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건물 프로젝트∥

이용덕 조각展   2005_1107 ▶ 2005_1127

이용덕_공공건물 프로젝트∥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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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1109_수요일_05:00pm

SC제일은행 본점 로비 서울 종로구 공평동 100번지 Tel. 02_3702_3114

공공건물 전시프로젝트 기획의 변 ● 기존엔 다양한 장르의 예술작품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방어적인 기능을 지닌 준비되어진 공간만이 있었다. 전시장이라고 명명되는 이 공간은 작품과는 불과분의 관계에 있는 그래서 결코 분리 될 수 없는 규정처럼 정해진 범주였다. 이제는 공공미술에 대한 관심과 대안적인 방법으로 전시장에서만의 전시개념이 아닌 전시장 밖의 공간, 즉 실 공간으로 작품이 놓여지게 된다. 방어적인 기능에서의 탈피와 그로 인하여 추구되는 공간의 확산은 그 작품으로 인하여 공간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을 기초로 시작된다. 그러한 환경적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한 대형 입체작품의 경우에는 공간에 점령당하지 않는 자체의 힘이 있으며 그 힘은 공공미술로의 접근을 우선적으로 가능하게 한다. 항상 예상된 관람객의 인원과 관객층은 미술인구의 저변확대를 바라고 있지만 늘 제 자리 걸음만을 하게 한 폐쇄된 전시문화의 틀 속에 있는 그들만의 문화, 우리들만의 파티에서 다양한 대중과 함께 하려는 목적으로 대중을 찾아 나온 공공미술은 전시장에서 수용하지 못했던 대형작품의 전시와 기간적인 문제도 해결책을 찾게 한다. 대중들의 예술에 대한 인식의 문제를 논하기 전에 예술과 대중이 생활 속에서 접할 수 있는 상황적 접근이 조성되어야 하며, 스스로도 난해한 예술의 이해에 대중의 동감을 바라는 것이 아닌 최소한의 환경조성으로 대중의 이해를 도모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회화와는 다르게 일상 공간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조각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일상적인 시야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인식의 폭이 더 멀어질 수 있고 일상의 체험에서 멀어지면 인식에서 기억되지 못해 더욱 외면당하게 되는 것이다. 작품제작에 들인 시간과 과정들을 볼 때 고작 일주일이라는 전시장에서의 예정된 단기간과 고정된 관객들의 관람만으로는 너무 아쉽다는 것은 전시를 했던 당사자들이면 누구나 실감하는 문제이다. 위에 서술한 대중의 확충과 확보된 기간이 공공미술전시의 아주 피상적인 논리로 보여진 것에 반에 이곳에서 전시를 기획한 실질적인 내용을 피력해 보면 이것 또한 두 가지로 함축된다.

이용덕_circular 02_나무_247×60×220cm_2005
이용덕_circular 03_나무_360×120×210cm_2005

개인전시를 개최하기 위해서는 전시장문제에서부터 작품제작뿐 아니라 전시 홍보물 등에 까지 모든 과정에 자금이 투자됨은 당연한데 이러한 모든 자금을 충당하기 위한 현실은 어렵기만 하다. 작품의 공급만 있을 뿐 수요가 없는 예술의 악순환 구조에서 전시를 위한 자금의 조달은 더욱 힘겹기만 하고 대중에게서 분리 되어 유입시키지 못하는 일반적인 전시 상황으로 이러한 문제의 해결점을 더욱 어려워진다. 예술행위를 위해서는 개인이나 기업의 투자가 동반되어야 하며 이를 수용하는 관객들도 감상과 구입을 수반해야 하는 것이 전형적인 경제 논리이지만 전시를 개최함과 진행함에 있어 이러한 이론의 논리는 단지 이론만으로 멈춘 것에 어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음은 그것이 이미 익숙한 사실로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이곳 SC제일은행 본점을 전시장소로 선택한 이유는 위치적으로 우선 많은 전시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인사동과 유동인구가 많은 종각 역세권에 위치하였고 대형작품을 수용할 넓은 공간이 있다는 장점과 더불어 예술 참여의 능동적인 기회 제공이었다. 기업의 적극적인 문화사업에의 지원이 요구되는 현실이지만 대다수 기업에서의 문화지원은 다른 예술 영역에 비해 미술에 있어서는 적어도 소극적, 수동적인 양상을 띄고 있다. 그 이유는 공연과 같은 집단적인 예술 활동에 비해 미술 전시는 대다수가 개인적인 행태라 프로세스의 진행과정에 있어 독자적인 양상으로 전개된다. 예술에서 특히 미술 분야는 작가 스스로가 전시를 만들고 그 상황을 대처해나가고 있는데 전속작가나 초대작가와 같이 일부 선택되어진 작가들만이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다. 아트 메니저의 역할을 스스로 해나가고 있는 1인 다역 시스템인 것이다. 공공건물에서 개인전 프로젝트를 기획한 의도는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무대를 열어주는 예술로써의 기업참여와 관심, 일상공간에서의 대중과의 예술체험, 전시장 내부에서 확장된 외부공간에서의 열린 전시를 통해 소통지향의 예술로 접근을 유도함과 동시에 자생적 노력을 거듭해가는 예술가들과 함께 만들어갈 목적으로 공공건물 전시프로젝트는 본 전시를 기점으로 앞으로 새로운 공공미술로의 명맥을 유지해 나갈 것이다. ■ 조은정

이용덕_circular 01_나무_500×160×250cm_2005
이용덕_move in a circle02_나무_155×87×155cm_2005

누적된 시간의 탄력 ● 평붓이나 혁필(革筆)을 이용해 공간에 그려놓은 획이라고 할까, 아니면 야적해 놓은 강철 원자재와도 같은 것이라고 할까. 이용덕이 만들어내는 형태는 말 그대로 공간에 그려놓은 드로잉이거나 혹은 다른 형태로의 변화를 예비하는 일종의 중간단계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자체로 완성된 형태를 지닌 그의 작품은 자기완결성을 지니면서 동시에 무한으로 향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때, 자기완결성이란 작품의 형태가 '닫힌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러한 형태가 '종결'로서가 아니라 순환과 지속의 특성도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무한성의 의미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시작과 끝이 분명하며, 작품의 전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분명히 '닫힌 형태'를 지닌 것임에 분명하지만 그 형태가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는 개방적 속성도 지니고 있다. 말하자면 형태가 끝나는 지점에 마치 형태의 성장을 이끌어가는 생장점이 있는 것과 같은 시각적 효과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그의 작품은 개방과 폐쇄, 활동과 정지, 성장과 응축이란 서로 상반된 두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율적으로 운동하는 듯한 형태와 더 이상의 움직임이 개입할 때 파괴될 수 있는 완결된 구조 사이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긴장. 이렇듯 그의 작품은 서로 대척지점에 놓인 속성들을 함께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 무엇보다 그가 재료로 선택하고 있는 나무가 지닌 정서적 측면을 고려할 때 일면 건조하게 보일 수 있는 견고한 형태와 부드럽고 온화한 재료가 서로 충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그의 작품은 따뜻한 질감, 생명에 대한 암시와 은유 등의 나무란 물질이 환기하는 속성 때문에 유기적 형태에 어울릴 것이란 일반적 기대를 뛰어넘어 중성적이며 건조한 형태를 만들어냄으로써 재료에 의해 쉽게 규정될 수 있는 형태의 한계를 벗어나고 있다. 나아가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나무의 성질과 상관없이 활처럼 휘어지고 굽은 형태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작도 끝도 없이 순환하는 구조에 대해 떠올리게 만든다. 일정한 간격으로 판재에 홈을 내 둥근 형태를 만드는 인테리어 기술에서 힌트를 얻은 그의 방법은 정밀한 계산과 상당한 시간을 투여해야 하는 지독한 노동의 결과물인 까닭에 '시간의 누적'이란 문학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부분도 있다. 더욱이 이렇게 쌓아올린 단층들은 시간의 주름이자 작가에 의해 제조된 나이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 표면은 수많은 세포(cell)들로 구성된 조직으로서 대지(大地)로부터 솟아오르는가 하면 거대한 격랑이 대기(大氣)를 휘저으며 굽이치듯 뻗어나가고 있다. 건조하면서 기하학적인 구조물들이 꿈틀대는 생명의 율동으로 살아나는 그의 작품은 그런 점에서 대지의 에너지가 지상으로 확산되는 자장(磁場)처럼 보이기도 한다. 탄력이 높은 철판을 감아놓은 것 같은 형태는 언제든지 주변공간으로 튀어나갈 수 있는 팽팽한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때로는 외부의 운동에너지가 안으로 응축되며 더욱 견고한 형태로 완성되고 있음을 보여주는가 하면 때로는 내부의 에너지가 외부로 확산되며 공간을 새롭게 규정하는 요소로 작용하는 듯한 형태는 따라서 공간을 활성화하는 특징까지 지닌다. 즉 그의 작품은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매듭이 풀어진 끈이자 대지와 공간의 연결을 예비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나아가 육중한 중량과 공간을 점유하는 체적은 작품의 기념비성을 더욱 고양시킨다. 둥근 형태는 성장과 확산을 반복하며 자기증식의 의지를 드러내는가 하면 형태의 내부로 파고들며 공간을 한정하기도 한다.

이용덕_move in a circle01_나무_160×58×187cm_2005
이용덕_make a circle_나무_143×48×165cm_2005

그러나 한편으로 곡선형의 구조가 끝나는 지점에서 발견할 수 있는 종결부, 잘려나간 피부의 속살로서 나무토막의 표피는 이 작품의 무한정한 성장을 저지시킴으로써 작품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것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종결부가 있기 때문에 작품의 탄성은 더욱 강화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시선은 끝없이 뻗어나가 종국에는 정처 없는 것이 될 수도 있으므로 이 종결부를 통해 자기의 규모를 한정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지층의 단면을 잘라놓은 듯한, 또는 마치 시간을 일정한 두께를 지닌 판(板)처럼 쌓아올린 듯한 그의 작품은 작가의 의도를 넘어서서 자연의 작용에 의해 둥글게 말려들어간 형태를 보여줌으로써 그 자체가 시간의 법칙에 순응하려는 태도까지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형태는 영원히 고착된 것이라기보다 언제든지 탄력을 받아 진동하거나 혹은 넓게 펼쳐질 수 있는 까닭에 멈춤 속의 동요란 시각적, 심리적 효과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보면서 완성된 형태가 상기하는 상징적 의미보다 마디마디를 연결시키며 형태를 만들어가는 지둔한 작업 자체가 이 작품의 주제인지 모른다는 상상을 할 수 있다. 그럴 경우 형태는 어떤 규칙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자율적인 것이 된다. 닫힌 구조와 열린 구조라는 서로 상반된 성격을 지닌 형태만큼이나 그의 작품은 다의적 해석가능성 앞에 열려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두드러진 것은 무엇보다 시간과의 투쟁과정에서 경험할 수 있는 희열이다. 결과로서 형태는 단순하지만 그 과정에 켜켜이 쌓인 시간의 무게는 그만큼 무거울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중량감이 형태를 시각적으로 더욱 탄력 넘치는 것으로 만드는 요소인 것이다. 집적, 누적, 반복이 주는 심미적 쾌감 못지않게 오랜 시간 투여된 노동의 양이 주는 즐거움을 지닌 그의 작품은 온갖 해체의 방법에 점령당해 있는 우리에게 조각의 장르적 가치를 환기시키는 특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다만 노동에의 탐닉이 빠져들 수 있는 형태의 동어반복, 방법에의 함몰은 그가 경계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 최태만

Vol.20051107a | 이용덕 조각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