물운송을 하는 남자이다. 끊임없이 편도 1차선 도로를 차를 몰아 달린다. 그곳은 늘 새벽녘이고 안개와 함께 항상 서늘한 곳이다. 차 안은 웅웅대는 라디오 소리로 가득 차 있다. 휴식을 위해 휴게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과 나… 그 곳의 탁자의 장식과 커피 잔의 모양… 늘 혼자다.'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환상과도 같은 자신의 상상의 경험을 리얼한 삶으로 기억하는 작가에게 그 환각의 장소는 무엇일까? 지속적인 장소의 공백(blankness) 체험에 대한 몸서리처지는 저항의 몸짓인가… ● 유하영, 이경림, 임정주, 전현선, 홍민정 등 5명의 작가는 한국화와 서양화라는 장르적 귀속에서 벗어나, 관람객으로 하여금 인간 활동의 토대로서의 '장소'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고 사라진 장소, 잃어버린 '장소성'의 복원을 위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상실된 인간성과 장소성의 회복을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 김주원
Vol.20051107c | 또 다른 장소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