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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1102_수요일_05:00pm
갤러리 토포하우스 제2전시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4번지 Tel. 02_734_7555 www.topohaus.com
미시적 관점으로 찾은 몽환 세계 ● 덕소에 자리 잡은 김은성의 작업실을 오랜만에 방문한 나는 순간적으로 당황스러움을 감출수가 없었다. 작업실 전체가 기대하지 않았던 꽃 이미지로 가득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벽과 바닥에 쌓인 정방형의 캔버스들과 드로잉들은 그간의 작업에 들인 작가의 시간과 수고를 품고 있었다. 대학원 재학시절과 그 이후까지 전념해 왔던「낯선 산수」의 몽환적 풍경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왔던 터라 아쉬움을 보이는 나에게 작가는 개인전을 계기로 변화해온 그간의 사정을 대충 설명해 주었다.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내가 그린 꽃은 국화이다. 동네 꽃집에서 구입해 화병에 꽂아 놓은 뒤 시간과 함께 말라버린 몇 송이를 소재로 삼아 연작으로 그린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변형되고 겹쳐진 꽃잎들 사이에서 여러 가지 자연의 이미지들을 발견한다. 그래서 나의 꽃그림은 이전의 몽환적 풍경화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결국 작가는 생명이 바랜 채 실내의 테이블을 지켜온「드라이 플라워」를 바라보며 이년 남짓의 세월을 보내었다. 미물(微物)에 대한 집착은 김은성의 즐겨온 습관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아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꽃그림 이전에는 '촛불'에 상당 분량의 시간을 투자해 왔으며 촛불 이미지를 변주하여 표현한 '몽환적 풍경'은 학위 논문의 주제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좀더 말하자면 몽환적 풍경은 타오르는 불꽃의 이미지에 전통산수 이미지를 합성한 것으로 작가는 이 시리즈의 작업에「낯선 산수」라는 제명을 붙였다.
결국 미물에 대한 관찰의 습관은 화가로서 김은성의 작품을 이해하는 단초가 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작가의 작업은 미시적 관점으로 사물을 주시하고 거기에 숨겨진 제삼의 이미지들을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세월로 얼룩진 천정에서 다양한 형상을 찾아내듯 작가는 꽃의 잎사귀에서 곤충이나 인물 그리고 나아가서는 산과 물이 흐르는 풍경 이미지를 포착하고 있다. 사물을 미시적인 눈으로 훓어 보는 태도는 궁극적으로 미물 속에 담겨 있는 자연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 이번 개인전에 선보이는 작업에서 작가가 강조하는 또 하나의 내용은 삼차원적 공간이다. 김은성은 자신의 그린 꽃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감상케 하기 위해 관객들에게「입체 안경」을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그것은 청색과 적색의 셀로판지로 좌우를 꾸며놓은 것으로 안경을 끼고 그림을 보면 어느덧 이미지는 삼차원의 공간을 머금게 된다. 여러 표정을 가진 수십 개의 국화꽃잎 중에서 돌출된 특정 꽃잎들이 나비나 인물이 되어 화면 위를 부유하며 보는 이를 새로운 체험의 영역으로 안내하는 것이다. 입체안경이 만들어내는 삼차원의 공간은 "두 눈 사이의 거리와 청과 적이라는 색상이 만들어내는 착시"에 의한 것으로서 비교적 단순한 원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간단한 원리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수작업으로 연출해 내는 데는 적지 않은 노력과 연구가 요구된다. 그런데 이러한 원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희생해야 되는 것이 있다. 안경의 좌우 색채인 청과 적이 그림의 좌우측에 배치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미지 제작에 원색이 불가피하게 사용되어야 하고 대립적 색상의 사용은 회화적 표현에 제한을 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제한은 실재로 김은성이 극복해야 할 딜레마라 할 수 있다. 향후 이에 대한 해결방안은 입체안경을 제거하고 그림을 대하는 눈의 즉자적 기능을 회복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미물을 바라보는 눈으로 곤충과 인간 그리고 풍경을 찾았으니 그것을 소통시키는 도구로서 회화작품도 안경이 아닌 눈에 의한 것이 되어야 함은 당연한 이치이다.
결국 이번 개인전을 통해 김은성이 보여주고자 하는 세계는 자신이 선택한 소재(꽃)나 방법적(안경)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전의「낯선산수」와 연계하고 있다. 그것은 주변의 사물에 대한 미시적 관점으로 그 건너에 있는 세계를 발견해 내는 일이다. 몽환적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는 김은성의 작업을 상징주의나 초현실주의의 계보로 연결시키는 요소들이 있다. 또한 꽃잎과 곤충 그리고 인물이나 풍경을 상호 연계하여 통시적으로 해석하고 바라보려는 태도는 반야심경의 불교사상과 끈이 닿는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태도는 시인의 그것이기도 하다. 윤동주의『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서 별이 나와 다르지 않고 내가 별이듯 김은성이 그려내는 꽃 하나는 스스로의 모습이 되는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그것은 꽃과 나와 산수가 하나가 되는 상상세계이다. 이것은 또한 우리들 모두가 꿈꾸는 이상세계가 아닌가. 나는 이러한 작가적 관점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으며 앞으로 이러한 관점이 예술적 언어로 심화될 수 있음을 믿고 있다. ■ 김영호
Vol.20051102e | 김은성 회화展